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ㄹㅇㄹ
반달, 죄와 벌, 우리들의 웃음, 참음은, 거대한 뿌리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세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2일 까지 시, 거위 소리, 강가에서, X에서 Y로, 이사 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그대들 김수영 읽으면서 살아라! 앞으로 대강 8회 남음!! 언넝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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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죄와 벌, 우리들의 웃음, 참음은, 거대한 뿌리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세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2일 까지 시, 거위 소리, 강가에서, X에서 Y로, 이사 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그대들 김수영 읽으면서 살아라! 앞으로 대강 8회 남음!! 언넝와~
독회 때 읽었던 김수영 시 몇 편을 다시 읽어봤다. 엉뚱한 소리 많이 했네. 지울 생각은 없다. 오늘 [우리들의 웃음] 시가 좋지만, 은근 난해해 해석을 참조하고 싶었는데, 평론가들도 엉뚱한 소리 하긴 마찬가지.. 참고가 전혀 안된다. 후.. 오늘도 역대급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되겠다 ::: 우리들의 웃음_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이 '웃음'이 어떤 웃음인가 생각해봤다. 냉소적 웃음, 허탈한 웃음, 즐거운 웃음, 씁쓸한 웃음, 착잡한 웃음..... 나는 음.. 아마 푸코가 말한 '철학적 웃음'이 아닐까 잠정한다. '웃지 않을 수밖에 없'는 웃음이다. 이 시는 단 한행도 어려운 문장이 없고, 쉬운 문장이 없다. '나'. 나는 선생인가, 선생이자 아이들인가, 아이인가. 우리나라가 종교국이라는 의미는 긍정인가
부정인가. 종교와 비종교 아이들과 아이의 차이는 뭘까. 아이가 아이들의 요약이거나 아이가 모인 게 아이들로 환원되지도 않는 것 같다. 뭐냐. 어쨌든 절망이 손마디뼈를 분질러 놓고 가는 건, 내 아들의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선생탓. 엄마탓. IQ탓. 무얼까. 오늘부터는 상상이 나를 상상한다. 모든 것이 거꾸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종교국이기에 종교국이 아니다. 거꾸로니까. 아이러니를 읽을 수 있지만, 정작 그 의미는 구체화되지 않는다. 나는 인간과 인간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다. 그 맥락을 들여와봐도 아이와 아이들의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시가 매우 좋고 조금, 조금 더 이해하고싶다고 생각한다.
문득 아버지로서 나의 아이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선생으로서의 깨달음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서 줒어들은 얘기지만, 김수영의 나의 아이는 하나는 신동엽이고 또 하나는 황동규라고 들은 적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흘려보낼 얘기지만, 거기서 떠오르는 건 있다.
반달_ 쓰려고 노력했는데, 할 말이 너무 많아 정리가 잘 안 된다. 밭이 나오는 김수영 시는 다 아름답더라. 이 시는 김수영 시 중 가장 풍부한 서사와 다층적인 표현감각을 가진 시일 것 같다. 음악을 듣는 시간 차밭의 시간이 앞뒤로 펼쳐진다. 김수영은 이런 여유로운 듯한, 아마 휴식의 시간도 '가시'처럼 생각한다. 차밭을 둘러싼 소유관계 서사가 너무 재밌고 쓸쓸하게 펼쳐진다. 차밭은 크게 자라도 거두는 주인이 없고 화자는 그 옆 채소밭을 정성스레 가꾸나 소유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내는 두 밭의 소유를 주장하고 나는 말리지 않는다. 그냥 알 것 같다. 찻잎을 나비날개로 또 체조하듯 쉰다는 휴식의 규율 표현에도 나는 감탄한다. 엉뚱한 듯 적확한 질감들! 음악 또한
여러 층위로 감각된다. 모든 음악은 춤이다. 그것은 '폐허의 질서' '수치의 개가'라는 역설로 이어진다. 유명한 구절인데, 이 시였군.. 또한 모든 곡은 눈물이다. 해서 김수영은 사마귀-아마 눈물점-을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라고 한다. [눈물이여 음악의 음악이여 / 달아난 음악이여 반달이여] 반은 달아난 음악이라니, 아름답네
죄와 벌_ 제목과 제사처럼 쓰인 첫연 진술을 읽을 때, 누구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그랬다. 짤막한 시를 다 읽고 보면, 그 의미는 알 듯 모를 듯 다시 읽게 된다. 화자는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렸고 집에 돌아와 누가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을까'만 걱정한다. 죄는 안중에 없고 목격자만 걱정한다. 근데 좀 의아한 것은 그 현장에는 '어린놈'과 '행인' 것도 40여명의 취객이 있었는데, 이들은 목격자로 안친다. '아는 사람'만 걱정한다. 발각되었을 때 뉘우쳐지는 죄의 속성(?)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죄'를 의식하는 모습이 낯선 것은 아니다. 궁금한 건 이 그림이 무엇의 표상일까 하는 것이다. 풍자인가 반성인가 말이다. 그리고. 평론가인지 뭔지들의 엉터리 개소리 슬프다
참음은_ 이 시기 김수영 시는 다 좋네. 이 시도 좋다. 참음이 일으키는 생각이 여러 시공간으로 확장되어간다. 이런저런 시공간에 대한 생각은 막막하고 지루하고 무료하게 이어진다. 이 지루하고 무료한 회상은 2연에서 반전을 맞는다. [기적을 기적으로 울리게 한다] 우와. 멀리서 기차소리가 기적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이 확 좋다. 죽은 기적을 산 기적으로 울리는 순간이다. 기분도 좋았다.
거대한 뿌리 _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지금까지 읽은 김수영 시 중 볼륨감이 가장 큰 시이다. 거대한 뿌리에 관한 시이다. 거대한 뿌리는 김수영 산문집의 표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아는 시였다. 이사벨라 비숍의 [한국과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재밌는 내용이 많지만 뭐 연애할 것까지 있나 의문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장문의 3연으로 되어있는 이 시는 1연과 2.3연이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는다. 키워드 추출을 하려면 못할 것 없지만, 왜 1연을 부연해주거나 마지막에 정리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1연은 친구 셋이 술자리를 할 때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친구들은 편히 앉는 듯하나 나는 도사리고 앉다 자세를 고치곤 한다. 이북출신들이 반공주의자일 것은 높은 확률이고 그에 맞춘다는 뜻?? 이런 어림짐작
이 가능하다 해도, 2.3연과 시적 연속성을 찾을 수가 없다. 분명 연결지점이 있을텐데.. 2.3연은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조선의 거리, 전통이다. 김수영은 말한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외국인, 타자의 눈에 비친 기록이 자연의 힘, 그저 힘 같은 '거대한 뿌리'를 발견하게 했던 것 같다. 과거와 그 기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책 속에서, 전통사회는 부조리하고 더럽고 몹시 가난하다. 그러나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고 말한다. 나도 먼 과거에 나와 비슷한 얼굴과 성격의 사람이 고된 삶을 사는 몽상을 하고 숙연해진 적이 있다. 뭐 높은 확률이다. 김수영은 전통 사회의, 음.. 어쩜 봉건의 잔재를 호명한다. 그리고
'반동이 좋다'고 말한다.... 이런 선언(?)이 회귀적. 반동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무슨 의고주의, 복고적 태도를 느낄 수 없다. 되려 과거 자체를 받아들임으로써 역사를 매개로 현재의 지속성, 영원성으로 나가는 인상을 받는다. 어떻든, 말 그대로 어떤 역사였던 간에, 공동으로 뿌리내린 강력한 힘을 발견하거나 인식한 것 같다. 철교의 엄청난 문명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 솜털급이다. 김수영은 진짜 대지의 시인이었던 것.... 그리고 이 시에서 강력하게, 거대하게 뿌리내기기에 이르른다. 이 '괴기영화의 맘모스' '거대한 뿌리' 등의 언어의 이미지는 읽은 시 중 가장 크고 압도적인 것 같다. 1연을 보면, 내적연결이 있겠지만, 역시 삐꾸시다.
김수영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계몽적으로 처리하지 않기 위해 어떤 걸 선택하고 배제했는지 ,삐꾸 형태의 구성 의미가 느낌처럼 느꺼진다. 끝.
반달 / 음악이 자아내는 규율과 탄력에 생각이 가시처럼 돋고 노란꽃도 핀다. 출처는 모른다. 여전히 수확을 기다리는 밭에는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그의 그녀가 어김없이 등장해 이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도 딱히 일갈 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실은 먼저 그가 개똥을 갖다 파묻었다. 달도 분명치 않으나 일단 솟아난 그것들이 소중한 것 같다. 물론 사마귀도 마찬가지, 떼어줄 여성의 자리는 이제 자신이 됐다. 달나라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반달을 뼈저리게 느껴버린 그니 말이다.
죄와 벌 / 그는 1연의 주문을 속삭인 채 도12끼 대신에 우산을 들었다. 마치 시험이라고 해보는 듯 그의 전매특허인 '여자'를 '죄와 벌'에 등장시켰다. 어린 놈과 취객 40명의 배심원들의 시선을 인식하지만 끝내 흉기로 삼은 우산을 버린 것에 미련을 둔다. 한 차례의 재판에서 패소했으나 다시 한 번 그것을 집어들어 도전이라도 해보려는 듯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살인이 완성되려면 죽임 또한 각오 해야된다. 또 다른 미련을, 혁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우리들의 웃음은 / 모두가 거꾸로다'......나도 역순으로 말하겠다. 흡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어떤 순서 혹은 전제를 알아보는데, 여기서 종교의 개념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종교 이전의 비종교가 있었다는 건 마치 무지 상태에서 개시했다는 말 같았다. 여기서 역순이 개입해서 비시가 시를 가르친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이 나를 상상한다는 대목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그런데 아이에 상대되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오고 있다. '선생과 나'는 보통 어른들이어야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또 나는 괜히 종교국 선포를 간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해무익한 아이들과 아이의 세상, 천사의 마음이란 노래가 머릿속에서 흘려나온다.
참음은 / 성의없이 읽는다면 인내에 대해 단순 하게 예찬하는 내용으로만 보일 것 같다. 그렇다고 신중하게 들여다 본다고 해서 거창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이 선생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 같다. 말 울음소리 대신 기적이 메꾸는 주막에서 '참음'을 생각하다 지루한 것은 10분동안의 정차가 아니라 그것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말장난 칠 여유 조차 있는데 얼음이 별거일까 싶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이다.
거대한 뿌리 / 자세를 고쳐 앉던 그는 4연에서 정말로 혁명을 일으킨다-불편해서 눈치 봐가며 맞춰갔다기 보단 같은 이방인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불만이 쌓여 폭발한 것이 아닌 지고한 반항-이 시에는 더 탁월한 이방인들이 나온다-이다. 전통을 얘기하는 동시에 외국 여자와 연애를 하며 영역을 넓히고 미리 잡설을 차단한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있어 김수영의 진창론을 제시 한다면, 그저 꼰대 취급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든다. 이런 우려도 진창에 묻어둘 수 있을까?
잘했어요 스티커 11개 드림
듣고보니, 외국여자와의 연애에 전략이 있었네 ㅎㅎ 재밌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