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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철학에서 뭘 다루고, 철학을 배움으로서 뭘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이는 눈을 밝힐 테고, 어떤 이는 한숨을 내쉴 테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리 도움되는 대답을 하지는 않는다. 심할 경우에는 철학은 단순히 다른 학문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일 뿐이라고 하는 이도 있을 테며, 왜 그리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기도 할 테다. 그저 그런 것이라고. 다만 그 과정에서 철학이 '진리'라고 표방할 만한 뭔가를 탐구한다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애석하게도 이 글을 쓰면서 이미 그 반례가 될 만한 이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런 이들까지도 어쨌든 그런 깨달음 자체가 진리를 추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런 진리는 없다는 새로운 진리 따위 말이다. 이건 참 애석한 일인데, <반철학 입문>의 서문은 현대 사회에는 너무나 진리가 많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로 다른 진리들이 경쟁하며, 심지어 그런 진리가 딱히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결국 그 모든 주장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 셈이다.
<반철학>은 그런 맥락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의 기획 자체에 반대하는 이들을 모아보는 기획이다. 여러 학자들에 대한 에세이를 다소 느슨하게 엮어 놓으며, 이들이 어떤 의미에서 그 기획에 반대했으며, 그럼에도 철학에 붙잡히고 말았는지를 이야기하는 식이다. 처음으로 나오는 쇠렌 키르케고르는 좋은 예시인데, 당대의 지배적인 헤겔 철학이 모든 것이 결국 자신 안에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라며 진리 추구 활동에 대해 선언한 것에 반대하며, 이것이 전제를 두고 있는 플라톤에서 칸트까지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원래 있었던 새롭지 않은 인식이라는 점과 기독교의 전적인 새로움을 대치시킨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완전히 평범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예수라는 현상은 기실 모든 인식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 바탕으로 키르케고르는 모든 범속한 것의 특수성을 주장했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신앙 역시 각각의 개인에게 특수한, 타인과의 관계와 완전히 무관하게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신양의 도약을 필요로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쓴 글이 그렇기에 모두에게 지식을 줄 수 있다고 믿지 않았고, 이 글을 통해서 한 개인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그 자기만의 길을 발견할 수는 있더래도 선택과 행동 없이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글은 어떤 보편적인 학문이 될 수 없다. 그래야만 한다고 그는 생각했을 테지만, 이 시대에 키르케고르의 학문은 괴상한 역설을 맞이한다. 그가 준 충격으로 인해 "실존적 역설 자체를 체계화를 위해 사용하려는 철학적 담론들이 생겨"나는데, 하이데거, 데리다, 보드리야르 등이 이를 통해 세계의 주체성을 끝장내며 "이전에는 주체성이 스스로를 체계의 무한한 내적 명증성, 즉 절대정신에 연결시켜야만 했던 반면, 지금은 주체성이 명증성 못지않게 체계의 무한하고 절대적인 내적 의심에 스스로 동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세계에서 그런 도약은 유한의 세계에서 무한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그렇게 반철학은 자신의 시도에 실패하며 철학에 통합되어 실존주의와 후기구조주의라는 계파의 일원이 된다.
이 밖에도 여러 예시들이 어떻게 철학적 기획이 진실되지 못하거나(그들은 그저 자신을 모든 사람으로 보편화하려는 것 뿐이다 - 레프 셰스토프), 사회적 권력을 생성하는지(그들의 주체 없는 계시는 문헌 보관소의 영원한 삶을 위해 봉사할 뿐이다 - 자크 데리다), 또는 그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는지(철학은 진리를 찾아 생산하지만 신학은 이미 찾은 진리를 재생산하며, 대중 생산의 시대는 신학의 철학에 대한 승리다 - 발터 벤야민)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에서 절대정신은 완성되었으니 역사는 바로 그 순간 종말을 맞이했고, 우리는 그저 이 절대정신을 복제해야 할 뿐이다 - 알렉상드르 코제브) 등을 보여준다. 약간 신기한 점은 어쩌면 그 점에서 가장 반철학적이라고 할 만한 마르크스("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인데, 너무 뻔하다고 하기에는 키르케고르도 나름 이쪽으로 꽤나 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비록 그것이 진리의 탐색이 아닌 진리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고 하더래도, 철학적인 진리를 훼손되어선 안 되는 절대적인 것으로 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반철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책 셰스토프가 흥미로웠음
셰스토프도 그렇고 코제브 관련해서 당시 러시아 종교철학에 좀 관심 갖게 됨 - dc App
난 윙어랑 벤야민때매 이거가읍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