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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c69f9204d9c합스부르크 제국, 혹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없어져야 하는 국가로 취급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인식되곤 한다. 이후 이 지역들에서 발생한 수많은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과 현재의 상황을 볼 때 과연 정말 그래야 했을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최소한 합스부르크 왕가라는 것을 쫓아내야만 한다는 데에는 일반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본다. (당연하게도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왕가 역시 쫓겨나며, 일찍이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축출된 로마노프 왕조와 마찬가지로 현대 국가에서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무의미한 관료제와 허례허식, 부동의 신분제와 함께 무능하며 무기력한 산 송장 같은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그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보다 더 온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며 남기는 일종의 추모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 <라데츠키 행진곡>은 제국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곡으로, 이 곡은 소설의 중심에 있는 3대에 걸친 트로타 가문의 가계에서 몇 번이고 등장하며 제국의 위대함을 상기시키거나, 허망하게 희미해져가는 옛 영광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제국은 결코 위대한 모양새로 나오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는 요제프 로트 역시 딱히 제국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라데츠키 행진곡>에서는 이 거대한 제국의 죽음을 예정 사실로 둔 채, 그 붕괴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일종의 숙명적인 결말을 세 트로타의 쇠락을 통해 보여준다. 황제를 구해 귀족이 된 1대 트로타는 개중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이로, 제국의 귀족 문화와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2대 트로타는 귀족 그 자체로, 자신의 자식이 군인이 되는 것을 기쁘게 보기는 하지만 그가 보는 군인은 제국의 군인이지, 1대 트로타가 본 실질적인 군인은 아니다. 그의 군인은 제국의 두 기둥, 관료와 군인 중 하나로 제국의 명예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3대 트로타의 실패는 2대 트로타의 실패와 함께 제국의 두 기둥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상징하는 셈이다.



3대 트로타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종말과 맞닿아 있는데, 그의 잠정적 자식이라고 할 만한 불륜 상대의 태아는 태어나는 도중 산모와 함께 죽었다. 3대 트로타는 늘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기만 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피를 보게 되는데, <라데츠키>의 전반적인 제국-트로타 동일시를 생각하면 이 여성들은 제국의 수많은 "민족"들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헝가리 마가르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대타협은 오스트리아 제국이 새롭게 거듭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을 만들었지만 이는 다른 민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에는 역부족인데다 외려 그들을 자극하기까지 하였고, 다른 민족들을 포용하려는 시도는 대체로 전부 실패했다. 3대 트로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사와 그의 부인은 그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며, 트로타는 그저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는 민족과의 불륜을 제안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 상징과는 별개로 <라데츠키>는 제목의 곡처럼 웅장하고 멋들어진 배경 속에서 흘러가는 소설이다. 많은 것들이 천천히, 명예와 의문 속에서 흘러가며, 제국의 황제가 죽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과 함께 제국의 황혼을 함께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라데츠키 행진곡 자체보다도 케어테이커의 <An Empty Bliss Beyond This World> 앨범을 함께 들으며 읽었는데, 소설 <라데츠키>와 이 앨범이 시사하는 향수가 서로 유사한 탓이다. 이 앨범은 1920, 30년대의 볼룸 음악들을 샘플로 삼아 부식시키고 세월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내며 치매에 걸린 노인이 현실을 지금 현재와 과거의 기억 사이의 연관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강조하는 앨범인데, 이 아이디어를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Stage 1~6> 연작에서는 그 정신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는 것까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앨범이 영화 <샤이닝>에서 볼룸 음악과 유령이 사용되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걸 감안하면 <라데츠키>와 앨범 사이의 연관성은 더욱 짙어진다. <샤이닝>은 인디언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호텔이 자신을 인디언으로 표현하지도 않지만 악의만이 오롯이 남은 유령들을 가득 품은 채 서서히 그 안의 사람을 죽이고 인디언들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과 시공간적 감각을 잃은 채 볼룸 음악 속에서 부유하기만 하는, 무정형의 유령이 장악한 영화다. 3대 트로타는 제국의 위엄 가득한 환상을 암시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속에서 자신을 1대 트로타와 동일시하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1대 트로타가 암시하는 당시의 비-제국적인 신민들의 삶, 그의 의사 친구의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리곤 한다. 그 삶은 제국적인 삶 아래에 완전히 매몰되어 다른 역사로 기술되거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아 트로타에게 인지될 수 없지만, 화주로 취한 트로타의 의식이 이 현실에 대한 인식의 고삐를 늦출 때면 유령처럼 되살아나곤 한다. 황제의 위엄 있는 모습은 그런 방식으로는 한 번도 존재한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형태를 갖추고 있는 유령에 가려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라데츠키>는 글로 쓰인 케어테이커의 앨범과도 같다.



이 둘이 겨냥하는 향수의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더 흥미로운 점이 엿보인다. 베이퍼웨어나 위어드코어weirdcore, 백룸Backroom 유행들이 암시하듯 일전 사이먼 레이놀즈가 <레트로마니아>에서 지적한 과거의 되새김질은 결코 멈추지 않은 채 오히려 그 되새김질 자체를 되새김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향수는 <라데츠키>가 과거를 그리는 방식과 유사하게도, 아련하지만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은 약간 괴리감이 느껴지는 과거를 상정한다. 어떤 의미에서 <라데츠키>가 제국을 그려내는 방식은 제국을 모르는 이들의 악의적인 묘사보다도 더 지독한 점이 있는데, 그 제국의 영화와 명예,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생활상들을 아우르면서도, 당시에는 없었을 어떤 분명한 목적론적 종말-제국은 무너져야 한다-을 소설의 한가운데에 상당한 질량과 함께 배치해놓은 탓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제국을 모델로 삼는 불교식 구상도九相圖이기도 하다.



최근의 향수 문화가 현재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과거 역시 공격적으로 낯설다는 것을 발견하는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라데츠키>는 20세기 초반에 동일한 정서로 쓰인 글인 것만 같다. 이 제국의 예정된 죽음에 가득한 애상은 그렇다고 무기력한 과거로도, 허무한 죽음이 가득한 현재로도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