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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해:
원제인 夏日落은 '여름 해가 지다'는 뜻으로, 작중 등장인물인 샤를뤄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는 불가항력적이고 운명론적인 죽음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삶이 지닌 일종의 환상적 층위, 세속적이지 않은 삶의 새로운 국면을 뜻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해 여름 끝'은 아마 여름 해가 사라진다는 '시기'를 중점적으로 생각한 번역명일 것이다.
작품은 해가 뜨지 않은 한밤중에 시작된다. 어쩌면 세속적인 삶이 가장 사라진 시간.
그리고 샤를뤄가 스스로를 향해 총구를 돌릴 적, 그해 여름은, 이미 누구도 모르게 끝나고 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풀어쓴 번역명도 좋지만, 하일락이라는, 한국어 음차가 주는 기묘한 울림이 좋다.
「아침에 저는 그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해가 강 맞은 편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았어요. 강물은 황금 핏빛으로 물들고 버드나무에는 새들이 가득 차 있었지요. 산봉우리들은 전부 해 뒤로 물러나 옷을 벗은 것처럼 햇빛에 투명하게 빛났어요. 그렇게 벌거벗은 채 세상에 우뚝 서 있었지요. 다행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만 강 이편에 있는 바위 위에 서 있었을 뿐, 아무도 없었지요. 저만 다른 사람인 거였어요. 산마저도 저렇게 벌거벗고 있는데 말입니다. 맞아요, 아버지.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곳의 지는 해(日落)였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몇 리 길을 걸어 드넓은 황야를 지나 황하고도(黃河故道) 근처까지 와 있었다. ......
황하고도의 붉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지고 석양의 빛이 찬1란한 가운데 아주 멀리서 흔들리며 흘러 내려오는 강줄기는 금은보화처럼 찬1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사방에 아무도 없이 묘지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 샤를뤄가 묘사한 강 맞은편의 경치는 고스란히 지는 해 아래 펼쳐진 지평선에 투영되어 있었다. 반쪽짜리 붉은 해와 강물, 허리를 구부린 버드나무와 층층으로 겹쳐진 산줄기 등 풍경 전체가 석양 아래서 흰 구름으로 변환되는 것 같았다. 자오린과 지도원은 모래언덕 위에 똑바로 서서 멍하니 그 지평선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자오린이 말했다.
샤를뤄는 바로 이곳에 왔던 거야.」
1.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군대가 지닌 기묘한 특수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품이 '군대 소설'인 만큼 군대라는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아이러니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인 자오린과 지도원은 전형적인 간부 유형으로, 승진에 목말라하며 중상모략으로 점칠된 삶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군대는 피하고 싶은 농촌의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며, 그렇기에 그들은 군대에서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항상 이득과 손실을 계산해가며 군생활을 한다.
작품에서 처음 총이 사라졌을 때 그들이 걱정한 것은 그들의 안위였다. 본래 전쟁으로 인해 죽음의 부조리를 표상해야 할 군대라는 공간은 세상이 평화의 기조를 띰에 따라 점차 처절한 삶의 보금자리로 변모해간다. 이와 반대로 전쟁 상황과는 전혀 다른 '총'의 사용처는 그들의 삶이 처한 국면을 드러내준다.
2.
자오린과 지도원은 모두 전쟁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심지어 지도원은 중월전쟁 시절 다른 부대원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는 그러한 살아남음에 의해 끊임없이 삶을 향해 끌려나간다. 살아남은 자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아니, 그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은 자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일종의 삶과 죽음의 굴레만 존재할 뿐, 어떠한 의미도 없다. 그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 것이다.
마치 지난 전쟁의 보상처럼 존재하던 삶은, 해가 떨어진 뒤를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샤를뤄의 죽음은 그들이 알고 있었던 여름의 해를 떨어뜨리고, 이제 그들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삶을 잃어버리게 된 이들로서, 구금실이라는 공간을 부여받는다. 역자인 김태성 선생님의 언급대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케하는 5~8장의 시퀀스는 그들이 여태까지 처세해온 삶의 허위성, 그저 진급과 도시 호구(户口, 일종의 영주권)라는 맹목적이고 허상적인 목표를 따라왔던 기묘한 삶의 부조리함을 곱씹어보게 한다. 이와중에 그들이 적으로 삼고 싸웠던 베트남과는 평화의 기류가 흐르고, 그들은 구금실에 갇혀 지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심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 나눈다. 지도원 가오바오신의 대사, '나는 진심으로 이곳을 떠나고 싶네'는 단순히 군대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으로 마련된 일종의 '정식 루트'로부터의 탈피를 뜻할 것이다. 그 모든 하루를 겪고, 그가 느낀 감상은 단념이었다.
3.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보여졌듯(물론 「그해 여름 끝」이 훨씬 먼저 나온 작품이고, 오히려 「인민」에서 이러한 상징이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옌롄커에게 '불륜'은 '주어진 삶으로의 탈피'라는 의미로 종종 나타나곤 한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 정념에 반하는 부도덕이 아니라, 중국 사회가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삶'의 방식, 그러니까 인간 본연의 욕구에 충족되는 삶의 방식이다. 작품 내내 자오린은 아내와 자식들의 호구를 도시로 옮겨 오고 싶어하고, 이것을 이루면 마치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이 이루어질 것처럼 바라지만, 이것은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의 '구름 위'처럼 허상적이고 환각적인 목표처럼 보인다. 한편으론 자오린은 '왕후이'에게 정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군인의 도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왕후이는 자오린과 정반대에 놓여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오린의 연장선에 놓여잇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 역시 이미 한 번의 결혼을 겪었지만, 그것은 정념적이지 않은 '정석적인' 결혼으로, 자신의 뜻에 따라 이혼할 것임을 계속해서 자오린에게 어필한다. 이것은 좁은 의미로는 실제로 자오린과 새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일종의 구애이고, 더 넓은 의미에서는 자의적이지 못하고 허상에 이끌리는 현재 자오린의 삶에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결말 부분에서 자오린이 왕후이를 만나고 '싶어', 만나러 '갔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마치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처럼.
자오린은 정말로 왕후이를 찾아가고 싶었다.
자오린은 정말로 왕후이를 찾아갔다.
4.
여름의 끝처럼 죽은 샤를뤄, 그리고 모든 게 바뀌듯 살아가는 자오린과 가오바오신. 불가역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죽음과 삶의 전환으로부터, 이 작품이 가장 힘 있게 남기는 것은 다름 아닌 황하의 환상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샤를뤄가 죽기 전 아버지에게 보낸 '강'에 대한 장황한 편지들은, 어쩌면 그의 죽음과 동시에 그가 유지하고 있던 삶의 편린 역시 그려내고 있는지 모른다.
옌롄커가 최근에 그려내는 환상적인 층위는 어쩌면 모든 이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허위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실이 때때로 우리가 품고 있던 모든 것을 뛰어넘을 때, 우리는 황하에 떨어진 여름 해를 떠올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모든 게 기묘하리만치 뒤집히고 마는 풍경을.
책은 안읽어봤지만 좋네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