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회피하지말고 정면으로 맞서싸우세요"를 늘 들으니까 우리는 정면승부가 좇으로 보임. 근데 사실은 좇이 아님. 자신에게 닥쳐온 문제를 바로 "시발 덤비는데스"하는 초인은 정말 드물고 별로 없음. 우리는 문제가 일어나면 그걸 반드시 회피하는 경향이 있음. 그건 거대할수록 그럼.
그리고 어느 부모에게나 장애아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큰 문제지만, 20대의 알코올중독자 주제에 대학교수도 되지 못하고 강사직을 진전하는 온전치 못한 버드에게는 장애아란 아주아주아주 거대한 문제임. 버드(오에)에게 장애아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수없는 재난과 마찬가지임.
재난 급인 장애아의 생사결단이라는 중대 문제의 무게에 짓눌려 답을 버드는 내리지 못하고 계속 도피함. 그러다 갑자기 아이와 살아야겠다하고 아이와 살아가는게 개인적인 체험의 엔딩인데. 이 엔딩를 미시마랑 많은 독갤럼들이 억지 해피 엔딩이라 비판함.
근데 이게 문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고심하다가 논리와 이성을 프라모델 조립하듯이 쌓아올려 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임. 벼락마냥 급작스럽게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대다수임. 그리고 버드(오에)도 평범한 사람처럼 급작스러운-해피엔딩스러운 결론을 냄.
버드(오에)가 갑자기 공존이라는 선택을 내리도록 만든 촉발제가 경찰관의 만남일지, 원나잇일지, 게이 친구와의 만남인지 혹은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닌지는 버드(오에)말고 아무도 모름. 그러나 버드(오에)는 이러한 사건들을 경험하고 결단을 내렸고, 이전의 경험을 그저 단순한 '개인적인 체험'으로 치부할수있을정도로 성장함.
결국 도망치지 않고 선택해 성장했다는 플룻에는 문제가 없어보임. 문제가 있는건 예술로 원하던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문제를 못이겨내고 정치와 자살로 도피한 미시마 자신이지.
EOE를 생각해보면..
도망안쳤으면 지금쯤 국가유공자 연금(년 3억)+원하는 대학 입학 받고 레이랑 아스카랑 같은 침대에 누워있겠지
+미사토
결국 아스카랑 같은 해변에 누워있게 됐는데 그 후에 격렬한 신체접촉도 함
까짓거 함 해보죠 - dc App
사실 잘 모르겠지만 미시마가 논평 날렸으면 반대편이 맞을 거라 생각함
나도 결말 좋다고 생각함. 결국 버드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한테 영향받아 고뇌 끝에 결국 아이를 살리는 것이고, 개인적인 체험이란 작품은 그렇기에 개인의 문제가 개인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공생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라 해석하고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