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회 참여 해주는 독붕이들 멋져
백지에서부터, 적, 마게팅, 절망, 파자마 바람으로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10월 18일까지 만주의 여자, 장시1,2 , 만용에게, 피아노 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불금에도 독회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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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에도 독회는 계속된다!!
백지에서부터 / 명료하게 구분 하는 듯 하다 어쩐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저녁놀 물 앞에 서서 존재의 막막함에 겁에 질려하면서도 그 신비함에 벙쪄하는 것만 같았다. 색이든 뭐든 변화의 요인은 시간이 아니라하고 그 사이 간극에 자리를 준다. 밝다 라는 거에만 초점을 두면 긍정적인 것을 기대할 법도 한데 시에 나오는 건 고통뿐-어꺠,두통,노후-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자연을 두어-하얀모래,비둘기,삼월의 구름-낭만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하는건 시간이다. 내 생각에 시인이 예찬하는 건 단일적 색이 내는 그 아름다움이 아니다. 한 색이 다른 색으로 변할 때의 그 과정 혹은 순간을 두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 같다. 그 간극들에서 만물이 숨 쉬고 진실이 있다는 거다-이것은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시인들과의 차별점이라 해야되나 이 시가 내게 큰 감명을 주고 감정에 있어 층위를 깊게 더 해준 것은 다름아닌 마지막 두 행이다. 마르쉘 프루스트가 만약 이 시를 읽는다면 좋아할 것 같다
적 / 선과악의 이분법, 자칫하면 하품나올 수도 있는 주제를 확장시키는 느낌이었다. 되려 그런 도덕윤리 같은 것이 아니라 고수해야되거나 혹은, 지켜야 될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만 같다. 그것의 주인은 나도 아니고, 내 친구들도 아니도 아니다. 순사와 땅주인 운전수의 것도 아니다. 이 시에서 주인 행세하는 것은 당연 더위다. 그러나 더위는 완전히 누구의 것도 아닌 그 가치를 지배하지 못한다. 시금치밭에 앉는 나비에게서 더위가 느껴지는가?-물론 더위를 피하는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상깊은 건 더위는 항상있지만 적은 있다가도 없어진다. 그리고 앞서 말한 가치는 이 시의 적과 매우 닮아있다. 가치와 적의 교환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만 기분도 든다. 김수영은 시에서 유독 더위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힘을 과시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냅두고 공연히 적만 다루는 것이 조금 경직 돼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정말로 그것을 되묻기에 함정을 파 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마케팅 / 이 시를 좀더 심도있게 읽고 싶어 마케팅의 사전적 의미-상황의 변화에 대응해 가면서,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상품 또는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활동-를 검색 해 봤다. 김수영에게 있어 그의 상품은 시이고 아마 23행을 보니 소비자는 아내처럼 -심부름 하는 느낌이라-보인다. 그의 시에서 아내는 어떤 표상 혹은 도구 등등 여러 역할로 나온다. 그의 시 소비자들은 보통 민중들일 테니 여기선 대중이 돼 줘야 하겠다-그는 ’아내’를 심미적으로도 이용한다. 그들에 맞춰 그는 본질적인 4개의 사물 비닐,파리통,도배지 그리고 면도날을 준비 해 준다. 천장지와 벽지를 혼동하지만 그는 모란으로 화해시킨다-그런데 이미 이 대목 시작부터 모란꽃을 놓았기에 굳이 그가 혼란스러워 하며 규정
시킬려고 한 이유를 모르겠다(혼동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소비자가 요구 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국, 그가 여태 가물가물 하다가 마침내 떠올리는 건 면도날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물에 대한 감상을 굳이 말하진 않겠다. 분명 그건 지루한 일이고 김수영이 누누히 말해왔으니까. 아직 나는 비닐,파리통 그리고 도배지-앞서 나온 것들도 함께-에 가까이 가지 못했고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엔 그것은 역사적 참여가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로 앞에 두 개는 구질구레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시덥잖은 욕심이다.
절망 / 나는 이 시가 단어들을 늘어트려놓은 점에서 이전의 그의 시 마케팅이 떠올랐다. 장소로는 일본,이북,삼랑진을 걸쳐가고, 사람으로는 미인,시인,사무가,농사꾼,상인 심지어 예수가 된다. 나는 이 괴기한 청년에게서 갈피 못잡는 천수천족수, 괴물의 모습을 본다. 2연에서 나는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해봤다. 범인의 것인 애아와 우물과 사닥다리 그리고 문표-그 범인의 이름이 적혀있을 것인-를 들춰내야 그가 찾던 피투성이 만년필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생활을 해야하는 범인을 뚫고 들어가 아내의 가방속을 들춰내야 한다. 시는 이런 현상을 보여줄 뿐이지 이 인물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밥만 먹고 갔다(여기에도 혼란이 있다). 정말로 절망 그 자체 뿐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완성을 완곡히 거부하고 싶은
영원한 미완성의 미덕을 중시해야 될 것만 같다. 범인의 것에서 멀어져서 영영 괴물의 형태를 하여도 말이다
파자마 바람으로 / 어느 연에서든 체면을 못 차리는 나약한 모습이다. 순경에게, 심부름 하는 놈에게, 자신의 사회적 모습에게, 시와 수필앞에서도 체면을 못 차린다. 이 모든게 파자마 바람이 탓일 텐데 환복만 하면 해결되는 단순한 사안을 방관하듯 느긋하기만 하다. 일상적 상황에서 늘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의 고백일까 아니면 자책일까 혹은 둘 다 일까. 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우와!! 굉장해!! 나도 시는 읽었는데 일이 넘 많아서 ㅠ 요번 시도 난 좋드라아. 쓴이 글도 공감대고 좋은 데가 많고. 잘 읽었어. 위대한 김수영동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