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실재 속에 자신의 독자를 잡아두는 데 능했던 흄은 자신의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이렇게 썼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한 노예일 뿐이어야 한다." 이성을 이런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은 우리가 대의 없는 합리주의자, 정신 작용으로 인해 마비된 뇌졸중 환자가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우울증과 그것이 그 희생자를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지점까지 몰아붙이는 결정적인 영향에 관해, 미국 토크쇼 진행자 딕 캐빗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이 고통스런 병에 시달리고 있을 때면, 2.5미터 떨어진 테이블 위에 치유력이 깃든 마법 지팡이가 놓여 있어도, 가서 지팡이를 집어 드는 일조차 너무도 힘듭니다." 감정이 없으면 이성도 쓸모없다는 것에 대해 이보다 더 나은 설명은 아직 제시된 적이 없다. 우울증으로 무기력해지면, 당신의 정보 수집 체계는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이런 사실들을 당신에게 보고한다. (1) 해야 할 일이 없다. (2) 가야 할 곳이 없다. (3) 되어야 할 것이 없다. (4) 알아야 할 사람이 없다. 의미로 충만한 감정이 당신의 뇌가 곧고 좁은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지 않으면, 당신은 균형을 잃고 명료함이라는 심연 속으로 추락할 것이다. 의식 있는 존재에게 명료함이란 재료 없는 칵테일, 수정처럼 맑은 혼합주로서, 당신을 현실로 인한 숙취에 시달리게 놔둘 것이다. 완벽한 지식에는 오직 완벽한 무無만이 있을 뿐이며, 당신이 삶의 의미를 원한다면 이 사실은 지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간종에 대한 음모, 토마스 리고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