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그림자 없는 사람'란 개념을 좋을 대로 남용하는 게 아닌가 싶음. 이건 저자 본인이 창안한 단어일뿐임. 사회의 여러 현상에 범용적으로 적용해서 문제를 단순화하고 정당화하는데 쓰지.



이 사람의 논증 방식은 그림자임. 햇빛이 비추자 보통 사람들한테 그림자가 생겼음. 그런데 악마랑 계약한 주인공은 그림자가 안 생김

그림자 없는 주인공을 모두가 기괴하게 쳐다봄.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하나둘 주인공을 멀리하게 됐고 주인공은 혼자가 됨.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자 없는 게 이상했거든.


저자는 이 '그림자'를 인간 사회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당위, 자격이라고 설명함. 예를 들어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민들은 그림자가 없음. 그래서 장기밀매로 팔려가거나 북송되거나 하지.

혁명 시절 단두대로 끌려간 프랑스 왕족도 그림자가 없는 사람임. 목이 댕겅 날라가자 민중은 안타까워하지 않음. 되려 열렬히 환호함.



이 적용 방식에 거북함을 느껴지는 건 낙태와 군대 파트였음

출산 전 태아는 그림자가 없는 존재임. 낙태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고 물체를 죽이는 거지. 정당한 시술임

군대 장병들도 그림자가 없는 존재임. 따라서 전쟁터에 나가 희생되는 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음. 군대 내부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가혹행위도 이 원리로 설명됨.


내 의문은 태아는 둘째 치고 군인 장병한테 그림자가 없는 건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명제인가임. 아무래도 이건 아니거든.

세계는 장병 피해를 줄이고자 자동화 군대 개발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고, SNS에서 전쟁피해를 입은 군인을 보면 안타까워함.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미군이 총력전을 벌이는 건 그냥 인질로 잡힌 말단 병사를 구출하기 위해서였음.

만약 장병에게 그림자가 없는 것이 통념이라면 국가는 왜 애먼 곳에 예산을 낭비할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어떻게 공감을 얻어 수작 반열에 올랐을까?


본인의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지지하기 위해 다른 쪽 인간성을 희생시키는 행태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신념이 소중한 건 알겠지만 그보단 남의 가치를 알아주면 좋겠다. 현대 사회는 인권과 평등을 추구하지만, 그걸 실현시키는 수단이 적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거라면 평등이 무슨 소용인가? 평등을 얻어도 똑같이 비인간 아닌가

이 책은 사회과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적용 방식은 과학이 아니다. 관찰은 불충분하고 중립성도 결여되어 있다. '그림자'는 이론을 간명하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편하게 편견을 적용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여러모로 도가 지나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