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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 그레이엄의 <장자>를 읽어보기 전에 한 번 그가 분석하는 전반적인 고대 중국(춘추전국시대와 그 이후)의 사상사를 한 번 읽어보고 싶어 빌려본 책인데, 확실히 중국 철학에 대한 서양 학자가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글이었다. 그리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한자 문화권에서의 이념과 문화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일원으로서 저 바깥의 사람이 느끼는 어떤 이질적인 감각이나 차이점 등을 포착하고 분석하는 데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다. 예전에 풍우란의 <중국철학사>를 읽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더욱 묘한데, 양쪽 다 중국 철학에 대한 몰이해나 가치 절하를 반박하기 위해서 학문을 종합하는 글을 쓰고 있되, 중국인인 풍우란은 시대적 배경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중국 철학을 서양 철학의 개념들에 끼워맞춰 분류하고 대응시켜 소개하는 반면, 영국인인 앵거스 그레이엄은 반대로 애초에 전혀 다른 개념과 사고관을 대응시키며 심각한 오해로 인한 평가절하가 이뤄지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일전 유교 고전이나 성리학 관련 서적을 볼 때면 뭔가 미묘하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점들이 늘 있었다. 분명 그 사용하는 방식이나 개념의 설명을 보면 결코 지금 대응시키는 무언가와 그리 맞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를 통하여 어떤 한계점을 보여주며 무엇이 나아갈 수 있었던 다른 방향-흥미롭게도, 별로 기존의 개념과 연결되지 않을 법한 무언가-을 넌지시 제시하는 것이 참 뭐랄까, 당시까지만 해도 어쩔 수 없었던 동양 컴플렉스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앵거스 그레이엄의 책에서 나오듯 당시까지 학자들이 보이던 태도를 생각해보면 그럴만하다 싶기는 하다) 또한 우리에게조차 사실 이 고대 중국 철학에서 이어지는 이념들이 이념 그 자체로는 그리 전달되지 않았기 떄문이기도 할 테다. <도의>에서도 언급하곤 하지만, 중국 철학사는 우주론적 통합과 더불어 하나의 실질적인 정치철학, 정치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관료제는 그 이념이 어떻든,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과거 제도는 그 좋은 예시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능력 중심 선발 시험 기반 사회'란 근대에서 과거 제도를 수용한 결과다.)
<도의>는 우리가 반쯤 망각하다시피한 이념적 근본을, 우리에게도 약간 더 낯선 이의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책이다.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혹은 저자가 지칭하길, "기축 시대"-에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들은 "도"를 찾아야만 했다. 철학적 개념이 그렇듯 이 "도"라는 것에 대해 엄밀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간략히 하자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이뤄야 할 하나의 이치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앵거스가 몇 번이고 강조하듯, 이러한 이치를 비롯해 고대 중국 철학의 수많은 개념들은 늘 어떤 구체적인 현실의 대응물, 이것을 이루고 있거나 이뤄야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곤 했다. "유사 삼단논법"이라고 그가 칭하는 순서를 따라 설명하자면, 문제가 있을 때 모든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하고, 그 결과 그는 자연스럽게 어떤 한 생각을 선호하게 되며, 이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그 생각대로 한다. '선호'한다는 말이 보여주듯, 이는 외부의 강압으로 성취해야 하거나 칸트의 비판 이성처럼 늘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사람이 그리 된다는 뜻에 가깝다.
법가는 당시의 사상 중에서 가장 인간 외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강력한 법치를 통해 백성들이 악한 짓을 하지 않도록 강제한다는 이 사상조차도 근본적으로 그 안의 사람이 '그리 되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합리적 체계와 그 안의 사람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법가와 대조적으로 도가는 이 체계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데, 도가 사상의 이념적인 깊이와는 별개로-<도의>는 도가 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비합리주의인지, 반합리주의인지를 이야기하는 데에 상당한 분량을 투자한다-이 사상의 실천은 체계에 포함되어 일종의 반항 자체가 순응과 마찬가지로 체계에 포함된 총체적인 구조를 이루는 데에 기여했다. (여기에서 마크 피셔의 '작금의 자본주의 체계는 그 반항 자체를 하나의 규격화된 상품으로 만들어 체계에 수용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는 포스트-포스트모던 분석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앵거스 그레이엄의 <장자>가 가장 유명한 데에 비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묵가-개중에서도 후기 묵가다. 후기 묵가는 명가와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논변이라고 할 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명가 공손룡의 백마비마와 같은 논증들이 해괴하게 느껴지는 것과 함께 이 논증들이 전제하고 있는 중국 철학의 언어 및 개념들이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정신-물질 이분법의 부재), 이것들이 언어철학적으로 어떤 범주론과 존재론을 전제하고 있는지(전체로서 존재하는 세계의 명명을 통한 구분 및 분할)를 분석하곤 한다. 흥미롭게 읽긴 했지만, 아마 진지하게 읽어보려면 <도의>처럼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이쪽을 조명하는 것보다는 이쪽을 위주로 다루는 연구를 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별개로, 중국 철학에서 이후 태동된 통합적 우주론-<주역>과 음양오행론 등이 차지하는-의 기반과 원형과학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최근 읽은 <마술, 과학, 인문학> 생각이 났다. 신비학과 과학이 함께 발을 맞추며 신과학에서 우리가 아는 그 과학까지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양이 중국과는 달리 자신의 그 신비론적인 과학이 정말로 정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참 큰 다행이며, 이것이 중국의 체계적인 통합 이론의 정확성 추구에 대한 회의와는 달리 수학적이고 엄밀한 체계를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엄밀한 분석과 비판적 의식이 지금의 설명처럼 정말로 우리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맞을지-하지만 이공계열 학생으로서 뉴턴 등의 학자들이 붙잡고 있던 수많은 계산이 입증하듯 엄밀한 분석만큼은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하다만-잘 모르겠다. 외려, 그렇지 않았던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현재가 열렸던 것이 아닐까. (조증에 걸린듯한, 무근거한 낙관성의 힘이라고나 할까.)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