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아도르노의 독특함이 잘 묻어나오는 부분이라 생각하여 정리해서 올려봄.
1. 아도르노는 칸트적 '우리'가 사회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환기하며 (제15강 후반부의 내용을 환기하는 것이다) 강의를 시작한다. 아도르노의 비판은 뒤르켐에서 시작하는 지식사회학에 관한 것인데, 뒤르켐은 공간이나 시간 같은 칸트의 선험적 형식들과 논리적 범주들을 사회적인 것에서 도출하려고 하였지만, 그 도출 과정에 이미 칸트의 범주들이 있기에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1.1. 나아가 아도르노는 이를 통해 제일철학에 대한 비판을 개시한다. 요소를 궁극적으로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지식사회학도 결코 제일철학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사회구성주의와 거리를 둔다.
1.2.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에서 추가적인 언급을 하는데, 인용해본다: "변증법적 이론은... ...내재적이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 변증법적 이론은 단순히 외부로부터 도입된... ...무기력한 지식사회학과 대조된다."
1.3. 그러나 칸트적 '우리'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본질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1.3.1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1.4. 타자를 논함에 있어 아도르노는 "타자 의식의 사실"(296p)이 간접적으로 주어진다고 한다. 즉 우리는 자아와 동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아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고 타자를 향해서도 자아를 통해서 밖에는 출발할 수 없다. 이것이 전통적 인식론의 난점이라고 아도르노는 평한다.
1.5. 아도르노는 『인식론 메타비판』 4장을 언급하며 이 부분을 마친다. 아도르노가 언급한 부분은 영어실력의 부족으로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후설과 논리실증주의의 대립. 신즉물주의, 후설의 『이념들』에 대한 나토로프의 비판 이후 후설이 신칸트주의 마르부르크 학파와 다를 것이 없어졌음을 언급하는 대목이다. 유사성에 근거하는 후설의 상호주관성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추정'된다.
1.5.1. 『인식론 메타비판』 자체는 후설 현상학에 대한 비판이 주제인 책인데, 국역본은 없다. 아니 아도르노의 후설 비판 자체에 대한 자료가 국내에 별로 없다.
2. 아도르노는 (마르크스와 존-레텔을 따라) 노동을 인식론에 도입한다.
2.1. 아도르노는 칸트 인식론의 이분법이 노동과 자연의 두 요소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다.
2.1.1. 그러니까 노동=육체노동의 형식이 인식=정신노동의 형식 즉 선험적 틀로 반영된다는 테마가 도입되는 것이다.
2.2. 칸트의 선험적 주관의 추상적 특성은 사회 자체의 추상성 즉 보편성과 연관되어 있다. 사회가 자신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추상성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2.2.1. 이는 아도르노의 질적 차이에 대한 사상을 통한 양화로서의 자연 지배 테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3. 아도르노는 블록 개념으로 들어간다.
3.1. 블록은 일종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체계가 전체를 포섭할 수 없는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 주석에 따르면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에서 더 상세한 설명을 개진하는데 아도르노의 정의를 인용하자면 이러하다: "가능한 긍정적 인식의 한계".
3.2. 아도르노는 이것이 인간 소외의 반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균열의 표상이 『순수이성비판』 전체의 구조이다.
3.2.1. "...즉 실제로 경험과 관계된 타당한 인식인 지성과 이념의 지식인 이성이라는 두 영역이 서로 화해되지 않은 채, 서로가 반대를 지시하고 있습니다."(301p)
3.3. "철저히 계몽적인 이 모티브는 항상 우리는 유한하고 제약된 존재로서 제약된 것과 유한한 것을 알 뿐 무제약적인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에 신학이 항상 같이함으로서 이제 신학과 융합합니다"(301p)
3.4. 칸트는 자연과학과 철학을 같이 이해했던 최후의 철학자이다.
3.5. 우리가 규정하는 자연과 자연 자체의 대립은 자연지배가 진행될 수록 자연이 멀어짐을 반영한다.
3.5.1. 주관주의는 물화의 현상이다.
3.5.2. 그러나 칸트는 블록이라는 개념을 통해 실증주의와 자신을 구별한다.
3.5.2.1. 실증주의는 블록을 무의미한 것으로, 실증적인 것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칸트와의 차이점이다.
3.5.3. 블록은 총체성이 불가함을, 주객은 추상적으로 동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3.6. 전체는 전체가 파악될 수 없음을 표현함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다.
3.6.1. 칸트 철학의 핵심은 정신이 파악할 수 없는 것의 파악할 수 없음 자체는 파악할 능력이 있다는 것에 있다.
정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