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분량인 <구름 한점>을 읽어오신 분들은 댓글에 감상을 남기시고 자유롭게 토의 하면 되시겠습니다
내일은 다음 단편인 <대응>을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댓글 17
수록된 단편들의 딱 가운데에 위치한 단편이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의 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듦. 제목부터 살펴보면 <구름 한 점>, 혹은 <작은 구름>이라는 점에서 구름에 대한 두 가지 레퍼런스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작중에서 딱히 구름에 대한 묘사는 없었던 거 같은데 있었다면 누가 얘기 좀), 하나는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에서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구름의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는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경구인 “인생이란 잠시 모였다 흩어질 뿐인 한 점 구름과 같다.” 아닐까, 싶음.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3
답글
전자라면 프랑스의 환락과 지저분한 삶들을 예술로 그려낸 현대시의 대표자인 보들레르가 추구하는 구름 같은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우리의 주인공 리틀 챈들러라는 이유로 제목에 구름이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후자라면 한낱 흘러갈 삶에 불과한 주인공의 처지를 부각하는 개념이 아닐까, 싶지만 뭐 그냥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셈 ㅋㅋ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3
답글
이 단편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이유는 조이스가 중요하게 다루는 “에피파니”가 단편집 중 처음으로 등장하기 때문임(어찌보면 예술에 관련된 인물이 처음 등장하기도 해서 그런가 싶고?). 갤러허를 만나러 가며 더블린 시내의 어떤 따분한 광경, 그리고 자신의 기분과 이 풍경이 합치되며 부여되는 시적 순간이 일상에서의 깨닳음이라는 에피파니를 잘 보여줌. 이 에피파니는 결말에서까지 주인공을 붙들며 놓치기 싫은 삶의 번뜩이는 한 순간이라는 점을 나타내지.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3
답글
또한, 이 에피파니를 겪는 인물이 삶의 다른 사건들과 만나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를 나름의 “객관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임. 이후 읽을 <젊예초>나 <율리시스>의 경우 삶의 모든 순간들이 인물의 의식에 덧씌워진 채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나름 외부의 서술자가 존재하는 <더블린 사람들>의 시각을 독특하다 할 수 있겠다.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4
답글
물론, 개인적으로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처럼 예술인이 일반적인 소시민들을 보고 겪는 질시와 그 속의 동경이라는 키워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거 같지만….(이런 점에서 <더블린 사람들>은 언제나 습작이라는 오명에서 못 벗어나는게 아닌가 싶음. 조이스는 의식에 대한 탐구 수준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그 바깥의 세계 그 자체에 대해선 다른 대문호들에 비해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듦 예를 들면 톨스토이라던가 ㅎ).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4
답글
다만 한 가지 정말 감명 깊었던 건 결말부의 아기를 달래주는 장면임. 삶과 예술 간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에피파니가 붕괴하는 순간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그 촉발이 아기의 울음이라는게 정말 감명깊음. 왜냐면 이랑 비슷한 장면을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본 적이 있거든. 곽오주라는 임꺽정 패거리의 속한 한 인물을 다루는 장면이었는데, 도적질만 하던 사람이 어쩌다 맘에 드는 처자랑 결혼까지 하고 아이까지 생겼지만 출산 도중 아내가 죽어버렸음. 인생 내내 깡패 짓만 일삼던 사람이 잘 살아보려고 결혼까지 했는데 남은 건 당장 젖부터 먹여야 하는 핏덩이임. 이런 사람이 젖동냥은 물론이고 아이 달래는 것까지 견디겠음?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5
답글
아등바등 업어 키우다 어느 날은 거의 열흘 가까이 밤새 우는 아이 달래고 정신까지 피폐해진 상태에서 (우리의 리틀 챈들러처럼) 아이에게 소리를 꽥 지르다 (우리의 리틀 챈들러는 차마 넘지 못한 선인) 아이를 내팽겨쳐버림. 아이는 죽어버리지. 그러고 곽오주는 또 몇날몇일을 잠도 안자고 실성한 채 짐슴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아이의 시체를 붙들고 지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그 사건이 너무 큰 트라우마가 되어서인지 이후 어린아이의 목소리나 울음소리가 들리면 경기를 일으키며 주변을 닥치는대로 부수고 잘못하면 아이까지 죽이려드는 발작을 가지게 됨.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6
답글
시대 상 홍명희가 <더블린 사람들>을 읽었을리는 없다 생각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이의 울음이라는 장치가 가지는 위력이랄까, 공통적인 생각이랄까가 참 신기했던 거 같음. 의식 속의 삶이 깨어지는 문명인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는 트라우마를 안고 평생을 살게 되는 야만과도 가까운 삶의 대조도 생각나고 하여튼 그렇다.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26
답글
원서 펭귄판에선 열왕기상 18:44을 레퍼런스로 제시했던걸로 기억함
익명(218.52)2023-10-15 19:36
답글
젠장 또 성경이야
배고픈독린이(jsong1999)2023-10-15 19:37
답글
문예출판사 역본에서는, 작중에서 갤러허와 챈들로가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초반부에 "갤러허는 숨어있던 연기의 구름 뒤에서 얼마 후에 다시 나타나면서..." 라는 구절이 있음.
제목의 구름 하나가 이 구름을 의미하는 거였다면, 그 구름은 첸들러와 갤러허 사이의 존재하는 구름이겠지. 그 사이에서 갤러허를 가리기도 하고, 다시 보여주기도 하는..
별조각(211.36)2023-10-16 01:43
답글
챈들러가 갤러허를 만나러 가기 전에는, 런던에서 노는 친구 한 명을 둔 것이 자랑스러웠는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여줌. 하지만 막상 갤러허의 앞에서는 그들과 똑같은 그저 그런 아일랜드 사람으로 전락해버렸지. 결국 열등감에 빠져 주눅들어버리고 맒
별조각(211.36)2023-10-16 01:46
답글
과대한 해석일수도 있지만, 구름 하나는 챈들러에게 갤러허를,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는 눈을 가려준, 그리고 마침내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존재가 아니었을까.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면서 조이스가 그려낸게 단순히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나 보편적인 인간군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음. 어쩌면 그런 '구름 하나', 우리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게 아
별조각(211.36)2023-10-16 01:50
답글
닐까.
구름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길래 답글로 달음. 근데 쓰다보니 좀 길어졌네 ㅋㅋ
별조각(211.36)2023-10-16 01:52
간단한 줄거리라면 챈들러의 친구인 갤러허와 만나면서 말한 대화겠죠? A little cloud, 제목 자체가 저는 주인공인 챈들러를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제목이랑 갤러허와의 만남으로 구름이 챈들러라고 생각할수 있을거 같은게, 챈들러는 남성적인 면모보다는 여성적인 면모, 모험가 보다는 예술가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요. 이에 반해 그의 친구인 갤러허는 그와는 정반대인 인물로써 나타나고요. 챈들러는 갤러허를 의식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써, 또는 표현이 그렇지만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게 후반 대화 중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왔어요. 최소한 난 결혼은 했다. 라는 말을 했지만 갤러허는 돈이랑 결혼한다 라고 되받아치는데, 그가 구름 한 조각 일 수 밖에 - dc App
이런거못함(gtxxglm7gejx)2023-10-15 22:09
없는 것도 여기서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우는 아이에게 화를 내며 아내가 오자 눈물을 터뜨려버리는 모습을 보자니 못난 사람처럼 보이네요. 친구와 비교하면 열등감이 느껴지고 아내가 시킨 심부름도 까먹고 아이한테 화를 내버리니 말이에요.
그래서 그가 인간으로써 작은 것이고, 또 그렇지만 우리는 챈들러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욕할수도 없는 것이, 너무나도 현실에 있을법한 존재이고, 또 나도 언젠가 한번 그랬을 수도 있을 행동을 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과 밖의 경계가 흐릿한 구름, 물론 그것을 구별하기는 쉽지만 우리가 작은 구름이라고 했을때 그것의 경계를 어디서 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리 쉽지 않죠. 그 경계에 우리도 포함될 수도 있는 그런 현실적인 캐릭터가 챈 - dc App
이런거못함(gtxxglm7gejx)2023-10-15 22:14
답글
들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가로써 작가로써의 챈들러도 이런것에 영향을 주는것 같아요. 시도는 누구나 할수 있지만 그것으로 성공하는 것은, 평단에 좋은 평가는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또 제임스 조이스 자신이 하는 일이기도 한 책을 쓰는 사람을 챈들러로 설정함으로써 삶 (물질적인 것)과 예술 (정신 또는 감성적인 것)의 직접적인 대비로 비참함을 느끼는 챈들러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처럼 흐린 미래를 보여주는 것을.
책을 읽다보면서 melancholy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왔었는데 이걸 위주로 책을 읽어볼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dc App
수록된 단편들의 딱 가운데에 위치한 단편이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의 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듦. 제목부터 살펴보면 <구름 한 점>, 혹은 <작은 구름>이라는 점에서 구름에 대한 두 가지 레퍼런스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작중에서 딱히 구름에 대한 묘사는 없었던 거 같은데 있었다면 누가 얘기 좀), 하나는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에서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구름의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는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경구인 “인생이란 잠시 모였다 흩어질 뿐인 한 점 구름과 같다.” 아닐까, 싶음.
전자라면 프랑스의 환락과 지저분한 삶들을 예술로 그려낸 현대시의 대표자인 보들레르가 추구하는 구름 같은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우리의 주인공 리틀 챈들러라는 이유로 제목에 구름이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후자라면 한낱 흘러갈 삶에 불과한 주인공의 처지를 부각하는 개념이 아닐까, 싶지만 뭐 그냥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셈 ㅋㅋ
이 단편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이유는 조이스가 중요하게 다루는 “에피파니”가 단편집 중 처음으로 등장하기 때문임(어찌보면 예술에 관련된 인물이 처음 등장하기도 해서 그런가 싶고?). 갤러허를 만나러 가며 더블린 시내의 어떤 따분한 광경, 그리고 자신의 기분과 이 풍경이 합치되며 부여되는 시적 순간이 일상에서의 깨닳음이라는 에피파니를 잘 보여줌. 이 에피파니는 결말에서까지 주인공을 붙들며 놓치기 싫은 삶의 번뜩이는 한 순간이라는 점을 나타내지.
또한, 이 에피파니를 겪는 인물이 삶의 다른 사건들과 만나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를 나름의 “객관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임. 이후 읽을 <젊예초>나 <율리시스>의 경우 삶의 모든 순간들이 인물의 의식에 덧씌워진 채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나름 외부의 서술자가 존재하는 <더블린 사람들>의 시각을 독특하다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처럼 예술인이 일반적인 소시민들을 보고 겪는 질시와 그 속의 동경이라는 키워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거 같지만….(이런 점에서 <더블린 사람들>은 언제나 습작이라는 오명에서 못 벗어나는게 아닌가 싶음. 조이스는 의식에 대한 탐구 수준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그 바깥의 세계 그 자체에 대해선 다른 대문호들에 비해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듦 예를 들면 톨스토이라던가 ㅎ).
다만 한 가지 정말 감명 깊었던 건 결말부의 아기를 달래주는 장면임. 삶과 예술 간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에피파니가 붕괴하는 순간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그 촉발이 아기의 울음이라는게 정말 감명깊음. 왜냐면 이랑 비슷한 장면을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본 적이 있거든. 곽오주라는 임꺽정 패거리의 속한 한 인물을 다루는 장면이었는데, 도적질만 하던 사람이 어쩌다 맘에 드는 처자랑 결혼까지 하고 아이까지 생겼지만 출산 도중 아내가 죽어버렸음. 인생 내내 깡패 짓만 일삼던 사람이 잘 살아보려고 결혼까지 했는데 남은 건 당장 젖부터 먹여야 하는 핏덩이임. 이런 사람이 젖동냥은 물론이고 아이 달래는 것까지 견디겠음?
아등바등 업어 키우다 어느 날은 거의 열흘 가까이 밤새 우는 아이 달래고 정신까지 피폐해진 상태에서 (우리의 리틀 챈들러처럼) 아이에게 소리를 꽥 지르다 (우리의 리틀 챈들러는 차마 넘지 못한 선인) 아이를 내팽겨쳐버림. 아이는 죽어버리지. 그러고 곽오주는 또 몇날몇일을 잠도 안자고 실성한 채 짐슴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아이의 시체를 붙들고 지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그 사건이 너무 큰 트라우마가 되어서인지 이후 어린아이의 목소리나 울음소리가 들리면 경기를 일으키며 주변을 닥치는대로 부수고 잘못하면 아이까지 죽이려드는 발작을 가지게 됨.
시대 상 홍명희가 <더블린 사람들>을 읽었을리는 없다 생각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이의 울음이라는 장치가 가지는 위력이랄까, 공통적인 생각이랄까가 참 신기했던 거 같음. 의식 속의 삶이 깨어지는 문명인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는 트라우마를 안고 평생을 살게 되는 야만과도 가까운 삶의 대조도 생각나고 하여튼 그렇다.
원서 펭귄판에선 열왕기상 18:44을 레퍼런스로 제시했던걸로 기억함
젠장 또 성경이야
문예출판사 역본에서는, 작중에서 갤러허와 챈들로가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초반부에 "갤러허는 숨어있던 연기의 구름 뒤에서 얼마 후에 다시 나타나면서..." 라는 구절이 있음. 제목의 구름 하나가 이 구름을 의미하는 거였다면, 그 구름은 첸들러와 갤러허 사이의 존재하는 구름이겠지. 그 사이에서 갤러허를 가리기도 하고, 다시 보여주기도 하는..
챈들러가 갤러허를 만나러 가기 전에는, 런던에서 노는 친구 한 명을 둔 것이 자랑스러웠는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여줌. 하지만 막상 갤러허의 앞에서는 그들과 똑같은 그저 그런 아일랜드 사람으로 전락해버렸지. 결국 열등감에 빠져 주눅들어버리고 맒
과대한 해석일수도 있지만, 구름 하나는 챈들러에게 갤러허를,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는 눈을 가려준, 그리고 마침내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존재가 아니었을까.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면서 조이스가 그려낸게 단순히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나 보편적인 인간군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음. 어쩌면 그런 '구름 하나', 우리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게 아
닐까. 구름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길래 답글로 달음. 근데 쓰다보니 좀 길어졌네 ㅋㅋ
간단한 줄거리라면 챈들러의 친구인 갤러허와 만나면서 말한 대화겠죠? A little cloud, 제목 자체가 저는 주인공인 챈들러를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제목이랑 갤러허와의 만남으로 구름이 챈들러라고 생각할수 있을거 같은게, 챈들러는 남성적인 면모보다는 여성적인 면모, 모험가 보다는 예술가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요. 이에 반해 그의 친구인 갤러허는 그와는 정반대인 인물로써 나타나고요. 챈들러는 갤러허를 의식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써, 또는 표현이 그렇지만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게 후반 대화 중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왔어요. 최소한 난 결혼은 했다. 라는 말을 했지만 갤러허는 돈이랑 결혼한다 라고 되받아치는데, 그가 구름 한 조각 일 수 밖에 - dc App
없는 것도 여기서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우는 아이에게 화를 내며 아내가 오자 눈물을 터뜨려버리는 모습을 보자니 못난 사람처럼 보이네요. 친구와 비교하면 열등감이 느껴지고 아내가 시킨 심부름도 까먹고 아이한테 화를 내버리니 말이에요. 그래서 그가 인간으로써 작은 것이고, 또 그렇지만 우리는 챈들러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욕할수도 없는 것이, 너무나도 현실에 있을법한 존재이고, 또 나도 언젠가 한번 그랬을 수도 있을 행동을 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과 밖의 경계가 흐릿한 구름, 물론 그것을 구별하기는 쉽지만 우리가 작은 구름이라고 했을때 그것의 경계를 어디서 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리 쉽지 않죠. 그 경계에 우리도 포함될 수도 있는 그런 현실적인 캐릭터가 챈 - dc App
들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가로써 작가로써의 챈들러도 이런것에 영향을 주는것 같아요. 시도는 누구나 할수 있지만 그것으로 성공하는 것은, 평단에 좋은 평가는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또 제임스 조이스 자신이 하는 일이기도 한 책을 쓰는 사람을 챈들러로 설정함으로써 삶 (물질적인 것)과 예술 (정신 또는 감성적인 것)의 직접적인 대비로 비참함을 느끼는 챈들러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처럼 흐린 미래를 보여주는 것을. 책을 읽다보면서 melancholy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왔었는데 이걸 위주로 책을 읽어볼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