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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지역 도서관에 있는 욘 포세 작품이 <3부작> <아침 그리고 저녁>이 있는데,
<3부작>은 어떻게 상호대차해서 빌렸는데,
<아침 그리고 저녁>은 상호대차 하려니까 홈페이지에서 오류를 뿜어대서...
<3부작> 먼저 읽어보고 <아침 그리고 저녁>은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보려고 합니다..
<3부작>은 각각 따로 발표된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하나로 묶은 소설입니다.
가난한 연인, 아슬레와 알리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들의 사랑과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 소설의 키워드가 사랑보다는 운명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이 소설의 특징이라면, 마침표가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설은 마침표 없이 띄어쓰기와 쉼표(,)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심지어 큰따옴표도 없습니다)
마침표가 없다면 글이 굉장히 난잡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텐데
욘 포세의 <3부작>은 오히려 시나 희곡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반복과 리듬의 힘이라고 말하는데,
제 생각도 그 반복과 리듬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반복과 리듬, 마침표가 없는 문장, 시점과 시간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점이
약간 카프카? 스러웠던 것 같은데,,
저도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게 아니라 그나마 비교할만한 게 카프카라서...
조금은? 아니 많이 다른? 점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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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기 과거로부터의 노래를 듣고, 자기 미래로부터의 노래를 듣고, 아버지 아슬락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모든 것이 운명 지어진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임을 안다 (p.29)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해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이 슬픔의 무언가가 남아 있는데 그게 수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듣는 걸 즐기는 이유야, 음악이 그들의 삶을 들어 올리고 고양시켜 주거든, 저들이 장례식을 치르거나, 결혼 잔치를 열거나, 그냥 만나서 춤을 추거나 기념을 할 때도 말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우리들만 그런 운명을 받게 되었는가 하면, 그래, 그건 내가 답할 수가 없구나(p.29)
그리고 아슬레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정해졌음을 느낀다, 중요한 건 내가 아냐, 크게 떠오르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바이올린 연주가 내게 가르쳐 주었어, 그걸 아는 게 바로 연주자의 운명이야, 크게 떠오르는 것, 나에게 그것은 알리다야(p.77)
올라브는 춥다고, 덥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고 느낀다 그는 두 눈을 감고 그저 앞으로 걸으며 비명과 외침을 듣는다 더는 아무것도 없어, 지금 존재하는 것은 떠오르는 것뿐이야,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어, 남은 것은 떠오르는 것뿐, 내가 떠오르고, 알리다가 떠올라, 하고 그는 생각한다.
나는 아슬레야, 그가 외친다(p,185)
읽어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