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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중개자들>을 읽어보려다 먼저 생각나 다시 읽어봤다. (아마 내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는 날은 평생 없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를 예찬하는 이에게도, 비판하는 이에게도 그리 달갑지 않게 읽힐 책이기는 하지만, 사상사와는 별개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으로 참 흥미로운 내용이다. 특히 시장과 자본주의를 함께 보는 이들이 많은데, 물질문명 위에서 그 잉여분들이 거래되는 시장-경제생활이 성립하는 것처럼, 그 시장 위에서 시장의 규칙을 무시하며 오히려 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거대한 독점적 자본의 영역이 바로 자본주의이며 그렇기에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반시장적이라는 것이 그렇다.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니,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니,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떻게 근현대의 자본주의가 사상적으로 무르익을 수 있었는지, 또는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는 이들이 참 많다. 실제로 냉전 시기의 극단적인 경제 이데올로기 갈등은 바로 이런 사상의 계보 아래에서만 이런 일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배가시켜주는 듯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시작되는 미중 간의 신냉전이 그런 냉전보다는 그레이트 게임에 가까운 모습을 띠면서도, 결국 냉전과 유사한 수단으로 영향력 싸움을 하며 애초에 그런 사상적인 문제는 사실 부수적인 문제에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문화에서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미국이나 중국이나 그리 새로운 문화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다.)
브로델은 그런 종류의 해석에 상당히 냉담하며, 근세 시절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세 단계의 층위를 볼 수 있음을 지적하고 그 흐름 속에서 자본주의의 역할 및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만이 유의미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특히, 무엇이나 무엇 때문에 이런 승리가 가능했다, 라는 것에 대한 영광스러운 이유를 붙이는 것에 대해 특히 냉소적인 듯하다. 서유럽, 북유럽의 자본주의적 승리가 국민경제 이전, 지중해 지역에서의 약탈을 통해 시장을 파괴하고 자본을 축적함으로서 가능했다는 점이 좋은 예시다. 그렇다보니 브로델의 분석은 어디까지나 사후 결과를 철저히 규명하는 것에 더 가깝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의미 없는 예언적인 말에 가깝다. (이를테면, 미국 뉴욕이 계속해서 이 자본주의의 중심지 역할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있다.)
일전 <석유, 황금의 샘>을 읽으면서도 느꼈고, <얼굴 없는 중개자들>에서 다루는 인터뷰에서도 간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확실히 대규모 자본의 원천은 결코 자유시장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자유시장을 허락해주는 사회 제도 아래에서, 어떻게든 그 자유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독점하여 휘두를 수 있는, 공간(어느 한 곳에서의 공급) 또는 시간(어느 한 순간의 공급)을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그 원천일 것이다. 록펠러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진정한 자본가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이 자본주의의 근본에 대한 가치판단을 뒤로 한다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장 속에서 돈을 벌 가장 좋은 수단을 찾았고, 이후 수많은 시장에서 좋은 예시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돈을 버는 방법 자체보다도 그 돈이 과거와는 달리 온갖 곳에서 정말로 만능에 가깝게 교환되어 막강한 힘이 되는 현상이 아닐까. (미국에서 슈퍼팩이 매번 강력히 비판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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