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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은 <장자>를 복합적인 저술들을 모아둔 텍스트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철학적 ·문학적으로 쓸모없는 것이라 판단되는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파편화된 텍스트들을 선별하고 재배열하며, 내편을 제외한 텍스트들에 개입하여 장자 개인의 대한 이야기, 도의 합리화, 유토피아 등 세부 주제별로 나눈다. 그는 서론 막바지에 "그래야만 독자들은 그 사상들을 구별하고 그것들 사이에서 자기가 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를 덧붙이는데, 이를 증명하려는듯 각 주제마다 주제 선별의 기준과 근거를 역사적인 배경과 철학적인 논의와 함께 길잡이처럼 제시한다. 이러한 그레이엄의 논의는 (<장자> 내편을 제외하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느껴지는데 특히 90쪽 분량의 서론과 장자·장자 학파와는 별개의 저자들로 지목되는 원시주의, 양가, 혼합주의에 대한 소개는 동양철학 내지는 도가철학 강의를 따온 느낌마저 든다아마도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장자와 중국철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장자>에 대한 감상은... 다만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평생에 걸쳐 읽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일단 완성된 신체를 받으면, 우리는 줄곧 그것을 의식하면서 소멸할 때를 기다린다. 다른 사물들과 서로 치고받고 밀쳐대면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듯 앞을 향해 내달리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평생 수고롭게 일하면서도 성공을 보지 못하고, 기진 맥진할 정도로 고생하지만 어디서 끝날지를 모르니, 어찌 애석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기는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신체가 사라지면 마음도 함께 사라지는 이상,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찌 더없이 애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삶은 정말이지 이렇게 한심한 것인가? 아니면 나만 한심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한심하지 않은 것인가? 그러나 이미 완성된 마음을 따르면서 그 마음을 자신의 권위로 삼는다면, 누구에게 그런 권위가 없겠는가? 사물들이 어떻게 교체되는지를 알고, 누구에게 그런 권위가 있는지를 자기 마음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자만이 어찌 꼭 그렇다고 하겠는가? 그런 마음은 어리석은 자도 마찬가지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것들이 형성되기도 전에 '그것이다, 아니다'의 분별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 월越나라에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것을 믿는다면, 아무리 신묘한 우禹라고 해도 그대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어떻게 내게 이해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의미가 '장작'으로 간주되는 것에 국한된다면, 불이 한 장작개비로부터 다음 장작개비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것이 '재'라는 사실을 모른다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통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 그러나 혼돈만 그런 구멍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그걸 뚫어주자." 그들은 매일 구멍을 하나씩 뚫었고, 이레째 되던 날 혼돈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