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마저 씀. 그니까 미연시 주인공들은 대충 저런 좆병신 같은 머리모양을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함.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곧 주인공이 되도록, 그러기 위해 몰입(동일시)하는데 방해가 될 주인공의 얼굴을 일부러 없애 놓은 거다.
그리고 이만화에서는 그러한 동일시를 위해 그 최소한의 판뗴기조차 없애놓은 거고.
그게 바로 이 만화의 인기 비결이다.
독자가 곧 이 만화의 주인공이라는 것.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살아 숨쉬고 있을 뿐인데도 미소녀들이(닭장도 있음. 주인공 에미. 근데 처녀임 에미 씨발 설정 에미가 ㅇ벗노 ㅋㅋㅋㅋㅋ)
나를 마구마구 좋아해준다?
기모찌가 기모찌하다?
예아 딱 좋노!
예아 킁킁딱 좋노!
위에서 설명한 교묘한 연출로 (?)이 만화를 보는 주인공이 곧 독자임을 숨겨 놓았을 뿐 실체를 까버리니 이토록 간단해지는 고야요.
한 마디로 이 만화에는 타자 따윈 없으니 타자 지향도 마찬가지로 없다.
물론 이 망가에는 수많은 여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츤데레, 쿨데레, 얀데레, 마앙, 여동생캐, 누님캐, 젖탱이가 큰년, 작은 년 등등으로 나눠져 있는
기호에 불과하지 그 본질적으로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인 타자는 절대 못 된다.
그러니 샛별이는 이 만화를 보는 걸 일종의 정신적 자위 행위라 말하겠다. 그래서 샛별이도 끝까지 봤음. 꽤 재밌더라 우흥~
아무튼 그렇게 자위 행위에 열중하는 독자가 보는 것은 결코 타자가 아니다.
그가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무한정으로 사랑받는 자기 자신!
일종의 거울 보고 셀프 딸딸이랄까 뭐 그런 거다. 근데 그 거울에 거울이 하나 더 끼어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거울이 내 얼굴을 비추는 거울인지 모르게 헷갈리게 만드는 예 뭐 그런 거울이요.
이와 같이 타자를 보는 척하면서 결국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만 보는 것. 샛별이는 이런 태도야말로 씹덕스럽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이제 씨발씹덕 새끼들은 씹덕 울타리를 넘어 대중 문화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 마디로 씹덕이랑 타자 지향 같은 건 좆도 관련이 없다는 거시야요 그리고 샛별이는 씹덕 놈들이 미워!
아 씨발 삼십분 남았노 씨발 씨발 씨발
다시 한 마디로 씹덕은 타자 지향이 아니라 자아 지향이다. 왠 씨발 논리적 비약이냐고? 닥쳐! 짜잘한 건 넘어가라
봇치도 위의 경우와 비슷하다.
봇치는 타인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왜?
남들의 짖정으로 신경 쓰기 때문에?
아니! 봇치와 그 봇치에 열광하는 씹덕놈들이 진정으로 신경 쓰는 건 타자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건 타자의 눈에 비치는 자기 자신이다.
자고로 부끄러움이란 자존심 강한 인간이나 겪는 감정인 거시다....
봇치 만화 리뷰한 독붕이는 봇치가 인기 많은 이유를 두고 그녀가 자신들의 감정 대리인 역할을 해줘서 그렇다고 말했는데 그게 바로 씨발 씹덕스러운 태도라고!
아 씨발 시간이 없으니 이 연결 고리는 스킵한다
남녀비 어쩌고 하는 만화 리뷰는 했으나 오빠는 끝 리뷰함.
여기서 잠깐.
오니짱들은 ts물에 대해 알고 있나? 모르겠다면 샛별이가 알려주겠다. 나무위키에 써져 있는 그딴 거 읽을 필요 없고 그냥 외워라.
ts물은 성정체성 혼란 뭐 그딴 게 아니다. ts물 보는 놈 중에서 진심으로 성정체성 혼란같은 걸 느끼는 사람은 극극극소수다.
그럼 이 씹덕 병신들은 한1남이 갑자기 좆 떼지고 농농 여캐가 됐다는 이런 병신 같은 이야기에 왜 이리 발기를 해대는 거냐?
시간 없으니 결론부터 말한다. TS 된다는 건 새끼 고양이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거다.
이게 뭔 소리일까? 한 마디로 인생을 씨발 날로 먹고 싶다는 소리다.
소설가 권여선은 '귀여운'이라는 말에 담긴 수동성을 문제 삼으면서 " 귀여운 자는 자기를 귀여워하는 자의 욕망을 흉내냄으로써 자기 욕망의 미숙함과 공어함을 감춘다" 라고 비판하면서 올렌카의 이야기를 귀여워 하는 시선에 갇힌 한 여성의 비극으로 단정했고, 시인 김소연은 한발더 나아가 "귀여운 모습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아직 무능한 존재들이 누군가의 사랑을 얻어 보호 받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말하며 올렌카를 펫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됐제? 이해했제?
씹덕들이 TS에 발광하는 이유를. 그니까 걍 인간 존재의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다 (자세한 내용은 우웰벡의 소립자를 참고하세요)
팩트니까 씹덕들은 부들대지마라 샛별이도 오랜 시간 TS물 봐와서, 그 결과로써 여중생이 되어버려 다 안다.
그니까 봇치가 인기 많은 이유에는, 그녀를 자신의 감정 대리인으로 삼으려는 씹덕들의 마음 속에는 TS 되기를 바라는,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무한 나데나데 받고 싶어 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한 인간으로서 사랑 받고 싶어하는(이건 좀 이해가 가고 불쌍하기도 함) 뭐 그런 마음도 섞여 있는 건데 자세한 이야기는 길어져서 못하고.
그니까 다시 그니까 자아 지향이라고 씹덕들의 자아 지향은 자계서충들의 자아 지향 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다. 그 이야기도 길어지니 스킵함.
아 씨발 뇌가 안 돌아가노
잠깐
잠깐 쉬었다 ㅇ몽
잠까 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샛별이가 쓴 모든 글을 부정한다.
그거나 이거나 거기서 거기인 씹덕 작품분석이나 해봐야 의미 없다.
핵심을 쳐야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한 건 과연 씹덕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일 거다. 그러니 여기서 샛별이는 독갤 독자 제형들에게 묻는다.
만화가 씹덕인가.
피규어가 씹덕인가. 그 외에 아 이건, 좀 씹스럽다 싶은 것들은 씹덕인가?
아니. 그것들의 소재 자체만으론 무엇 하나 씹덕 같다 말할 수 없다.
씹덕 그ㅈ체의 본질적인 것을 파악! 때리 멕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 글은더는 씹덕 만화 리뷰 글이라 할 수 없겠지만 그딴 거 알빠노?
그렇다! 알!빠노! 이것이야말로 씹덕스러운 것이다...
아무튼 이쯤하고 나와라, 무라카키 하루키!
씹덕계의 수장! 씹덕의 책임 안 지는, 무책임의 아버지!
물론 그는 이렇게 말하겠지. 엤? 혼도니? 와타시는만화는전혀 안일는 데스...
아가리 다물어라 하루키! 네 죄는 크다. 네 놈은 씹덕들의 화수분이 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탄생시켰다.
사실상 거의 모든, 아니 모든! (왬냐면 저 무라카미 월드에서 벗어난 작품은 온갖 씹덕 소재를 남발해도 씹덕이라 볼 수없 으니까)_ 작품은 저 섬에서 태어난 것이다.
)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너으 ㅣ이름으로 라는 영화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라는 영화 감독 씹덕인임)
현실의 복작
현실의 복잡함을 거부하고 자폐적인 세계에 홀로 남겠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고, 이후 생겨날 수많은 씹덕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어지럽노
샛ㅂ별이는 텅빈 것 같아요. 나는 이글을 완성을 핫 ㅜ있을까요?>
예아 안 될 거 뭐 잇노를 외쳐봐도 힘이 나지 않아요.
이게 오에 영감이 느낀 기분일까 감히 하루키에게 맞서려한 자는 이리 되는 걸까.
그래도 좀 더 말해본다.
하루키 작품 속 존재하는 분명한 위선과 기만 .
그가 쓴 책들 중 가장 평가가 좋은 두 작품 모두 타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한다는 것.
(태감새/ 카프카 )
그리고 주인공인 나는 그에 대해 철저히 무지 ( 카프카) ㅎ거나 적어도 무관심 (태감새) 하다는 것.
샛별ㅇ리는 바로 그것이 씹덕- 이제는 방구석 찐따들만 향유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대중 문화 전반에 퍼진 것- 이라 본다.
직업으로서의 소설아게서 하루키가 직접 언급한 그의 집필 방식.
자료 조사나 플롯을 세우는 대신 철저히 무의식 상태에서 초고 완성 후 그것을 고쳐나감.
을 보아 아마 하루키는 적어도 저 두 글소설을 쓸 때의 하루크는 그가 쓸 소설의 주인공듳ㅊ럼 타자에게 무지하고 무관심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깊ㅇㄴ 차원에서 그랬겠지.
그리고 그게 바로 그의 성공 원인이자 씹덕 문화가 이리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원인이겠지.
국내에서도 그에게 강한 지지를 보낸 사람들 보면 이념의 시대를 거쳐왔고, 그에 매우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 주로 보이니까.
하루키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이 취향 존중의 자세는 언뜻 보면 타자 지향인 듯 보이나, 사실 그처럼 타자 거부적인 태도가 또 다로 없다. 타인이 내게 영향 미치는 걸 철저히 거부하겠단 뜻이니.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자주 그러듯 우물로- 깊고 좁고 어둡고 축축한 곳으로 들어가면
이 타자 거부의 태도가 곧바로 씹덕적인 것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샛별이는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쓴 우노 와 달리 오타가적인 것에 아무런 희망도 안 가지고 있다.
왜냐면 위의 남녀역전이나 오빠는 끝 등의 만화에서 드러났듯이 그러한 씹덕스러운 태도는 전공투들과 마찬가지로 타자-이해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부정하고 우리는 하나임을 강조하는 전공투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내가 아니게 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너와 접촉하길 끝까지 거부하고,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려 든다면, 결국 나는 나밖에 보지 못하게 될 거고, 진정한 존재로써의 너 대신 상품 기호로써의 너만 보게 될 테니까.
최근 하나하다 갤럭시니 아이폰 이니 하는 걸가지고 좆간을 평가하는 '씹덕'들이 그러하듯.
무엇을 소비하느냐로 개성을 가지는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하루키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맛있게 만드려면 유화 과정- 이리저리 팬을 뒤섞어서 오일과 전분을 하나로 합치는 거- 이 필수로 필요한데, 샛별이는 이런 유화 과정을 결단코 거부하는 태도야말로 씹덕스러운 것의 본질이라 본다...
조센은 좆봊을 따라 가는가,....
이새끼 글은 안 읽혀야 되는데 읽히는 게 늘 신기하다 진짜
노짱 연설 맨날 들으며 몸에 배긴 리듬감 덕분이야요
정말 공감함 컨셉으로 이렇게 가독성 좋게 하기 쉽지 않은데. 이것도 능력이야. 컨셉 버리면 더 잘 쓸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글을 읽히게 쓰는 것도 재주야 진짜
요즘은 세줄컷인데 장문이 읽히게 쓰는 재주는 버리기 아까움 ㄹㅇㅋㅋㅋㅋ
글이 뭔 롤러코스터같네
걍 어이가 없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부정하고 우리는 하나임을 강조하는 전공투들과 마찬가지로" < ???: "힘 미치지 못해 꺽임은 개의치 않으나"
전공투는 슈티르너적 개인의 주체성도 강조한데스
이건 오타가 없는데 뭐가 이해 안 된다는 거노
근데 알?빠노
그냥 이데올로기 어쩌고 하는 시대 분위기에 강한 회의감을 느끼고 개인의 소소한 것에 집중하는, 전공쿠에서 오타쿠로의 시대 변화 뭐 이런 말 하려던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와요. 샛별이가 쓴 글에 단어 하나 하나 생각하면
퇴고없이쓴글이 이정도노..? ㄷㄷ
너무 좋은 글이라 생각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초기에는 자폐적 측면이 있었지만 후기에서는 타자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보이는 지점이 있다 생각하는데 이를 성장이라 볼 수 있을까요? (Eg. 기사단장 죽이기)
예아 대답 못 할 거 뭐 있노!
샛별이도 성장이라 보고 있기에 보통 다른 사람들은 저평가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태감새 / 카프카보다 좋아하는 고야요. 근데 너무 늦은 성장 같고, 성장 하긴 했어도 근본적인 부분-
타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성장이란 테마에선 못 벗어난 거 같음. 그래도 언더그라운드 예전에는 의식도 안 하던 보통 사람의 존재를 이해하고 있기는 한데, 까놓고 말해 그건 다른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다 하는 거라
음음 적극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성장이고 또 저처럼 빈곤한 정신을 가진 현대인이 그나마 이입할 수 있는 성장 서사 아닌가 싶네요.
내가 성장 했다는 것 아래 희생된 존재들이 묻히는 게 문제라는 거임. 하루키 소설을 결혼 사기라거나 일제 침략 은폐 옹호로 보는 평론가도 있는데 그런 맥락일 거임. 그리고 샛별이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비판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것 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희생
기반 삼은 성장은 허위고, 성장한 기분만 들게 해주는 가짜 성장이라 생각해서. 인간이 성장하기가 그리 쉽나? 적어도 남의 손 안 빌리고 제 손으로 뭘 해야 성장이라도 하겠지...
이제 좀 가물가물하긴 한데,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주인공이 자기를 희생해(정확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녀를 구하지 않았나요? 말씀을 들어보니 하루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히려 하루키 본인은 좀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릴 적 죽은 여동생이었던 걸로 기억함. 아마 언더그라운드에서 사린 가스에 당해 장애인 된 여성이 모티브일 거 같음. 그런 면모 때문에 보통 저평가 받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좋아하는 건데, 최근 장편 평가 안 좋은 거 보면 너무 늦은 성장이 아니었나 싶은 고야
맞습니다 ㅠㅠ 이제 틀딱퇴물 ㅜㅜㅜㅜ
하루키 막 까진 했지만 뭐 그리 싫어하는 작가는 또 아님. 하루키적인 것만 수십 년 동안 아주 크게 유행하고 그에 반대되는 건 팍 죽은 시대 분위기가 싫은 거지.
2. 애니메이션 캐릭터, 세카이계(?) 등등에 과몰입하고 또 그럼으로써 현실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게 씹덕스러움이라면 고전적 순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씹덕스러움과 차별화되나요? 많은 이들이 라스콜리니코프에 공감하며 그의 변화를 하나의 이정표로 삼았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보통 명작으로 손꼽히는 걸로 현실을 살아갈 용기를 얻든 그닥 높은 평가를 못 받는 작품으로 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것으로 봄. 샛별이가 씹덕 같다고 지적한 건 위에 짧게 언급한 세계의 끝처럼
세카이계의 시초가 된 그 작품처럼 현실을 왜곡시키는데서 문제가 발생함. 세카이계 작품들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거의 세계의 위기 급으로 확대 해석해버리잖음. 그런 왜곡과 그런 왜곡을 그냥 믿어버리는 게 씹덕 같다는 것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폐적이고 유아론적 세계관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 제가 세카이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읽어보셈. 에바 이야기가 7할 이고, 오타쿠 문화가 갖고 있는 자기반성적(달리 말하면 오타쿠 비판적) 메시지를 설명함.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오타쿠 문화로 이어졌다는 모순성을 지적, 이라네
3. 씹덕 문화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는 에반게리온 자체는 오히려 타자와의 충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요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답변 미리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에바도 세카이계 아닌가? 그러니 하루키 소설하고 비슷하게 그러는 척만 하는 거지 정말로 타자와의 충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요구한 건지는 잘 모르겠음. 일단 감독인 안노부터가 대표적인 오타쿠 아닌가. 오타쿠라고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고 그런 건 아닌데, 일단 오타쿠라는 것 자체가 타자와의 충돌에 적극적인 인간상이라곤 생각 안 해서.
오타쿠가 오타쿠들에게 오타쿠 짓 좀 그만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결론적으론 오타쿠들만 더욱 만들어내지 않았나? 진짜 의도는 모르겠는데 그 방법론은 완전 실패했잖아요. 그러니 에바는 노래 말고는 그렇게 좋게 안 봄.
부끄럽지만 저는 에반게리온으로 타인에게 다가갈 용기를 많이 얻은 편이거든요. 비판의 요지는 이해가 되지만, 오타쿠의 심리로부터 출발한 작품이기에 오히려 오타쿠를 설득하기 더 용이하다고 생각해요. 탓해야 할 건 안노가 아니라 생각보다 더 썩어빠진 오타쿠들의 정신상태라고 감히 주장해봅니다.
사실 뭐 시대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흘러갔는데 그걸 가지고 감독 한 명, 작품 하나를 가지고 탓 하는 것도 좀 과잉 해석이긴 하죠.
친절한 답변 감사드리고 다음에도 재미있는 글 많이 부탁드립니노!
솔직히 에바에 대해 잘 모르니까 샛별이 의견보다는 본인의 해석이 더 중요치 않나 생각함. 샛별이는 굳이 따지자면 토미노 요시유키처럼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에바 보고 용기 얻었다는 게 뭐 잘 못 된 건 없다고 봄.
굉장히 재미있는
글 개웃기네 ㅋㅋㅋㅋ 잘 읽었다
너무 잘 봤어 샛별짱! 혹시 소설가 권여선, 시인 김소연이 귀여움을 비판한 원전 알려줄 수 있을까? 궁금함.. 나는 나름대로 귀여움의 미학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반성하게 되네, 그러고 보니 고리키도 체홉의 '귀여운 여인' 보고 비슷한 비판을 했던 거 같아
체홉 단편 귀여운 여인
https://kyosu.n1et/news/articleView.html?idxno=43296
어 음 행쇼 /쓰담
기호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확 와달노
1:39? 이거랑 오빠 끝 봇치 세 개 가지고 이들은 모두 타인에게서 자기자신만을 바라보기에 타자지향이 아닌 자아지향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바로 씹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에서 바로 모든 씹덕 작품이 그렇다로 비약&확장하고 무라카미랑 접목 후 이런거에 우노랑은 달리 나는 타자이해를 기대할 수 없다! ...라고 읽히는데 내가 제대로 읽은거 맞나...? 어쨌거나 주최자 말대로 사유할 가치는 있는 것 같다만... 그말 그대로 사유할 가치만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