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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독일 청년의 (다보스의 알프스산맥에 있는) 요양원 생활을 묘사하였다. 실상은 주인공의 1차 세계대전 참전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치면 프리퀄이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이 결국 십자포화로 사라지는 서사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닮았다.


12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썼다는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침윤'과 '수평생활'이다. 먼저 침윤은 주인공을 비롯한 환자들의 폐에 침투한 결핵의 경과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정신적인 침윤 단계를 묘사하기도 한다. 주인공을 비롯한 환자들은 육체와 정신 모두 침윤을 겪다가 죽음에 이른다.


침윤(infiltration) : 조직이나 세포에 정상이 아닌 물질이나 비정상적으로 과다한 물질이 축적, 침착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하여 축적된 물질을 가리키기도 한다. (출처 : KMLE 의학검색엔진)


수평생활은 수직생활에 대한 반대말로 누워서 지내는 안정 요양에 대한 냉소적 표현이다. 주인공의 교육자로 자처하게 되는 이탈리아인 세템브리니 만들어낸 언어유희이다. 그와 주인공이 마주친 첫 장면에서 등장한 냉소적 농담이다. 의사가 내리는 의학적 소견 혹은 '판결'은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 외국인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관대한 판결이 내려졌나요? 기분이 퍽 좋은 걸 보니.” 그는 입가를 심하게 씰룩이며 잠시 말문을 닫았다.


마의 산. 상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는 학창 시절 겪은 낙제의 치욕이 불명예의 특전으로 승화됨을 묘사한다. 이는 책 후반부에 요양원 고인물이 된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다시 등장한다.

* 작가, 혹은 역자는 집요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만 풀네임으로 명명한다.



즉 명예는 중요한 특전을 주지만, 불명예도 이에 못지않은 특전을 주는데, 오히려 불명예의 특전이 무제한의 성질을 지닌다.


마의 산. 상


사람들은 그를 조용히 내버려 두었다. 그는 낙제가 결정되어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아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묘하게도 통쾌한 특전을 향유하게 된 학생과 거의 비슷한 상태에 있었다.


마의 산. 하


이 책이 <데미안>과 닮은 꼴은 데미안(남자)과 에바 부인의 관계처럼, 프리비슬라프 히페와 클라브디아 쇼샤를 엮는다는 점이다. 당대 독일 문학계의 양성애적 클리셰인지 알 수가 없다. 한갓 유부녀 때문에 한스는 사촌인 군인 요아힘이 떠나도 요양원을 수년간 홀로 지킨다.


바로 코앞에서 자신을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쳐다보던 클라브디아의 눈은 위치나 색깔이나 표정에 있어서 프리비슬라프 히페의 눈을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았던 것이다! 상투어 ‘닮았다’는 말은 결코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똑같은 눈이었다.


마의 산. 상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시아적, 타타르인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반나치주의로 망명길에 오르지만, 글에는 인종주의적 요소가 꽤나 깃들어 있다. 비판적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서구의 아들, 성스러운 서구의 아들-본성과 출신으로 볼 때 문명의 아들인 당신에게 신성한 것, 이를테면 시간을 신성시하십시오! 이러한 관대함, 시간을 야만적으로 아무렇게나 허비하는 것은 아시아적인 방식입니다.


마의 산. 상


그러면서 납빛의 우묵한 눈으로 연필과 타타르인 같은 클라브디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핏기 없는 그의 입술은 벌어져 있었고, 그는 계속 그런 입 모양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역시 가지고 있었군.”


“조심해. 망가지기 쉬우니까.” 그녀는 프랑스어로 말했다. “나사를 돌리면 심이 나와.”


마의 산. 상


주인공의 쇼샤에 대한 고백이다. 참으로 이과(理科)이자 'T'스러운 고백 아닌가?


"(중략)아,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환희! 아, 정교한 관절 주머니가 지방을 분비하고 있는 네 무릎의 피부 냄새를 맡게 해 줘! 너의 온 허벅지에서 고동치고, 훨씬 아래에서 두 개의 경부 동맥으로 갈라지는 대퇴부 동맥에 경건하게 내 입술을 닿게 해 줘! 너의 털구멍에서 나는 분비물을 냄새 맡고, 너의 부드러운 털을 애무하게 해 줘! 물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무덤에서 분해될 운명을 지닌 인간의 형상이여,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고 영원히 죽게 해 줘!"


마의 산. 상


영화 <맨 인 블랙>의 유명한 엔딩 시퀀스를 떠오르는 대사도 있다. 이 책의 스케일이 대담함을 알 수 있다.



원자의 세계도 외계라 할 수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유기적으로 고찰하면 깊은 내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탐구자는 꿈꾸듯이 대담하게도 ‘은하계 동물’, 즉 살, 다리 및 뇌수가 태양계에서 구성되고 있는 우주 괴물에 관해 말하지 않았던가?


마의 산. 상




일원론적이며 과학과 이상주의의 상징인 세템브리니의 네메시스(숙적)인 나프타는 이원론적, 스콜라주의적 인물이다. 다만, 그의 사상은 가톨릭 특유의 세속적 느낌이 지워지고 꽤나 공산주의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라고 볼 수 있다. 사해동포주의를 추구하고 민족주의를 혐오하는 입장에 그러하다.


나프타의 금욕주의적 세계관으로 볼 때 그가 조국애를 페스트로 부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마의 산. 하


죽음을 결코 마주할 수 없다는 개념은 꽤나 유구한 철학적 사유이다. 요양원의 일상을 요약한다면 실로 이 문장이 적합할 것이다. 환자들이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수평생활'과 우리가 근로에 시간을 다 바치는 '수직생활'은 시간에 따른 죽음으로의 진행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찾아오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와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현실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와 하등 관련이 없으며 기껏해야 우주와 자연하고만 약간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모든 생물체들은 죽음을 아주 태연하고 무관심하며 무책임하게, 이기적으로 천진난만하게 바라본다.


마의 산. 하


후반부에 쇼샤 부인은 민헤어 페퍼코른이라는 스케일이 큰, 왕 같은 인물과 요양원에 등장한다. 그는 화려한 요양생활을 뒤로 하고 죽음으로 퇴장하는데, 일반적 해석에 따르면 그가 주변 인물을 뒤로하고 주인공 한스를 독립하게 만드는 매개체라고 한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쇼샤와 페퍼코른의 어이없는 퇴장에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이후 한스는 왜 요양원에 있어야 하나? 개연성은 없지만 어쨌든 그는 구도자(고인물)의 길을 걸어간다.


완력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다른 불가사의한 의미에서 말입니다. 육체적인 요소가 개입하면 즉시 일이 불가사의하게 됩니다.


마의 산. 하


세템브리니와 주인공의 작별 장면이다. 군인이었지만 요절한 요아힘의 이상(理想)은 한스를 통해 실현된다. 요양원에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산 밑에서 죽을 것인가? 사실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주인공 혹은 우리는 어차피 낙제가 결정된 삶이니까.


나는 네가 일하러 가기를 바랐는데, 이젠 네 형제들 틈에서 싸우겠지. 아, 우리의 소위가 아니라 네가 싸우게 되다니, 이 무슨 운명의 조화란 말인가.


마의 산.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