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거래 6~9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0월 8일 까지 먼 곳에서부터, 아픈 몸이, 시, 여수, 전향기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연휴가 끝나가도 독회는 계속된다!!
댓글 19
복중(신귀거래6) / 더위앞에 계쑤는 아이를 베고 시인은 깜빡 속아 조용해졌다. 그는 침묵과 소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파이프를 꼬나 물면 당연 조용히 연기 빤 뿜고 추락하는 폭격기는 그 소음이 엄청 날 것이다. 재밌는 건 내가 소음이란 주제로 생각했던 것이 3연2행의 너무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원하는 듯 했는데 돌연 4연에서 마물이라 칭하면서 까지 조용해지는 그 힘에 놀란다. 내 생각엔 그는 여태 다른 형태의 침묵을 보아왔고 그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잉태라는 또다른 양면성에 감탄한 것 같다. 이런 침묵의 형태를 몰라왔으니 억울할 만 하다. 그가 이제부터 소리를 다루는 것에 더욱 세심하고 명민해졌을 것이다. 혹은 아직 혼란스러워 발악하는 것일지 모르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5
답글
겠지만 말이다.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5
답글
누이야 장하구나(신귀거래7) / 김수영의 동생이 등장하는 것은 전집 기준 이 시가 아마 첫 번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가족사를 조금 들여다 봤지만 해석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이미 계속해서 읽어 나가 개인사는 최대한 배제해놨으니. 풍자는 사람의 죽음을 우습게 만드는 거고 해탈은 불가지 영역에 무조건 적인 숭배이다. 실종 상태인 동생을 풍자로 할 지 해탈로 할 지 고민 하는 것 같지만 이미 실종 그 자체 해탈의 경지다. 여기서 마침표가 될 것 같은 시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도회에서 뛰쳐 나와 누이에게 장하다고 말하는 그 양가적 감정 앞에 그는 최후의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있는 것이다. 그런 그림이 광대한 여름날 착잡한 숲으로 나오는 것이다. 여전히 그는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더위에 미쳤다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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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말복에서도 복중에서도 더위 앞에 무너지지 않은 그가 누이를 보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5
답글
누이의 방 (신귀거래8) / 해탈도 풍자도 소용없다는 걸 안 그가 누이의 방에 가서 본 사물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정돈이라 함은 청소이고 어질러진 상태가 아니라는 건데 과연 그럴까 하고 되묻는 듯 하다. 누이의 방에는 평면을 사랑하는-나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것들과 입체를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다시 7행으로 돌아가, 장마 끝의 물소리를 분명 듣고싶어 하는 그-복중을 읽을 때 ‘소리’를 주의했었다-는 대답을 여전히 듣지 못하고 있는거다. 얼치기 양관도 누이의 방도 아직 익지 못한다. 어떻게 익는 지를 모른다. 그 방법은 국내소설 책에도 안나와 있다. 다소 염세적으로도 느껴지는 이 끝 없는 질문 앞에 국내소설과 시 독자인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될 지 모르겠다.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5
답글
이놈이 무엇이지 (신귀거래9) / 신귀거래에서 그는 매우 힘든 여정을 했다. 여태 시에서 집과 방으로 나타난 그의 관념과 담뱃재를 터는 유물적 폭력 둘 다 말할 필요도 없어진 그는 지금 매우 피곤하다. 내 생각엔 일전에 그는 어떤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시를 써오다가 변곡점을 만나 여행도 안하는 상태가 됐다. 그 변곡점 이전의 상태들을 돌이켜 보고 이후 굴곡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고뇌해야 될이 남으면서 연작소설이 끝이났다. 신귀거래에서 그는 자신에게로 잠시 돌아와 보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돌아올 자신이란 놈은 통 어디있는 지를 몰라 엄마 손을 놓은 아이처럼 울고 있는 느낌이었다-다시 신귀거래1이 생각났다. 이 점에서 이런 순환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웠지만 신귀거래 내내 울고있는 시인을 보니 나도 절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5
답글
로 너무 슬퍼졌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생기고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후련하지만서도 머릿속엔 착잡한 감정과 질문들이 남아있다…
1음시발(mw02658)2023-10-03 19:26
답글
안녕
스티커 주고 싶음 : >
익명(222.106)2023-10-03 20:18
답글
1음시발(mw02658)2023-10-03 22:05
답글
글자 수 제한 있긴 한데 나처럼 대댓글로 쓰면 댐
1음시발(mw02658)2023-10-03 23:21
복중_ 라디오를 튼다. 스피커. 세상이 멎어있었나, 시인도 더위에 속아 한동안 개처럼 엎드려 있었나. 목욕은 대체 했나 안 했나. 이런 건 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복날 목욕을 하면 귀신처럼 여윈다는 속신이 있다(네이버 복날) 김수영은 여위기 위해 목욕을 하려 했을 것이나 되돌아온 것도 같다 ‘미친놈’ 미칠 것 같’ 지만 그래도 사랑과 잉태의 먼 미래
익명(222.106)2023-10-03 23:21
답글
는 시의 맨 앞자리고 먼저 기억한다. 지금은 꿀벌이 되어 정찰 중 같다.
익명(222.106)2023-10-03 23:22
누이야 장하고나!_ 풍자가 아니면 해탈그 유명한 말이 이 시였네. 누이가 장하다고 여기는 건 아프고 고통스런 과거를 자발적으로 대면하는 강인함에 대한 것 아닐까. 남동생의 실종이 나오는데, 그건 죽음도 삶도 아닌, 지옥일 것이다. 시인은 아파서 바라보지도 못하고 애도조차 엄두를 못 냈던 듯. 그러나 그런 자신을 향한 자기규정(?)이 있다.
익명(222.106)2023-10-03 23:27
착잡한 숲 속에 홀로 서서 누이 같은 이들을 발견하고 경탄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 시인이다.
풍자가 아니면 해탈, 그 유명한 말이 오해를 일으키지만, 나는 아직까지 김수영이 해탈을 원하는 걸 본 적 없다. 신귀거래의 <격문>이 말하듯, 자신을 향한 모든 전략적 선전선동을 일삼으며 지상으로, 대지의 나무와 꽃, 뿌리와 바위, 들판으로
익명(222.106)2023-10-03 23:30
답글
이제 혼자 착잡한 숲 속에 와 있지만, 해탈이 아니라 언제라도 지상(흙)을 꿈 꾼다. 그치만 이즈음 풍자도 버린 것 같아 보인다.
익명(222.106)2023-10-03 23:35
누이의 방_ 여러 표현들이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연속적인 시적인 꺾임들이 곡선을 이루어 더 그런 느낌을 주나 싶다. 신귀거래 이전 나는 김수영 시를 직선과 사선, 약간의 회전감으로 느꼈었다. ‘이런 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아침에 문득 들은 음악처럼 오후에 따라부르게 될 것 같다.
익명(222.106)2023-10-03 23:55
이놈이 무엇이지? _ 많은 게 쓸려나간 것 같다. 작은 잡기들, 여행에 대한 모험심과 이데올로기. 즐거운 감정과 해악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강력한 정신적 체험적 경험 끝에 선계로 간 것이 생각난다. <격문>은 그 제하에 자신의 힘을 모으고 동원하기 위해 뭐든 반어, 현실 조작, 위증, 뭐든 할 수 있었다. 이제 그것도 아니다. 인간의 시간이 사라진
복중(신귀거래6) / 더위앞에 계쑤는 아이를 베고 시인은 깜빡 속아 조용해졌다. 그는 침묵과 소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파이프를 꼬나 물면 당연 조용히 연기 빤 뿜고 추락하는 폭격기는 그 소음이 엄청 날 것이다. 재밌는 건 내가 소음이란 주제로 생각했던 것이 3연2행의 너무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원하는 듯 했는데 돌연 4연에서 마물이라 칭하면서 까지 조용해지는 그 힘에 놀란다. 내 생각엔 그는 여태 다른 형태의 침묵을 보아왔고 그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잉태라는 또다른 양면성에 감탄한 것 같다. 이런 침묵의 형태를 몰라왔으니 억울할 만 하다. 그가 이제부터 소리를 다루는 것에 더욱 세심하고 명민해졌을 것이다. 혹은 아직 혼란스러워 발악하는 것일지 모르
겠지만 말이다.
누이야 장하구나(신귀거래7) / 김수영의 동생이 등장하는 것은 전집 기준 이 시가 아마 첫 번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가족사를 조금 들여다 봤지만 해석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이미 계속해서 읽어 나가 개인사는 최대한 배제해놨으니. 풍자는 사람의 죽음을 우습게 만드는 거고 해탈은 불가지 영역에 무조건 적인 숭배이다. 실종 상태인 동생을 풍자로 할 지 해탈로 할 지 고민 하는 것 같지만 이미 실종 그 자체 해탈의 경지다. 여기서 마침표가 될 것 같은 시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도회에서 뛰쳐 나와 누이에게 장하다고 말하는 그 양가적 감정 앞에 그는 최후의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있는 것이다. 그런 그림이 광대한 여름날 착잡한 숲으로 나오는 것이다. 여전히 그는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더위에 미쳤다
일전 말복에서도 복중에서도 더위 앞에 무너지지 않은 그가 누이를 보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누이의 방 (신귀거래8) / 해탈도 풍자도 소용없다는 걸 안 그가 누이의 방에 가서 본 사물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정돈이라 함은 청소이고 어질러진 상태가 아니라는 건데 과연 그럴까 하고 되묻는 듯 하다. 누이의 방에는 평면을 사랑하는-나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것들과 입체를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다시 7행으로 돌아가, 장마 끝의 물소리를 분명 듣고싶어 하는 그-복중을 읽을 때 ‘소리’를 주의했었다-는 대답을 여전히 듣지 못하고 있는거다. 얼치기 양관도 누이의 방도 아직 익지 못한다. 어떻게 익는 지를 모른다. 그 방법은 국내소설 책에도 안나와 있다. 다소 염세적으로도 느껴지는 이 끝 없는 질문 앞에 국내소설과 시 독자인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될 지 모르겠다.
이놈이 무엇이지 (신귀거래9) / 신귀거래에서 그는 매우 힘든 여정을 했다. 여태 시에서 집과 방으로 나타난 그의 관념과 담뱃재를 터는 유물적 폭력 둘 다 말할 필요도 없어진 그는 지금 매우 피곤하다. 내 생각엔 일전에 그는 어떤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시를 써오다가 변곡점을 만나 여행도 안하는 상태가 됐다. 그 변곡점 이전의 상태들을 돌이켜 보고 이후 굴곡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고뇌해야 될이 남으면서 연작소설이 끝이났다. 신귀거래에서 그는 자신에게로 잠시 돌아와 보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돌아올 자신이란 놈은 통 어디있는 지를 몰라 엄마 손을 놓은 아이처럼 울고 있는 느낌이었다-다시 신귀거래1이 생각났다. 이 점에서 이런 순환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웠지만 신귀거래 내내 울고있는 시인을 보니 나도 절
로 너무 슬퍼졌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생기고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후련하지만서도 머릿속엔 착잡한 감정과 질문들이 남아있다…
안녕 스티커 주고 싶음 : >
글자 수 제한 있긴 한데 나처럼 대댓글로 쓰면 댐
복중_ 라디오를 튼다. 스피커. 세상이 멎어있었나, 시인도 더위에 속아 한동안 개처럼 엎드려 있었나. 목욕은 대체 했나 안 했나. 이런 건 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복날 목욕을 하면 귀신처럼 여윈다는 속신이 있다(네이버 복날) 김수영은 여위기 위해 목욕을 하려 했을 것이나 되돌아온 것도 같다 ‘미친놈’ 미칠 것 같’ 지만 그래도 사랑과 잉태의 먼 미래
는 시의 맨 앞자리고 먼저 기억한다. 지금은 꿀벌이 되어 정찰 중 같다.
누이야 장하고나!_ 풍자가 아니면 해탈그 유명한 말이 이 시였네. 누이가 장하다고 여기는 건 아프고 고통스런 과거를 자발적으로 대면하는 강인함에 대한 것 아닐까. 남동생의 실종이 나오는데, 그건 죽음도 삶도 아닌, 지옥일 것이다. 시인은 아파서 바라보지도 못하고 애도조차 엄두를 못 냈던 듯. 그러나 그런 자신을 향한 자기규정(?)이 있다.
착잡한 숲 속에 홀로 서서 누이 같은 이들을 발견하고 경탄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 시인이다. 풍자가 아니면 해탈, 그 유명한 말이 오해를 일으키지만, 나는 아직까지 김수영이 해탈을 원하는 걸 본 적 없다. 신귀거래의 <격문>이 말하듯, 자신을 향한 모든 전략적 선전선동을 일삼으며 지상으로, 대지의 나무와 꽃, 뿌리와 바위, 들판으로
이제 혼자 착잡한 숲 속에 와 있지만, 해탈이 아니라 언제라도 지상(흙)을 꿈 꾼다. 그치만 이즈음 풍자도 버린 것 같아 보인다.
누이의 방_ 여러 표현들이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연속적인 시적인 꺾임들이 곡선을 이루어 더 그런 느낌을 주나 싶다. 신귀거래 이전 나는 김수영 시를 직선과 사선, 약간의 회전감으로 느꼈었다. ‘이런 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아침에 문득 들은 음악처럼 오후에 따라부르게 될 것 같다.
이놈이 무엇이지? _ 많은 게 쓸려나간 것 같다. 작은 잡기들, 여행에 대한 모험심과 이데올로기. 즐거운 감정과 해악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강력한 정신적 체험적 경험 끝에 선계로 간 것이 생각난다. <격문>은 그 제하에 자신의 힘을 모으고 동원하기 위해 뭐든 반어, 현실 조작, 위증, 뭐든 할 수 있었다. 이제 그것도 아니다. 인간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깜짝 놀랐다. 쓴이 말마따나 울고 싶었다.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