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쨔아~??
먼 곳에서부터, 아픈 몸이, 시, 여수, 전향기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0월 13일 까지 백지에서부터, 적, 마게팅, 절망, 파자마 바람으로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날이 추워져도 독회는 계속된다!!
진쨔아~??
먼 곳에서부터, 아픈 몸이, 시, 여수, 전향기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0월 13일 까지 백지에서부터, 적, 마게팅, 절망, 파자마 바람으로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날이 추워져도 독회는 계속된다!!
먼 곳에서부터 / 원래 순서가 신귀거래 이후의 시인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는 입장에선 그 이후여서 긴 여정을 끝낸 후일담 같이 느껴졌다. 일전에 그는 먼 여행을 하고 왔다. 그 목적은 이루 말하기엔 좀 건방진 것 같아 가늠만 해보자면 치유를 위한 발걸음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실패한 여행이었음을 신귀거래를 통해 알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봄과 여자, 그리고 능금꽃을 다시 찾는 그는 ‘모르는 사이에’라고 했지만 결코 몰랐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아팠던 그였다. 이젠 시에서 부터 시로 그 아픔을 다시 들여다 볼 차례다.
아픈 몸이 / 먼 곳에서부터와 비슷한 박자를 느꼈다. 4행의 베레모가 연상 시켜주는 것은 굳이 말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이전 시에서 이어 같은 아픔을 다르게 관조하려는 그는, 이젠 아프지 않다. 스스로 아픔을 변태시켰다-그러나 여전히 아픔은 계속 있는 아픈 몸이다.. 여전히 계속 돌고도는 방황을 해도 그동안 케케묵은 곰팡내에 모두 익숙해 질 것이다
시 / 아주 격했던 그 시기를 정지라 보면 다시 갈 차례기 왔다. 변화는 끝났지만 뜬금없이 물소가 호남 지방에 등장했다. 수레가 탈탈거리고 논도 얼어 붙었지만 간다는 것에 아주 집중을 하고 싶다. 물론 목적지는 그도 모를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모일 구원의 장소를 상정했다가 큰 아픔을 겪었었다. 암만 큰 나무로 숲을 이루어도 푸른 하늘을 가릴 수 없었던 그다. 그의 전진은 미친 상태같지만 4연으로 결코 그런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이젠 나름대로 광기에 맞설 배짱이 생긴거다.
여수 / 여기서 여수는 고향이 아닌 객지에서 느끼는 슬픔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서있는 시멘트로 만든 뜰은 고향이 아닌 객지라고 생각하고 이 시를 읽었다. 그런데 아내가 등장하고 집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 보니 그가 밟은 것은 고향의 땅이다. 땅이 고향의 의미를 잃어버려 그에겐 객지가 된 것 같다. 아니면 그가 고향 사람이 아니라 객지 사람이 된 거 일 수도 있다… 소록도는 검색해보니 호남지방의 어느 섬이다. 그래서 이전 시 ‘시’의 물소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의 본가가 어딘 지는 몰라도 낯선 느낌이 나는 집과 아내 이지만 다시끔 ‘아픈 몸이’에 나온 그 골목길 사이사이 틈을 찾은 기분이다. 김수영의 시 안에서 아내란 이런 느낌을 주기에 가히 신 적이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째 나는 여
전히 신귀거래에 취해 이 시 까지 강제로 연작시를 연장시킨 기분이다. 두고 버리고 던져야 할 것인데 아직 가시지 않았으면 하는 내 쓸데없는 욕심이고 바램이기 때문일까.
전향기 / 전향 전 생활도, 전향 후 생활도 정말로 그의 행실이다. 모든 것은 당연하며 자뭇 운명에 복종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에겐 시가 있고 술이 있다. 그래서 이 ‘전향기’는 내게 희극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느 하나 확고한 답을 주지 않으며 놀려 먹고있는 그가 좀 짖궃기도 유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느낌표까지 붙여가며 말이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 처럼 나도 웃었다. 최근 독회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웃음이란 것이 참 양가적인 감정을 준다.
다시 몸이 아프다. 신귀거래에서 김수영은 미칠 것 같거나 텅 비어서 아프지 않았다. 못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다다른듯 시계도 없었다. 인간적 감각, 감정이 희박한 비인간이었다. 선계에 속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다시 몸이 아프다고 할 때, 나는 세상 끝, 먼 곳으로부터 되돌아온 인간 감각, 통각 기능의 회복에 안도한다. 모르는 사이에 되찾아진 것
아픈 몸이_ 김수영이 대시인이라는 깨달음이 오는 시다. 아프지만 모자를 바꿔 쓰고 좁은길을 계속 가겠다고 한다. 아내의 방, 누이의 방에, 숲에 홀로 칩거하던 김수영은 아픔을 터트리며 거리로 다시 나온다. 식구와 친구와 적, 적의 적들 모두 함께, 연습 되면서, ‘즐거운 골목’이 ‘나를 돌리라’ 이제 행위와 의지의 주체는 자신으로부터 골목으로 양도된다.
희망적이나 매우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희망적이다
ㅅㅣ_ 갠적으로 김수영의 작란하는 듯한 시를 정말 좋아한다. 남성적 어조, 고뇌하는 지식인의 긴장감 높은 목소리 속에서 더러 마치 시인처럼(?), 아이처럼, 기운 빼고 하는 정신나간 표현들이 넘넘 좋다. ‘사전이 시 같은 나이의 시’ 이런 거 ㅎㅎ 이게 몬 소리야. 현대시사 n.5를 두고 볼 때, 진짜 미친듯한 재밌는 표현의 왕좌는 김수영이 앉아얄듯.
작란과 유희의 시를 쓸 때, 앞뒤 삐꾸 형태인 것도 특징이다. 요즘 같음 등단..어려웠을지도 ㅎㅎ
진짜아~ !!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시_ 변화는 끝났소, 세계 종말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세계에는 시인과 시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시의 정조는 자못 자조적이다. 누렇게 결은 시간과 땅. 논은 얼어붙고 현대성과 거리가 먼 수레가 탈탈 지나간다. 게으른 물소는 일하기가 너무 싫은 것이다. 변화도 욕심도 다 끝난 마당에 숲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보인다. 그러니 어쨋든 가 보는 것이다.
관성이든 배짱이든, 사전이라도 앞세워서 일 해야한다. 쓸 것이다.
전향기_ 한국은(외국은모름) 내부고발자에 가혹하다. 신념에 의한 전향이라도 반동으로 변절로 취급받았을 거다. 들개들이 마구 물어뜯을 것이다. 김수영은 자신의 사상적 전향을 풍자하여 조롱하는듯 보이나 순수한 사상의 전환을 용납하지 않는 교조 또한 비판하고 있다. 일타삼피?? 이건 가상의 적을 향한 격문 아닌가 ㅋㅋㅋ 공격에 사전대응하는 영리한 방법이라 생각
한다.그러나 병이 낫기 전 또 술을 마신다… 학대에요..
여수 _ 여수_ 쓸쓸한 시다. 시멘트로 만든 겨울뜰은 생명감을 잃은 죽은 공간에 가깝다. 김수영은 죽은 뜰에 갑작스레 돌아온다. 자신의 부재 중, 아내와 ‘그’는 밀회라도 한 듯 아님 최소한 뭔가 모종의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듯하다. 긴 부재에 놀라서는 안된다고 달래인다. 놀란 모양이다. 아마 그란 김수영이 부재한 동안의 김수영일 것이다.
어떤 변화에 대응하기도 너무 지쳐있다. 그저 상식에 취한놈… 자조로 이어진다. 김수영 산문이 떠오른다. 나는 시는 안 읽지만 그의 산문을 좋아해서 열렬히 본 적 있다. 상식과 정상성, 김수영이 현대사에내건 중요한 의제이자 키워드다. 그땐 이해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안다. 작란에 능한 그가 무한 작란을 제어하는 것.
부재했고 여전히 부재하는 겨울 뜰이다. 소록도에 두고 버리고 온 건 김수영 자신, 상식의 취기일 지도 모른다. 많이 아파보인다.
*현대사에 내건 ->현대시에 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