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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자주 읽었으며
어느정도로 중요하다고 봤을까



지금 나오는 부분은 성의 역사 23의 서론.
푸코의 가장 마지막 말 중 하나이자, 푸코의 목표 설정을 아주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푸코의 명언이라고 하면서 인용에 굉장히 많이 쓰이는 부분.







문제는 이거임.
여기에 저 Benjamin이 있는 것은 맞음.
그런데, 푸코의 벤야민 언급이, 딱 저거 하나가 전부임.
저거 딱 하나임.


내가 아직 푸코에 대해서 참 따분하고 얕은 지식만 가지고 있어 정확성을 따지기는 곤란하지만
일단 출판 저작 중에서는 이것 제외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음.
콜레주드프랑스 저작 중에서도 벤야민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음.
말과 글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읽은 인터뷰엔 한번도 나오지 않았음.






이 인용된 서론의 내용 또한 중요성에 대해 복잡하게 함.
흔히 푸코의 후기 철학을 "실존의 미학"이라고 라벨링을 하는 편이 많음.
사실은 이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편임.



"성의 역사"를 4편까지 지으면서 하려고 했던 말이 이것임.
고대 그리스 시대, 그리고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아주 달랐다는 것임.

고대시대 사람에 있어 "주체성"은 현재의 주체성과 달랐는데,
현재의 주체성은 고정되었음에 비해, 그들의 "주체성"은 그 어원에서부터 수정과 변경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현재의 주체성이 오직 대상과의 연관으로서 이어지는 것에 반해, 그들의 "주체성"은 외부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란 내부와의 관계 또한 주목했고,
현재의 주체성으로는 비판과 해방의 의미가 평면적일지도 모른다는 문제점을 가진 데 반해, 그들의 "주체성"은 자기 수양이란 개념 하에 있기 때문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원래 제목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라는 말처럼 자기 자신과 "목표로 둔 '자기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임.

그런데 이런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로마에 있던 개념들이, 그리스도교 시대에서 사목권력과 고백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단절이 되었고, 결국 이 그리스도교가 기존의 한정된 주체성을 만들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임.



이렇게 보면 벤야민의 언급이 정말로 중요하긴 한 거임.
"이렇게 신플라톤주의적으로 쓰면 교수자격은 못 줍니다^^"라고 거절당한 그의 에피소드와, 그리스도교 전의 카발라적인 철학, 타우베스가 말하듯 벤야민에겐 (3-4세기 사목권력 전인) 바울 종말론적인 측면이 있다는 말 같은 것들...
벤야민은 진짜로 바로 그 예전 시대의 "주체성"이 피에 내재되어 있는 철학자처럼 보이거든.







그래서, 참 애매한 느낌을 줌.
어느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좀 더 살아있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