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fed8275b4826bf63fed86ed45836a370455b837a393c518d0d7db56f9e0

En attendant Godot / Samuel Beckett / 1953.

“가서 이렇게 말해라.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 틀림없이 넌 나를 만난 거다. 내일이 되면 또 나를 만난 일이 없다는 소리는 안하겠지?”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 나타난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두 방랑자가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방식으로 표현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

두 남자는 한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둘은 이야기를 하지만 상호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던 중 그들은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를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역시 두서없고 무의미한 대화뿐이다. 밤이 되자 심부름을 하는 양치기 소년이 나타나 그들에게 '고도 씨는 내일 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내일 또한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도는 과연 무엇일까?
‘고도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을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것’이라는 베케트의 대답은 작품의 고정된 의미를 부정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그저 기다려야 하는 삶과, 나무에 목을 매는 것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생을 반복한다. 죽지 않는다면 결국 삶의 목적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삶이란 결국 오늘 올지 내일 올지 알 수 없는 대상을 기다리는 것이며, 오지 않는 대상을 기다리며 시간을 견디는 동시에 그것에 어떻게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오히려 삶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고, 그에 따른 결과는 부산물에 불과한 것 아닌가? 존재하지 않는 삶의 목적을 찾고, 만드는 과정만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 아닐까?

판도라는 그녀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항아리를 열고 만다. 만악의 근원 밑바닥에는 희망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 희망이란 것은 만악의 근원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괴테는 희망에 대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희망은 악인 것이다"라 하였다. 즉, 희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현재를 살 수 있었을 텐데, 현재를 살지 못하고 힘든 삶을 직면하지 못한 채 미래를 꿈꾸나, 인간은 결국 미래에도 더 먼 미래를 위해 고통스런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 내일은 영원한 내일일 뿐이다. 

오늘 저녁에도 어딘가의 무대 위에서는 두 명의 부랑자들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