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광화문」
북악과 삼각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뒤에 얼골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렀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보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흐르는 푸른 광명을
광화문-- 저같이 으젓이 그 날개쭉지 위에 실고 있는 자도 드물라.
상하 양층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것은 드디어 치-ㄹ 치-ㄹ 넘쳐라도 흐르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
아래층엣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같이 고으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 같고
문득 치켜든 머리 위에선
파르르 낮달도 떨며 흐른다.
- 『서정주시선』(1956)
-
시를 읽고 쓰는 문화가 그만큼 활성화되었기 때문이겠지만, 흔히 한 권의 시집 속에는 몇 편의 뛰어난 작품과 그 외의 평범한 여러 작품이 모여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서정주시선』은 정확히 그러한 타성의 반대편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시집이다. 유명한 작품보다 덜 알려진 작품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시집 초엽의 「무등을 보며」 「학」 「국화 옆에서」로 이어지는 일종의 3연타를 필두로 「추천사」를 위시한 춘향 소재의 시들, 「나의 시」와 「풀리는 한강가에서」, 「무제」와 「기도 1」을 위시한 생활 소재의 담백한 절창, 마무리를 장식하는 「상리과원」과 「산하일지초」의 두 편의 산문시까지, 각각의 작품은 제 나름의 매력을 확연하게 띠고 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십여 년의 시간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옥 중 옥이 무엇인가를 이 시집은 너무나 잘 보여준다. 작품 수가 적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것은 작가 자신의 자기 검열의 엄정성의 결과라고까지 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걸러진 작품의 수준이 그것을 보증한다.
『서정주시선』에 실린 중요한 시편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작품이 개인적으로는 「광화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시의 소재가 일종의 민족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시의 주제는 이후 그의 '전통 창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신라초』에서의 「구름다리」와 연결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역사 설화 소재의 작품들을 제외하면 그의 시 가운데 전통 문화를 가장 멋들어지게 승화시키고 있는 작품인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행은 『서정주시선』에서는 다른 구절이었다가 『서정주문학전집』에서 현재의 구절로 바로잡았는데, 결정본이라 할 수 있는 전집의 바뀐 표기가 '-다' 체로 끝나는 문장의 스타일과도 훨씬 어울린다.
개추 - dc App
님 고마워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