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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읽기 전에는 좀 걱정스러웠던 점이 있었다. 어디서 마크 피셔가 '신좌파 힙스터들의 조던 피터슨'라는 평가를 듣고 괜히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거 문학 평론을 핑계로 지 하고 싶은 소리나 하는 정치병자가 아닌가 싶어서 살짝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감이 있다. 막상 책을 읽어 보고 나니 저런 느낌은 거의 없었고(있긴 있었음), 다음에 공포문학을 읽을 때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낯선 대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으로 세분화하여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이한 것은 어떤 이질적인 존재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반응으로, 익숙한 대상과 낯선 대상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흔들리는 혼란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주로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의 공존 혹은 범주를 위반한 존재에 대한 당혹감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동물 대가리를 한 사람이나 꽃으로 지어진 집은 서로 함께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이하다. 다른 예로,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의 그림자>나 <벽 속의 쥐> 같은 경우 어떤 인간이 초자연적 존재의 혈통이라고 하는 점에서 범주를 위반하기 때문에 기이하다. 또 이건 책에 나온 예시는 아니지만, 흔히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는 현상도 이런 범주를 위반한 기이함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으스스한 것은 어떤 이질적인 존재 그 자체보다는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오는 혼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질적인 대상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해석, 추측, 의문이 개입하면서 비롯되는 수수께기와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곳에 없고, 분명에 없어서야 할 것 같은 곳에 무언가 있는 경우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라는 존재의 원인은 무엇인가? 의도는 무엇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이 존재하도록 만든 주체는 또 누구인가? 같은 의문이 있다. 으스스한 것은 이러한 수수께끼라는 점에서 기이한 것과 다르게 해소될 여지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기이한 것>을 읽으면서 츠베탕 토도르프의 <환상문학 서설>이 굉장히 많이 생각났다. 익숙한 대상과 낯선 대상의 긴장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서설>을 연장선으로 보면 몇 가지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구분은 토도로프의 '환상성'을 조금 더 구체화시킨 것처럼 느껴진다. 토도로프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혼란을 단순히 환상성이라고 정의했지만, 피셔는 이 환상성을 다시 세분화해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으로 구체화 시킨 것이다.
둘째로 피셔의 개념은 조금 더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도로프의 환상성의 경우에는 문학 속에서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피셔의 이 개념을 존재 일반으로 확장시킨다. 익숙한 대상과 낯선 대상, 존재에 대한 의문 등에는 창작물 속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이 필요 없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피셔의 개념을 일반적인 문화비평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비평가적인 면모가 조금 느껴지는 부분인 듯...
마지막으로 <서설>을 읽을 때 아쉬웠던 부분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저번에 <서설>을 읽었을 때 너무 18, 19세기 문학만 다루는 것 같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었는데, <서설>에 빠져있던 20세기, 21세기를 <기이한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심지어 <기이한 것>은 적용 범위가 넓은 만큼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음악,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더 풍성한 느낌이다.
괜한 선입견으로 걱정했던 거에 비하자면 매우 유익하고 만족스러웠던 독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책이 좀 어렵다. 아주 얇은 책이지만 <서설>보다 이게 더 어려웠다. 아마도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첫째로 저자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다양한 예시에 적용하기보다는 개념을 적당히 모호하게 정의한 다음 예시를 통해 조금씩 구체화한다. 나는 전자의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 터라 조금 불만이긴 했지만, 그 자체로는 큰 문제 없다고 본다. 이건 그냥 개인의 호불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스타일이 다음 문제점과 결합하면서 글이 매우 어려워 진다는 점이다.
둘째는 매우 많고 불친절한 예시이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굉장히 박학다식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일일이 다 설명하기란 몹시 어렵고 분량의 문제도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저자는 설명을 생략해 버리기로 한 것 같다... 이 책의 예시들은 매우 대략적으로 요약하거나, 특정한 장면만 단편적으로 묘사하거나, 아무런 설명 없이 이름 등장하는 식으로 나열된다. 독자는 이런 불친절한 예시를 통해 개념을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식의 서술이 굉장히 힙스터스러운 불친절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게 말하면 쿨하고, 나쁘게 말하면 배타적이다. "이거 알아? 모른다고? 모르면 말아."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에 모두 빠삭한 독자라면 정말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어려운 건 전적으로 내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일단 나는 아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어려운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무척 유익한 책이지만 쉬운 책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조금 사소한 지적이긴 한데, 내가 읽은 구판은 번역이 좀 구렸던 것 같다. 개정판이 새로 나온 것으로 아는데, 이쪽에서는 많이 개선되었을 거라 믿겠다.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재독하면서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자본주의 리얼리즘 이상으로, 나오는 작품들 모르면 읽기 힘든 작품이었구마이
자본주의 리얼리즘도 궁금하긴 한데, 이거 읽어보니까 그거도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함 ㅋㅋ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나는 그래도 작품들 몰라도 어느정도 이해할만 했음!
피셔는 자기가 속한 문화권에서 비평, 연구를 한거고 그걸 읽는 대한민국 사람은 어려울 수 밖에 없음. 같은 문화권도, 그 문화를 빠삭하게 아는것도 아닐테니. 그리고 누가 헛소리한건지 몰라도 피셔랑 피터슨은 엄연히 다름.
피셔는 본인전공에서 갈고닦은 능력으로 동시대 문화비평, 분석을 좀 쇄신할려고 한거고, 피터슨은 지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를 (이것 자체는 괜찮음) 지멋대로 해석하면서 헛소리 나불대서 욕먹는거임.
전혀 다른 예시지만 제리 멀러의 '성과지표의 배신'같은 책을 보면 본인전공이 아닌 분야임에도 중요한 책과 연구를 캐치하고 그걸 토대로 글을 썼음. 물론 해당분야의 최첨단 연구라기보다 정리이면서 그걸 토대로 (+ 본인 경험) 제안을 하는데 이게 보통 권장되는거임.
피셔가 빨리는 이유가 있음
환상문학 서설 봐야겟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