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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숲은 흔히들 아물지 않는 상실의 방증으로써 회자되는 책이다. 나오코는 남자친구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며, 와타나베 또한 작품의 초반부에서 나오코의 사망에 간헐적으로 발작을 하는 듯한 장면이 등장한다. 나 또한 이 해석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어느 정도 디테일을 더하고자 한다.
나오코는 작중에서 나를 기억해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작품이 아물지 않는 상실을 주제로 한다면 어딘가 어색하다. 상실은 아물수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럼 어째서 나오코는 이런 말을 한 걸까? 작품의 초반에서 와타나베는 “그래, 나는 지금 나오코의 얼굴조차 곧바로 떠올릴 수 없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뿐이다.”라고 언급한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실은 ‘변모’한다. 상실의 정확한 세부는 사라지고 그때의 감정, 분위기, 풍경만이 남으며 기억의 세부는 기억의 변경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쾌한 감정으로 대체된 상실을 그저 느낄뿐이다.
그렇다면 나오코는 어째서 자살을 한 것일까? 자살의 원인으론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본다. 첫 번째는 아물지 못하는 상실, 두 번째는 변모하는 상실에 대한 죄책감. 첫 번째는 앞서 상술했기에 생략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기억이란 양날의 검과 같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언젠가는 없어지지만, 우리가 사라지길 원치않는 고통마저 없애버린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지만, 잊는 것이 결코 무례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나오코는 변모하는 상실에 대한 죄악감으로 자살을 택한다.
또한 작중에서 나오코의 우물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 이것또한 상실과 연관지을 수 있다. 우리는 삶이라는 길을 나아간다. 그 길에서 누군가는 상실을 겪는다. 이 우물이란 일종의 기억의 변경과 같아서 상실의 대상은 그 우물이란 곳에 빠진다. 나오코는 자살 직전에 와타나베와 길을 걸으며 그 우물을 끔찍한 곳으로 묘사한다. 자신이 상실을 점점 잊어가는 것과 본인 또한 점점 잊힐 것이며 우물에 빠지게 될 것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오코는 작중에서 자신을 계속 기억해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감상문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