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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되고 한참 뒤 넷플릭스로 본 영화, <헤어질 결심>.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읽게 된 영화의 각본집. 영상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안개와 같다. 


어쩌면 이 책을 뒤늦게 읽게 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선후 관계가 적절한 듯하다. 텍스트를 영상으로 일깨우는 것이 감독의 몫이라면, 독자는 흐릿한 영상의 이미지를 텍스트로 환원하는 과정을 하게 된다. 그렇게 온전히 단어와 문장을 음미하게 된다. 마치 책을 다시 읽듯이 말이다.


이 리뷰는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대사에 대한 감흥일 뿐이다. 파편화된 감정 무더기일 뿐이니 양해하길 바란다. 


산 정상에서 추락사한 한 남자에 얽힌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의 죽음을 들은 아내 서래의 무미건조한 반응이다. 평범한 문장에 작가는 '마침내'라는 표현을 덧대 특별한 문장으로 변화시킨다.


서래


  산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울지 않은 자의 슬픔을 파도와 잉크의 대비로 묘사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절반쯤 한 번 더 사용된다.



해준


  (쌍안경에서 눈 떼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안마기를 치우며)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는 표현을 패러디한 듯한 대사도 재미있다.


서래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자주 쓰는 단어인 '용감(용기가 있고 겁을 내지 않음)'이 아닌 '용맹(날래고 사나움)'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살인이 등장하는 영화의 의미를 잘 전달한다.


무녀


  죽음은 포기가 아닙니다, 선생님. 죽음은 용맹한 행동입니다.


  류선생


  아니다, 소화야……. 아니야……. 진정 용맹한 행동은 사랑이야.


  소파에 누워 눈 감은 서래의 얼굴에 번쩍이는 TV 불빛. 잠든 것 같았던 서래, 조용히 중얼거리며 대사를 따라한다.


  류선생/서래


  사랑은…… 그 외 다른 모든 것의 포기니라.


정안은 해준의 아내이다.  현실적이고 헌신적인 애정 표현이다.



정안


  (소리)


  응. 조심해서 가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자야 돼!



중-한 번역기 APP 오류로 마음은 심장으로 뒤바뀐다. 작위적인 설정을 훌륭하게 승화시켰다.



나에게 선물이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 해준, 심장이 찌르르.



반문을 통해 해준의 마음에 허를 찌르는 질문이다.



서래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영화의 결말을 암시함과 동시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



서래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내려가요. 점점 내려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중국어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


  내가 다 가지고 갈게요, 당신한텐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不喜也不悲,没有任何情感。


  一下一下划水,把今天发生的事都划出去,推给我。


  我会全部带走。现在,你就什么都没有了。



마침내가 다시 등장한다. 대사 종종 등장하는 이 문학적 표현은,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해준


  우는구나……. 마침내.



영화를 볼 때 말러 교향곡이 흘러나와 놀랍고도 반가웠다.

말러 교향곡을 통해 취업 준비생 시절의 우울증을 견뎌냈다.


기도수


하여튼 보시면 압니다.


  말러 오 번을 들으면서 출발하면, 사 악장 끝날 때쯤 도착합니다.


  정상에 앉아 오 악장까지 듣고 하산하면 완벽하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붕괴되는 해준.



해준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이 역시 부부간 나올 수 있는 사르카즘(sacrasm)이다.



해준


  행복해, 나도.


  정안


  당신은 살인도 있고 폭력도 있어야 행복하잖아.



차돌 같은 알리바이, 납 같은 밥(나쓰메 소세키)이 연상된다.


해준


  송서래 씨 잘 들으세요.


  이번 알리바이는요, 차돌처럼 단단해야 할 겁니다.



헤어질 결심의 이유이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천박한 표현을 이렇게 고상하게 쓸 수 있다.


해준


  (답답하다는 듯 약간 톤이 올라가서)


  왜 그런 남자하고 결혼했습니까?


  서래


  (눈에 힘주고 똑바로 보면서)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짧은 자기 연민으로 해준의 마음을 흔드는 서래.



해준


  좋아요……. 두 남편이 한 형사의 관할 지역,


  그것도 멀리 떨어진 관할 지역에서 자살하거나 살해됐어요.


  누가 이렇게 됐단 얘길 들었다면 난 이럴 거 같아요.


  “거, 참 공교롭네…….”


  송서래 씨는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서래



  (더 이상 담담할 수 없게)


  참 불쌍한 여자네.



사랑은 도축이 아니라, 래핑 씌운 포장육이다.



서래


  (소리)


  산책하고 왔더니 피 냄새가 지독해서 당신 생각났어요.


  당신이 와서 이걸 볼 텐데, 당신이 무서워할 텐데.



아내 정안의 표현과 크게 대비된다.  



서래


  건전지처럼 내 잠을 빼 주고 싶네요.



해준 역시 서래의 태도가 맘에 든다. (품위를 언급한 서래처럼) 


해준


  내가 서래 씨 왜 좋아하는지 궁금하죠? 아니, 안 궁금하댔나?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서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 씨에 관해 많은 걸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해준과 서래의 마지막 통화이다. 언어 간 소통 문제로 전해지지 않은 독백으로 남는다. 

사랑은 죽음으로 영원성을 표상한다.



서래


  (쓴웃음 지으며 중국어로)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你说爱我的瞬间,你的爱就结束了。


  你的爱结束的瞬间,我的爱就开始了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