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오펜하이머의 여러 행동들 중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함과 미숙함을 보이는 이유를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평전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나만의 의견이니 별말이 안되는 지점이라도 웃고 넘어갔으면 한다.


과잉보호

동생인 프랭크 오펜하이머 이전에 루이스 프랭크 오펜하이머라는 동생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루이스는 장협착증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는데, 루이스의 죽음은 오펜하이머의 어머니인 엘라에게 아주 큰 상실감을 줬을지 모른다. 엘라는 오펜하이머의 아버지인 율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내게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말할 정도로 누군가를 지극히 돌보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자신의 가치를 느낄 기회를 박탈해 갔을 것이라고 보이며,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도록 했을 것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마저 잃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에 오펜하이머를 과잉보호 했을지 모른다.


평전에서 '천성적으로 내성적이며 둔했던'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을 때 기질적으로 오펜하이머는 위험회피(TCI 검사 중 한 척도로, 불안 및 우울 등을 살펴 볼 수 있음)가 높은 아이인데, 과잉보호의 양육환경까지 겹쳤으니 더욱 내성적이고 소극적일 수 밖에 없겠다. 이런 기질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엘라는 오른손이 선천적으로 기형이라고 평전에 나오는데, 항상 긴팔에 가죽 장갑을 끼고 있다는 표현을 보아할 때 엘라 또한 위험, 불안 등이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버지는 영어도 잘 하지 못하지만, 사업에 뛰어드는 용감함, 경제적 불황을 잘 견뎌내는 인내력, 자신의 이름을 오펜하이머에게 물려주는 등의 전통을 거부하는 모습, 열정적이고 잘 웃는다는 평, 외향적인 성격,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어머니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오펜하이머에게도 이런 면모가 없지는 않는데 가끔 무모할 정도로 보트를 타거나 승마를 하는 등의 모습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TCI 검사에서 자극추구 성향이 어느 정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자극추구는 엑셀, 위험회피는 브레이크인데 이러한 접근-회피 갈등이라 부르는 상태는 오펜하이머에게 굉장히 심적 부담감을 줬을 것 같다. 쉽게 말하면 뛰어놀고 싶지만, 노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동시에 생각했을 것이다.


에티컬 컬쳐 교사인 스미스가 오펜하이머를 '오우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느꼈던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자면, 상업을 하는 아버지는 오펜하이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엘라보단 적었을 것이고, 집안의 내부 문화 등을 엘라의 취향대로 바꾸었다는 표현을 보아할 때 오펜하이머에게 결정적인 양육을 한 사람은 엘라였을 것이다.

어린 오펜하이머는 '살아남기 위해선' 어머니의 사고, 불안, 감정을 내사해야만 했을 것이다.


에티컬 컬쳐 스쿨

에티컬 컬쳐 스쿨에 대해서는 평전에 따른 내용만 보자면, 굉장히 진보적이며, 민주적인 토론과 대화를 중시했던 것 같다. 평전에도 나오듯 에티컬 컬쳐 스쿨은 오펜하이머가 원할 때 빛날 수 있었고, 사회적 문제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를 고치처럼 보호' 해주었다는 묘사를 보았을 때 오펜하이머의 사춘기를 오랫동안 허락해주는 분위기였을 것이라고 보인다.


원하는 만큼,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때에 자신을 보여주거나 숨기거나 성장하거나 가만히 있거나, 조용히 있거나 거부하는 등의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분위기 및 환경에서(사실은 과잉보호에 억압적이지만) 성장해왔던 오펜하이머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는 대학교, 대학원 즉, 사회의 삶'은 굉장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환경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