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갤에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에 관한 내용은 거의 전무하다.
만약 작가의 인지도로 소설의 등급을 매길수 있다면 이런 삼류 소설은 과거에도 그랫듯, 미래에도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읽히는 책이 될테고, 난 그 먼 미래의 한두명이 <포로기>를 우연찮게 찾아볼껄 대비해,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이 소설의 특징은 포로 수용소의 특성상,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 주변인물들이 소설의 깊이를 더해주지도 않는다. 왜냐면 몇장 넘기다 보면 그 주변인물이 벌써 죽어버리기 떄문이다
이 소설에 교훈따윈 없다. 오오카 쇼헤이는 미군에 잡혀 포로 수용소에 들어가기전, 숲을 헤메던 미군 병사 한명을 바로 앞에서 쏘아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되묻는다. 왜 내가 저 미군을 쏘지 않았을까. 요 지루한 자기성찰 (=왜냐면 따뜻하고 안전한 한국이란 나라에서 가끔 고추나 긁적이며,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인 나는, 그가 왜 미군을 왜 안 쐇는지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기에 스킵하며 읽었기 떄문이다.) 이 부분만 통과하면, 곧 포로 수용소로 입성하기 때문에 주변인물도 많이 등장하면서 재미를 더하게 된다.
한가지 예로 이런 구절이 있다. "아키야마라는 이름의 그는 오사카에 있는 작은 제철소 사장의 아들로, 교토 대학 철학과 학생이었다. (생략.....) 그는 레이테 전투 말기에 서해안에 상륙한 중원 부대의 병사로, 나중에 산속에서 하마터면 동료들에게 잡아먹힐 뻔햇다고 하는데, 그 경험에서 별로 이렇다 할 결론은 이끌어 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난 교훈 없는 소설을 최고의 소설로 친다. 마치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를 빌려, 언급햇던 소세키의 <갱부>의 주인공처럼, 아무 교훈도 없고, 주어진 환경속에서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의 인물들 위주로 등장하기 떄문이다. 랭던 길키가 쓴 <산동 수용소> 읽었을땐, 25세 정도의 독실한 기독교 청년의 열정적인 수용소 체험담이라, 처음에는 재밌게 읽었다가 갈수록 그 작가의 과도한 열정이 마음에 안들어, 중도에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다.
토마스 만은 소설 <마의산>에서 20대를 너무 과격한 실험적 시기라고 규정한다. 다행히 오오카 쇼헤이와 포로에 수용된 수많은 동료들이 30대 중반 (= 열정의 과도기는 이미 지낫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자아가 어느정도 완성된 나이대인 30대 중반) 에 보충병으로 착출됀 케이스라 소설에 과격함과 열정이 없다. 내 자아를 편한함과 쉽게 타협한다. 즉 타락을 받아들인다. 꾀병도 부린다. 미군들 통조림을 훔쳐먹기도 하며, 꿀보직을 맡길 원한다. 애국심 따위는 개나 줘버린다. 그냥 주위 환경에 맞춰 흘러갈 뿐이다. 비평가로도 활동하는 저자의 특성상, 담담하고 무미건조하게 주변인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이어가려 노력한다. 도끼의 <악령>이나 <죄와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휴머니즘에 매료된, 열정의 과도기를 지내는 20대 독붕이들은 그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할테니 요 책은 패스하길 바란다, ㅇㅇ
이거 사놓고 안봤는데 봐야겠다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