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희 번역과 비교하면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이준석 번역이 제일 문체가 좋은 부분은 기도문(& 신의 응답)이라 생각함.


예)


[1.35-42] : 아가멤논에게 딸을 약탈당한 사제 크뤼세스가 아폴론에게 바치는 기도


말없이 걸어가다가 거리가 멀어지자 머릿결 고운

레토가 낳은 아폴론 왕에게 기도했다.


"크뤼세와 신성한 킬라를 지켜주시고 테네도스를 강력히

다스리시는 은궁(銀弓)의 신이시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오오, 스민테우스여! 내 일찍이 그대를 위하여 마음에 드는

신전을 지어드렸거나 황소와 염소의 기름진 넓적다리뼈들을

태워드린 적이 있다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시어 그대의 화살로

다나오스 백성들이 내 눈물 값을 치르게 하소서."


//천병희




그렇게 멀리까지 걸어온 다음, 그제야 노인은

머릿결도 고운 레토가 낳은 아폴론 왕을 향해 많은 기도를 바쳤다.


"제 말씀 들어주소서, 은궁(銀弓)의 임이시여! 크뤼세와, 지극히 신성한

킬라를 두루 살펴 다니시고, 테네도스를 힘써 다스리는 임이시여,

스민테우스여! 예전에 제가 그 우아한 신전 위로 지붕을 덮어드렸거나,

황소며 염소의 살진 사태를 태워 바친 적이 있었다면,

저를 위해 부디 이 소원 하나 들어주소서,

다나오스인들이 임의 화살들로 제 눈물의 대가를 치르게 하소서!"


//이준석








[236-261] : 헥토르를 격려하는 아폴론, 헥토르의 응답


이렇게 말하자 아폴론이 아버지의 말을 못 들은 체하지 않고

이데 산에서 달려 내려가니, 그 모습은 비둘기 잡는 매,

날개 달린 것들 중 가장 빠른 매와도 같았다.

그는 현명한 프리아모스의 아들 고귀한 헥토르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헥토르는 더 이상 누워 있지 않고 정신이 다시 돌아와

주위의 전우들을 알아보았으며, 숨이 가쁜 것도 낫고 땀도 멎었다.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싀의 뜻이 벌써 그를 소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멀리 쏘는 아폴론이 그에게 말했다.


"프리아모스의 아들 헥토르여! 어찌하여 그대는 다른 자들과

떨어져 맥없이 앉아 있는가?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겼단 말이냐?"


그에게 투구를 번쩍이는 헥토르가 기진맥진하여 말했다.


"신들 중에 가장 선량한 분이여! 그대는 대체 뉘시기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물으십니까?" ...


그에게 멀리 쏘는 아폴론 왕이 대답했다.


"자, 이제 용기를 내도록 하라! 이토록 강력한 후원자를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 이데 산에서 내려 보내 그대를 돕고

지켜주게 하셨노라. 전부터 그대와 험준한 도시를

지켜주던 황금 칼의 이 포이보스 아폴론을 말이다.

자, 그대는 수많은 전차병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날센 말들을 속이 빈 함선들로 몰게 하라!

나는 앞장서서 계속 말들이 나아갈 길을 열며

아카이오이족의 영웅들을 돌아서서 달아나게 하리라."


//천병희






그가 이렇게 말하자, 아폴론도 아비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이다 산맥에서 내려오니, 그 모습이 마치 날개 돋은 것들중에서

가장 빠른, 비둘기 잡는 빠른 매와 같았다. 그러고는 프리아모스의 신과 같은

아들, 전투에 여념 없는 헥토르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는 더는

누워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원기를 가다듬어 주변의 동료들을

알아보았으며, 더는 가쁜 숨을 몰아쉬지도, 땀을 쏟아내지도 않았으니,

아이기스를 지닌 제우스가 그에게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쏘아 맞히는 아폴론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서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헥토르야, 프리아모스의 아들아. 너는 왜 이렇게 남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힘없이 주저앉아 있느냐? 혹시 네게 무슨 근심거리라도 닥쳤느냐?"


그에게, 채 한 줌 남지 않은 기력을 따내어 빛나는 투구의 헥토르가 말하였다.


"더없이 훌륭하신 분이여, 제게 얼굴을 맞대고 물으시다니, 당신은

신들 중에서 대체 뉘신지요?" ...


이번에는 멀리서 쏘아 맞히는 아폴론 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젠 용기를 내라. 크로노스의 아드님이 이다산에서부터

바로 이러한 원군을, 황금의 검을 쥔 포이보스 아폴론을

너를 위해 보내어 세우시고 지키게 하셨다. 물론 나는 예전에도

너를 구해내었단다. 너뿐만 아니라, 저 가파른 도시까지도 말이다.

자, 그러니 지금 당장 저 수많은 전차수들을 독려하여

속이 빈 배들을 향해 빠른 말들을 몰아가게끔 하여라!

내가 몸소 앞장서서 움직이며 말들이 나아갈 길을 모조리

반반하게 만들어놓고, 아카이아인들의 영웅들은 등을 돌려놓을 테니까."


//이준석








인간이 신에게 기도를 바치거나, 신이 인간에게 말하는 장면에선, 이준석 번역은 고전 서사시의 장엄함보다는 종교적인 문체에 더 방점을 찍고 있음.


그래서 천병희의 아폴론이


"프리아모스의 아들 헥토르여! 어찌하여 그대는 다른 자들과

떨어져 맥없이 앉아 있는가?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겼단 말이냐?"


라고 장엄하게 말할때, 이준석의 아폴론은


"헥토르야, 프리아모스의 아들아. 너는 왜 이렇게 남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힘없이 주저앉아 있느냐? 혹시 네게 무슨 근심거리라도 닥쳤느냐?"


라고 마치 아이를 다독이듯이 말함. 다른 곳에서도 말투가 이럼:


"자, 이제 용기를 내도록 하라! 이토록 강력한 후원자를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 이데 산에서 내려 보내 그대를 돕고

지켜주게 하셨노라. 전부터 그대와 험준한 도시를

지켜주던 황금 칼의 이 포이보스 아폴론을 말이다." (천)



"이젠 용기를 내라. 크로노스의 아드님이 이다산에서부터

바로 이러한 원군을, 황금의 검을 쥔 포이보스 아폴론을

너를 위해 보내어 세우시고 지키게 하셨다. 물론 나는 예전에도

너를 구해내었단다. 너뿐만 아니라, 저 가파른 도시까지도 말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