柱下史入關(주하사입관, 노자의 입관기)
郭沫若(곽말약, 궈모뤄) 지음
노자는 주(周)나라 장서실의 주하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이는 장서실 사관이라는 뜻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노자는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하는데, 출관하기 전에 문지기인 윤희(尹喜)에게 5000자로 된 책을 전수하니, 이것이 '도덕경'이다. (그러나 노자의 추정 활동 시기가 함곡관이 지어진 시기보다 앞서기 때문에 이 설화는 후세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곽말약은 이 설화를 뒤틀어 함곡관을 나간 노자가 다시 돌아와 윤희를 만나는 장면으로 글을 시작한다. 윤희에게 물 한병과 보리떡 두 개를 받아 먹은 노자는 이내 잘린 소 꼬리를 보이며 자신이 사막에서 피로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소를 잡아먹고는 무위자연 사상이 틀렸음을 깨닳았다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돌보겠다고 하며 윤희에게 넘겼던 죽간도 태우기 위해 챙겨 떠난다. 윤희는 분노하여 물병을 집어 던지고 노자가 분명 소는 팔아넘기고 자신에게 보리떡이나 얻어먹으러 온 것이라고 혼잣말한다.
이 단편은 궈모뤄의 문집 "족발"에 수록되어 있다. 궈모뤄는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후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 중일전쟁 발발까지 10년간 머무르며 중국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그 고대사와 고대의 인물을 제재로 작품을 써서 한 작품집으로 묶었는데 그것이 바로 "족발"이다. 처음에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제재(題材)를 가져온 프랑스 콩트 형식의 문집이라 "역사 제재 콩트"로 제목을 지었으나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사제(史題)", "사체(史體-shǐtí)" 순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친구의 연상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음에 한자만 바꿔 현재의 제목인 "시제(豕蹄-shǐtí)"가 되었다.
서평은 아니고 소개글 써 봄 츄라이
지만지꺼로 읽었음
郭沫若(곽말약, 궈모뤄) 지음
노자는 주(周)나라 장서실의 주하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이는 장서실 사관이라는 뜻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노자는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하는데, 출관하기 전에 문지기인 윤희(尹喜)에게 5000자로 된 책을 전수하니, 이것이 '도덕경'이다. (그러나 노자의 추정 활동 시기가 함곡관이 지어진 시기보다 앞서기 때문에 이 설화는 후세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곽말약은 이 설화를 뒤틀어 함곡관을 나간 노자가 다시 돌아와 윤희를 만나는 장면으로 글을 시작한다. 윤희에게 물 한병과 보리떡 두 개를 받아 먹은 노자는 이내 잘린 소 꼬리를 보이며 자신이 사막에서 피로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소를 잡아먹고는 무위자연 사상이 틀렸음을 깨닳았다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돌보겠다고 하며 윤희에게 넘겼던 죽간도 태우기 위해 챙겨 떠난다. 윤희는 분노하여 물병을 집어 던지고 노자가 분명 소는 팔아넘기고 자신에게 보리떡이나 얻어먹으러 온 것이라고 혼잣말한다.
이 단편은 궈모뤄의 문집 "족발"에 수록되어 있다. 궈모뤄는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후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 중일전쟁 발발까지 10년간 머무르며 중국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그 고대사와 고대의 인물을 제재로 작품을 써서 한 작품집으로 묶었는데 그것이 바로 "족발"이다. 처음에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제재(題材)를 가져온 프랑스 콩트 형식의 문집이라 "역사 제재 콩트"로 제목을 지었으나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사제(史題)", "사체(史體-shǐtí)" 순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친구의 연상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음에 한자만 바꿔 현재의 제목인 "시제(豕蹄-shǐtí)"가 되었다.
서평은 아니고 소개글 써 봄 츄라이
지만지꺼로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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