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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랑수아 줄리앙

옮긴이: 허경

부제는 '도덕의 기초를 세우다' 이다.

 2004년작



1. 개요

 이 책은 서양철학이 갖는 도덕의 정당화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계몽철학자들의 이론을 맹자와 비교해보는 것으로 그 차이를 통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오해하면 안될 것이 중국사상 최고라거나 그 반대가 아니라 이론 간의 수평적인 비교를 통해 배울점과 비판점을 도출하고, 어떤 면에서는 융합을 도모해보고자 한다.



2. 배경

루소와 칸트로 대표되는 계몽철학자들이 종교적 형이상학과 철학을 분리한 이후로 도덕이란 오직 인간성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했다. 이것을 도덕의 기초와 도덕의 원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도덕의 원리는 도덕을 이론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도덕의 기초에 있는데 이는 도덕을 어떻게 정당화 시킬지의 문제였다. 

 계몽철학자들이 인간성 위에 도덕을 세우는 노력을 했으나 이는 그 스스로도 불안한 구조였고 니체등 비판철학자의 등장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서양철학의 체계에서 도덕이란 인간성(이성, 선 등등)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없었다. 니체는 이를 지적하며 비도덕주의자를 자처하며 도덕의 기초를 말 그대로 박살냈다. 따라서 지금의 도덕은 단지 다수의 동의에 의해 정당화 될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사상은 서양철학과는 그 전제나 역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서양철학이 안고 있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도 하다. 물론 중국사상이 맹자가 속한 유가뿐만 아니라 서양철학과 상당히 유사한 명가나 법가부터 (개인적인 생각으론)현대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도가까지 넓게 있으므로 단정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맹자의 사상에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이다.



3. 비교점

 두 가지 예시로 계몽철학자와 맹자의 차이를,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보자.


 1) "중국의 사유는 신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담과 같은 존재를 없어도 된다."(163p)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 삶을 어디에 비유하는지 보면 좋겠다. 서양에서 신화는 인간 삶의 모티브인게 전통적인 해석으로 삶이란 영웅의 인생을 되풀이, 반복, 재현하는 것이다(참고:영원회귀의 신화). 하지만 맹자에게 삶, 전체적으로 세계의 이치란 식물의 생장처럼 때가 있고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을 일이 있으며 결국은 하늘의 뜻에 맡겨야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결정론으로 봐선 안된다.)


 2) "맹자의 '측은지심'은 루소의 '동정심'과 매우 닮은 점을 가지고 있다."(119p) 저자는 이것이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유사성만으로는 아무것도 단정지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동정심(측은지심)이 작동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자연발생적이지만 태생이 다르다. 서양은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 주체-대상의 구조가 작동한다 따라서 동정심이 생기고 자신을 대상과 동일시하여 도덕이 발생한다는 루소의 논리는 주체가 대상과 동일시 되는 지점에서 단절이 발생한다.

 하지만 맹자에 따르면 측은지심은 나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주체-대상의 이분법 없이 나와 타인의 관계에 따른 효과로서 측은지심이 발생하기 때문에 루소의 이론에 따른 자기동일시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심지어 맹자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하여 측은지심에 따른 인仁(도덕)이 세계에 대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인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긴밀한 관계가 있으며 그 속에서 효과(도덕등)가 발생한다는 것을 저자는 '개인횡단성'이라고 명명한다.



4. 유의점

 책에 나오지 않는 두 가지를 주의했으면 하는 게 있는데 하나는 도덕과 윤리의 구분, 또 하나는 단어다.

 책 초반에 짧게 이 책은 도덕을 다루지 윤리를 다루는 게 아니라고 한다. 대충 설명하면 도덕은 선에 기초한 사회적 가치나 규범이고 윤리는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윤리가 도덕철학이 아닌가 할 수 있는데 대충 코런갑다 해도 이걸 읽는데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또 이건 내가 고등학교때 루소의 책을 읽을 때 느낀 점인데 분명 서양인이 쓴 책을 읽는데 번역된 단어가 덕悳일 때 이게 내가 아는 덕인지 아닌지 모를 때가 있었다. 현대 한국인이 쓰는 한자어는 공자왈 맹자왈 시대의 한자와 비교해서 그냥 다른 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한자를 봤을 때 이게 우리의 일상언어와는 다르다는 점을 주의하길 바란다.

 뭐 사실 이런 점을 차치해도 읽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도 좀 더 윤리학이나 중국사상을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까해서 끄적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