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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iler Alert)
이 책은 작년 말 처음 읽고 다시 읽는 터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꽤 많은 구절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장기 기억의 신비함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 담아 있을 많은 기억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마음>은 주인공의 오래된 기억에서 비롯된다. 만화 <스누피>에서는 "It's kind of nice having a secret(비밀을 갖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야)."라고 했지만, 대체로 비밀로 구분되는 기억은 괴로운 법이다.
1인칭의 화자가 선생님을 회고하는 내용인데, 전체적인 서사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작가는 선생님의 자살의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 흥미를 유발한다. 일상을 드라마로 연출하는 것은 것이 작가의 힘이다.
주인공인 '나'는 휴양지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는데, 뭔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른다. 순수한 우정으로 생각하면 좋으련만, 풍진 많은 21세기 넷플릭스 세상에 살다 보니 그러하다. 어쨌든 선생님은 나에게 곁을 내주긴 해도 선을 계속 긋는다.
"자네는 아마 나를 만나도 여전히 어딘가 외로운 기분이 들 거네. 나한테는 자네를 위해 그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없애줄 만한 힘이 없으니까 말이야. 자네는 조만간 다른 방향으로 팔을 벌려야 하겠지. 그러면 곧 이 집으로는 발길이 향하지 않을 거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선생님은 고독의 이유에 대해 미래를 근거로 댄다. 미래의 모욕에 대한 현재가치 같은 기묘한 논리지만, 무언가 수긍이 간다. 따지고 보면 무종교의 색채를 띠지만, 천국에 대한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돈은 착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든다. 선생님은 끔찍한 배신을 당한다. 아니,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바닥을 쳐야 인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선생님은 K라는 친구를 연적으로 삼았다. 자신의 친구에 대한 호의가 파국으로 가는 길이 된다. 지옥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나는 먼저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라네"라고 말했네. 이는 둘이서 보슈를 여행할 때 K가 나에게 한 말이야. 나는 그가 쓴 대로, 그와 똑같은 어조로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지. 하지만 결코 복수가 아니었어. 복수 이상으로 잔혹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네. 나는 그 한마디로 K 앞에 놓인 사랑의 앞 길을 막으려고 한 거였다네.
선생님은 어리석게도 자신에게 아가씨에 대한 사랑고백을 한 K를 제치고 숙부와 같은 길을 간다. 그는 죄책감에 납 같은 밥을 먹는다.
저녁 식사 때 K와 나는 다시 얼굴을 마주했네. 아무것도 모르는 K는 그저 침울해 있을 뿐 나에게 조금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주머님은 평소보다 즐거워 보였네. 나만이 모 든 걸 알고 있었던 거지. 나는 납 같은 밥을 먹었네.
그리고 선생님은 결국 K의 길을 가게 된다.
나는 결국 K가 나처럼 혼자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갑자기 결심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지. 다시 오싹하더군. 나도 K가 걸어간 길을, K와 똑같이 가고 있는 거라는 예감이 때때로 바람처럼 가슴을 가로질렀기 때문이네.
주인공 나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임종을 지키기 위해 본가에 찾아가는데, 아버지는 직장을 잡지 못한 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사실 사족 같은 설명을 떼놓고 보면 현재를 사는 우리의 부모와 다를 바 없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추석 때 본가에 내려가서 읽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말수가 없으셨던 아버지가 많이 생각난다.
원래 학교를 졸업한 이상 다음 날부터는 남의 신세 같은 걸 지면 안 되는 거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을 쓰는 것만 알지 버는 것은 전혀 생각하 지 않는 것 같더구나."
아버지는 그 밖에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했는데 어떻게 된 게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먹여 살린다니까' 하는 말도 했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자살책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