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고등학교, 어느 교실에나 있을 법한 친구로 다크써클 짙은 퀭한 눈으로 책가방 속엔 무협지로 꽉 차 있었고, 입만 열면 온갖 음모론과 구라성 짙은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튀어나오면서, 농도높은 구라들을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던 그런 친구 말이죠. 이야기를 듣는 그 자리에선 그나마 납득이 좀 가지만, 뒤돌아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하면 '리얼 구라'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죠.
그 친구가 한번은 허겁지겁 제게 달려왔죠. 이렇게 말하면서요.
"야! XX야! 이거 함 봐라! 내가 생각한 무협지 스토린데. 정말 죽이지 않냐!!!"
떨리는 손으로 제게 넘긴 A4용지 한 장에는 프롤로그같은 멋 잔뜩 들이면서 한자들 조악하게 끼워넣어서 쓴 장대한 '중원의 영웅을 위한 시' 어쩌구 하는 시 한 수가 있고, 뒷면에는 시놉시스 비스무리하게 줄거리 요약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무협의 세계와는 전혀 관심이 없던 제게도 아직도 그 스토리가 기억이 나는데,-.-
줄거리 : 범상치 않은 출신의 소년 □□는 좀 더 강해져서 어지러운 무림을 평정하고자 수련을 쌓고 나와서
① 쌈박질을 한다.
② 상대를 얕잡아보았다가 심각한 상처를 입고 거의 죽음에 이른다.
③ 근처 유명한 도인에게 찾아가 어찌 치유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④ 도인 왈, "이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여인과 하룻밤을 통하면 치유될 수 있느니라~"
⑤ 여인과 만나서 통하고;;; 치유되고, 자신을 죽이려했던 상대를 죽여버린다.
...... 1개의 주(州)에서 ①~⑤의 사건이 9번 반복된다.
...... 중국은 9주다. 9주에서 똑같이 9번씩 반복된다......
...... 이 소설은 글로벌 무협소설이다. 중국 9주를 정복한 다음 몽고지방, 고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각각 9번씩 죽음을 넘나든 싸움을 한다 (나의 멘트 : 죽음을 넘나든 거시기는 아니고;;;)......
....... 그럼 중국 9주 + 몽고 + 고려 + 일본 = 모두 108... 108명의 고수를 죽이고 108명의 여자를 안았으니;;; 주인공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108번뇌를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신선이 되었다......
"이게 다냐...-.-"
"이거 너무 스펙타클할 거 같지 않냐?"
"......"
여튼 이런 식의 시놉시스를 몇개를 받아봤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여하튼 수없이 많이 보았던 무협지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 친구의 수준은 이정도를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전, 그 친구의 상상이 그냥 멈춰버리진 말았으면 하는 상상을 합니다.
2. 영풍문고, 교보문고, 반디앤 루니스같은 대형서점의 외서코너를 가보면, 거장들의 작품과 거의 똑같은 비중으로 대중적인 환타지 소설이나 SF소설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그 아류들의 비교는 참 재미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톨킨이 쓴 책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도 써내려갔고 그렇게 해서 '중간계'라는 세계를 '창조'해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피터 잭슨의 영화도 톨킨의 세계를 어떻게 하면 스크린으로 충실히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선 수없이 많은 아류작들이 있지만, 그 작품들의 작가는 모두 다릅니다. 영화처럼 루크 스카이워커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인 한솔로, 레이아, 장고 펫, 자자 빙크스까지 주인공인 책도 있습니다. 이는 거의 '팬픽'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스타워즈]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냉정한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단순한 아이들의 꿈에 걸맞는 그런 영화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보여주는 깊이는 절대로 없죠.
하지만 사람들은 완벽에 가까운 [2001..]보다 [스타워즈]와 엄청난 사랑에 빠집니다. 왜 그런지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스타워즈]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았다는 것이겠죠. [스타워즈] 속에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의 역사와는 전혀 무관하죠~ 현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건 바로 '상상'입니다. [2001...]이나 [라마와의 랑데부]에서 아서 클라크가 보여주었던 그런 수준의 상상력이 아니라, 충분히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상들이 들어앉은 것이죠. 만약 2차 세계대전을 상상하고 팬픽을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소위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 신나게 씹히겠지만^^;; 스타워즈의 세계는 그런 제약이 거의 없습니다! 클라크나 아시모프정도의 지식이 없어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죠~
3. [다빈치 코드]가 생각보다 좋지 않은 평을 들으면서도, 제가 즐겁게 이 책을 본 이유가 위의 글들에 나와있습니다. [다빈치 코드]는 절대 완벽한 소설이 아니고, 범작에서도 나오는 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도 아닙니다. 다만 이 책은 펜보이의 열정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이거 죽이는 이야기야!"라는 말과 함께 제게 다가온 친구와 같은 책입니다. 그 즐거움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이 작품이 안 좋은 평을 얻는 것만큼, 더욱 더 멋지고 깊이있고,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미의 이름]과 같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면,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요?^^;;; 문학작품이나 다른 대중 예술에서 저변이 넓어지고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깊이가 깊어질 수 있는 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토양 위로 멋진 작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 원을 얻으리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