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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병철은 한국계 철학자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공부하고는 독일로 건너가 철학의 길을 닦았다. 책도 독일어로 쓴다. 그의 대표작인 『피로사회』는 출간 즉시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고 한다. 독일 당국도 그랬고 한국도 당연했다. 2010년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호평이 일색이었다.


『피로사회』는 에세이 같이 짧은 주제들이 모아져있는 책이다. 분량도 짧다. 100p 정도? 마음먹으면 하루만에 읽기 좋다. 그러나 다른 에세이들과는 깊이가 다르다. 『피로사회』에는 다양한 철학 레퍼런스가 담겨있다. 하이데거, 벤야민 등 독일 철학의 계보를 따르기도 하고,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한나 아렌트, 니체, 피터 한트케 등 대가들을 인용한다. 풍부한 철학적 근거로 지금의 사회를 규정하고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지 제시한다.


『피로사회』는 사회가 변했다고 본다. 통제에서 자유로,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이제는 서로 다른 것도 같게 될 수 있는 '긍정'의 사회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잉 긍정'이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며 고발한다. 그것은 부정의 폭력과 다르게 면역학적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면역 체계를 뚫고 개인을 고갈시킨다. 고로 과잉 긍정의 지속은 자연스레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부정의 폭력은 군대에서 밥을 부족하게 주는 것이고, 긍정의 폭력은 밥을 많이 주면서 다 먹으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자는 임오군란처럼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어찌됐던 식욕은 해소시켜 줬고, 구성원중에 나름 만족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내가 이상한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규율사회와 다르게 성과사회는 자유를 가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여전히 노동자들은 소모되는 부품처럼 보인다. 그것이 공식적이냐, 비공식적이냐가 두 사회의 차이점이다. 규율으로 강제했던 '강제성'은 내면화됐다. 따라서 규율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규율 + 내면의 규율을 지키며 자신을 고갈시킨다. 성과사회에서 자유롭다고 창의적인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승진을 위해 혹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규율을 지키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몰입을 위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끼며 업무를 하고 싶겠지만, 쉽게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성과사회의 일원은 '벌거벗은 생명'이다. 생명은 생명인데 속이 비어있다. 전에는 종교, 왕국, 봉건제도 등으로 개인을 보장해주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삶의 목적은 없어지고 그저 건강만이 중요해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벌거벗은 생명'이 아니게 될 수 있는가? 속이 비어있는데 활동적이기만 한 삶만큼 최악인 것은 없다. 그저 '세상사람'에게 끌려 다니며, 성과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고는, 끝내 정신질환으로 미쳐버릴 것이다. 『피로사회』는 벤야민과 니체의 말을 가져온다. 우리는 멈추고, 깊은 심심함을 긍정해야 한다. 과잉긍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에 멈춰서 머뭇거려야 한다. 돌이켜 생각하는 부정의 자세만이 우리를 일깨울 수 있다.


『피로사회』의 논리는 2023년에도 유효할까? 본 책이 나온 2010년에는 막 모바일 붐이 불던 시기였다. 그 때의 SNS라곤 아마 '카카오스토리' 였을거다. 피드 위주의 SNS가 일상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SNS가 지금은 인스타의 스토리, 틱톡의 숏폼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내 시선으로 『피로사회』의 논리는 2023년에 더 유효한 듯하다.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세상사람'이라는 급류에 휘말려가기 딱 좋은 시대다. 『피로사회』의 조언처럼 심심한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숏츠, 릴스를 멈추고 '게으름'을 즐겨보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