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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독갤에서 '글뤽의 시는 일상적인 것에서 시작하다가 끝부분에 가서는 인생의 본연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이런 느낌의 감상을 본 적이 있다. 이 감상문의 표현대로, 글뤽은 담화적인 목소리로부터 시작해서 시를 본연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시가 도달하는 곳은 다름 아닌 신성의 영역이다.

더 자세히 말해서, 이 시집에는 제목에서 식물들이 호명되는 시가 유난히 많다. 글뤽은 자신의 목소리로 식물들을 호명하여 자연이 가진 생의 본질을 이끌어낸다. 시에서 식물들은 구체적이고 파릇파릇한 생물학적 개체들이라기보단, 신의 목소리로 보살핌 받는, 신의 사랑에 의해 지상에 던져진 존재들이다.

야생 붓꽃은 신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이자 세상의 이야기이다. 화자가 신의 목소리를 빌려 세상의 의의에 대해 말하는 시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여기서 묘사되는 신은 전지전능하되 더는 인간을 종속하지 않는, 아니 차라리 더는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절대성을 지닌다.

글뤽의 신은 우리 귀에 들릴 듯한 구체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단순함을 논한다. 신은 단순한 빛의 형상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나, 창조는 인간이 신의 단순성을 벗어나게 만든다. 거기에서 세계는 시작된다. 인간이 지닌 시름 운명 고통 고뇌 삶 기쁨 기다림 소망도.

비약적인 해석일지 모르나 내게는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며 삶을 노래하는(글뤽에게는 노래한다는 말이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글뤽이 이렇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시 속의 창조와 창작의 삶, 기도와 기다림의 생애는 동일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창작을 통해 기도하고 창조를 통해 기다린다. 삶을 통해 창작을 하고 생을 관찰하며 삶을 부여하는 것이다.

글뤽에게는 그 모든 것이 목소리로 이루어지고 이어지게 된다. 바로 위에서 이미 소소하게 언급했지만, 글뤽은 참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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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힐링하는 기분으로 읽은 시집이었음

이제 매운 맛도 즐겨야겠지...?

응구기 vs 황석영 vs 포세

뭐 읽을지 고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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