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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信孝)의 옷」
신라 때 공주 사람 신효는 효자라,
고기 좋아하는 엄마 반찬 대노라고
날이 날마닥 활사냥을 다녔는데,
어느 날은 매추라기 한 마리도 안 잡혀,
나는 학을 겨냥해 활줄을 당겼네.
그거라도 죽여서 고기 해 드리려고…….
그러나 그 화살은 날개만 맞혀
날갯털 하나만을 땅에 떨구었는데
그걸 갖다 눈에 대고 세상을 보니
세상은 두루 왼통 피비린내 바다고
사람들은 모두 다 짐승들로 보였네.
어이쿠나 큰일났군! 아깐 자식 돌았군!
가로 뛰고 모로 뛰며 가슴팍을 치면서
강원도라 오대산의 어느 움막집까지
미치고 돌아 돌아 딩굴어 드니,
중 하나이 기대리고 앉아 있다가
한쪽 끝이 찢겨 나간 가사(袈裟)ㄹ 보이며
"네가, 이놈, 쏘아 떨군 학의 날개는
내가 항상 입고 사는 가사 끝이다."
하여서야 미친 기가 슬슬 가라앉으며
피비린내도 썰물처럼 물러나고 있었네.
그래서, 끼리고 온 학의 날개 깃털을
스님의 찢겨 나간 가사에 대 맞추며
학춤을 추었네 얼씨구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절씨구 얼씨구…….
돌았군! 돌았군! 정말 돌았군!
그러구서 그 뒤로도 세월이며 구름은
천년하고 또 몇 백년 이 나라를 문질러
숱하게는 굶주리고 목마르게도 했지만,
여직까진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도
학을 쏘아 사냥하는 사람은 없었네.
강원도라 오대산의 상상봉(上上峯)에서
팔도에 나부끼는 신효네의 옷자락--
학두루미 날갯털을 쏘는 사람은
그 뒤로는 없었네, 이 나라에는…….
얼씨구나! 절씨구! 저리절씨구!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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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기본적인 내용은 학을 사냥하지 않게 된 풍조를 신효의 설화와 연결 지은 것이다. 그러니까 신효 설화의 원전인 『삼국유사』에는 신효 이후 학을 사냥하지 않게 되었다는 언급이 없으며, 이는 시인이 이어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에는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이 시는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중에서도 시인의 재해석이 가장 심하게 된 사례 중의 하나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효의 일화는 서정주의 변형과 비교해 보면 그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원전에서 학 날개 너머로 짐승 세상을 보았던 신효는 출가 후 배회하였으나, 경주 근방에 오니 다시 세상이 사람 세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신효가 날개 주인인 승려를 만난 것은 그곳에서 관음보살을 통해 오대산으로 가라는 계시를 듣고 이를 따른 이후의 일이다. 서정주는 이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학 날개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짐승 세상이라는 얘기만 살려 두고 사람 세상으로도 보이는 여지는 없앴다. 더구나 신효가 날개 주인을 만난 이후로도 미쳐 버리고 말았다는 것 또한 원전의 내용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오대산 정착 이후 신효는 오대산에서 불법(佛法)을 개창했다는 자장에 이어 그 법통을 존속시킨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이렇게까지 원전의 내용을 비튼 데에는 분명히 무슨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실마리가 잘 잡히지는 않는다. 학의 날개가 세상의 본모습을 투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피비린내 나는 짐승 세상이 세상의 본모습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효가 미쳐 버린 계기를 이야기한 전반부의 설명은 쉽게 이해가 된다. 문제는 후반부다. 신효는 날개 주인인 승려를 만나 '미친 기가 슬슬 가라앉'았다는데, 왜 또 학춤을 추면서 미쳐 버렸는가? 잘은 모르겠으나 마지막 연에서 학의 날개를 '신효네의 옷자락'이라고 부른 걸로 보아, 신효 또한 학이 되어 갔다는 것을 지칭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컨대 시 속에서 신효는 광인이자 승려이며, 이 두 인간상은 세상의 본모습이 피비린내 나는 짐승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두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마지막 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본적으로는 학을 사냥하지 않게 된 풍조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짐승 세상을 직시하게 하는 학의 날개를 아무도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진리 또는 현실에 무관심한 세태를 은유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鶴이야 철새고 새인데 사냥감 충분히 되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