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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와 한라의 1974년 봄 대화」
백두산
봄 되어 꽃도 피니, 무엇 이뿐 것 이얘기나 한바탕 하자.
여기 공산당들은 화장품 대신 맑스 자본론으로 저의 예편네 낯바닥까지 막 도배를 하게 해서 질색이다.
처녀 총각 아이들은 우리 순(純) 봄 기운으로 숨어 서로 눈을 맞추기는 맞추지만, 이것도 겁이 나서 잠깐 잠깐 식이다.
한라산
남녀가 서로 눈 맞추어 사는 것-- 그건 사람에겐 마지막 밑천인데, 그것까지 겁집어 먹는다니 그것 참 안 되었구나.
여기서는 그 눈 맞추는 것이 좀 흔해서, 일본인 관광객들하고 잠깐씩 이부자리까지 펴는건 안 되었지만 이걸로 겁낼 건 없으니, 거기 그 일로 가슴 조이는 처녀 총각들 있건 더러 이리루 보내라.
반달 손톱 자국이 상대의 어깨에 박히도록, 눈 맑고 이빨 젊은 남녀들은 먼저 으스러지게 서로 끌어 안아야지!
그 두 허리에서 달래 마늘 매운 냄새가 스며 배어날만큼 으스러지게 끌아 안아야 하고 말고!
이게 제일 이뿐 것이고, 이러면 또 어떻게던 사는 것이라고, --여기서는 옛날부터 그래도 모두들 그렇게 그렇게 하고 있네. 벼락이 열 백번 내릴지라도 이렇게 결국은 사는 것이라고…….
백두산
거기 사람들 사상을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인가?
제 집에서나, 공중(公衆) 속에서나, 혼자거나, 여럿이거나, 마음 놓고 오고가며 살만한 것이냐? 여기껏들은 그게 안 되어 파이다.
제 집에 돌아 오면 영 잘 안 되는 사회주의를 가지고 집회하고 집회하고 서로 경계하고 경계하고만 있는 것이다.
한라산
여기도 별수 있는 사상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정(情)이 하나 되게는 끈질긴게 있어, 이거나 믿어 볼까 한다.
영 형편 안 닿는 사람들까지 모두다 제 자녀는 대학까지 시켜서 다음 대(代)는 자기보다 유능해져야만 되겠다는 부모 노릇의 정--이것은 아마 이 지상에선 지금 대한민국 것이 최고 아닐까?
백두! 나는 이것을 믿기로 했다.
이렇게 몇 대건 몇십 대건 되풀이해 가는 동안에 이들은 결국 나아져 갈 것이고, 이 정에 알맞는 사상도 만들 것이다.
백두산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를 통일해 낸 김유신과 문무왕의 두 넋이 합쳐 됐던 피리 소리--그 만파식적의 피리 소리가 그립군.
그게 벌써 천하고도 몇 백년 전 일이더라?
언제쯤 이 피리 소리를 또 한번 울릴려는고?
한라산
글쎄…….
하여간에 그건 그만큼한 정이 클 수 있는 데서라야지, 그렇지 못한데서 울리지는 않을 것이네.
- 『떠돌이의 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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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 사이의 소위 체제 경쟁이 남한의 승리로 굳어진 것은 오랜 일이지만 그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다만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독재 체제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이 시작된 1980년대 말을 한 분기점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치 외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던 때이기는 하나 이 시가 씌어지던 1970년대 초반을 체제 경쟁의 확고한 우위 시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쳇말로 확신의 우익 작가인 서정주의 시선이 위의 시에는 투영되어 있다 하겠으나 오십 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는 오히려 그때보다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단순한 구도인 대로 「백두와 한라의 1974년 봄 대화」는 분단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우파 지식인답게 서정주는 '정'이 전제해야 '사상'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성장을 위한 전제 자체가 틀린 곳으로서의 북한 사회와 '정'은 있어도 그것이 아직 '사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곳으로서의 남한 사회를 비교하고 있다. 남한 사회를 그린 구절 가운데 가령 '모두다 제 자녀는 대학까지 시켜서 다음 대는 자기보다 유능해져야만 되겠다는' 당시의 교육열을 언급한 것은 같은 시집에 실린 「뻔디기」에서 번데기 리어카를 '손자놈들에게까지 이어서/ 끌고 끌고 또 끌고 가 달라는 것'에 대해 내뱉은 야유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보수주의의 특징은 사회의 공과에서 공의 보전을 위해 과를 부분적으로 눈감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데서도 얘기했지만 「뻔디기」 같은 작품 하나만 보고 저항 정신을 도출하고 서정주의 예외적인 작품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는 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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