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독서량은 그야말로 개같이 멸망하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7년간 지냈던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이주하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는데, 그 영향인지 독서량이 평소 대비 반토막이 나버렸다. 2023년이 얼마 안남은 상황에 다음 달이야말로 분발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지난 한 달 동안 읽었던 책들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1. 바빌론의 역사 (A Short of History of Babylon)
“바빌론의 역사는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이자 신전과 신들의 이야기며, 지식과 교육의 이야기다. 또한 미래에 대한 열망과 과거에 대한 열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도시의 정채성과 그를 둘러싼 외부 세력에 관한 이야기이며, 웅장한 건축물과 퇴락한 진흙벽돌에 대한 이야기이다.”
- 바빌론의 역사 中 -
오스트리아 태생의 고대 중근동 역사학자이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석좌이자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이하 UCL)에서 출강하다 현재는 뮌헨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카렌 라드너(Karen Radner)의 역사교양서 바빌론의 역사를 읽어봤다. 책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본작의 내용은 필자가 UCL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던 내용을 모아 출간한 내용이라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게된 계기는 월간독갤 미니갤에 들락거렸던 독붕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몇달 전 월간독갤에서 영문학을 주제로 리뷰 투고를 받을 때 본 도서의 출판사 도서출판 더숲 측에서 투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섯 명을 추첨해서 자사 책을 보내주겠다는 후원 이벤트를 벌였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그 다섯 명 중 한 명에 들어서 이 책을 선물받았다. 다만 내가 해외에 체류하다 보니 책을 직접 받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몇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인류사에서 최초로 발흥한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타 문명에서 이름을 날린 도시국가 바빌론을 주제로 삼은 역사서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온갖 도시국가들과 제국들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고대 이라크-레반트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때는 한 나라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시대에 따라 패권을 잡았던 여러 국가들을 두루두루 다루는데 본 책은 제목 그대로 우직하리만치 바빌론에만 중점을 둔다. 이 책에서 나오는 바빌론의 거시사를 간단히 알아보자면 본디 바빌론은 유프라테스 강가와 티그레스 강가에 난립하던 수많은 도시국가 중 하나로 시작한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이전에 해상무역으로 잘나가던 페르시아만 연안 도시국가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쇠퇴하고 그 대안으로 티그레스 강 상류 쪽에 있는 자그로스 산맥의 육로가 무역로로 각광받게 되자, 티그레스 강 상류에 자리잡던 바빌론도 패권을 잡을 기회를 얻게 된다. 기원전 18세기 경 바빌론의 왕이 된 함무라비는 군사를 일으켜 자그로스 산맥의 무역로를 꽤차던 이웃국가 에쉬눈나 왕국을 발빠르게 무력병합하고 이후에도 정복전쟁과 외교전을 통해 이라크-레반트 전 지역을 손에 넣으며 바빌론을 명실상부한 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정복전쟁으로 쌓은 부를 학문, 건축, 종교, 문학 등 여러 문화 분야를 융성시키는데 투자하여 바빌론이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갖추는데도 공헌하였다. 함무라비의 왕조는 한 세기 정도만 유지되다 철기로 무장한 히타이트 제국의 침공으로 무너지게 되지만, 이후에 바빌론을 통치하는 카시트 왕조, 아시리아 간섭기의 바빌론 왕들,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이르기 까지 그가 남긴 유산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진화를 거듭하였다. 그덕에 바빌론은 흥할 때나 쇠할 때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의 지위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바빌론은 바빌론 고유의 문화를 등한시하던 아키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당하며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셀레우코스 왕국, 파르티아 제국, 로마 제국, 사상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으며 더욱 쇠퇴하다가 서기 2세기 경에는 역사 속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고 말았다.
본 서적은 바빌론의 거시사 뿐만 아니라 미시사와 관련해서도 짚어주며 설명해준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꼽자면 바로 바빌론이라는 도시국가가 마르두크라는 신을 중심으로 뭉친도시라는 점이었다. 사실 마르두크라는 신은 많고 많은 메소포티미아 문명 내 신들 중에서 한 지역의 수호신이라는 점 외에는 별 비중이 없었지만, 그를 떠받드는 바빌론이 패권국으로 우뚝 솟아오르자 그 위상이 수직상승해서 마침내는 최고위 신으로 등극하였다. 또 바빌론이 정치적으로 여러 격변을 거치며 중심 세력이 불분명 해지자, 바빌론을 하나로 뭉쳐주는 구심점이 다름아닌 마르두크 신앙이 되었다. 이 때문에 바빌론의 왕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마르두크 신전 사제들의 환심을 사야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본 서적은 대중들을 상대로 한 역사교양서이지만 저자가 고대 중근동사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학자여서 꽤나 엄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균형잡인 시각으로 바빌론을 탐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 말미에 수록된 50쪽 가까운 인용출처문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원문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문장 자체가 너무 딱딱해서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바빌론의 거시사를 설명하는 와중에도 시간대가 왔다갔다 해서 읽으면서 내용이 헷갈렸던 적이 적잖이 있었다는 점이 있었다. 번역에도 미흡한 부분이 있어서 가끔 문장의 이해를 해칠 정도로 문맥과 맞지 않는 뜬금없는 어휘가 튀어 나올 때도 있고, 간간히 비문도 보였다. 이 점은 출판사에서 향후 재판을 할 때 참고해 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하여튼 위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바빌론이라는 고대 국가를 개략적이면서도 정확히 알려주는 도서는 몇 없기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일독을 권장할 수 있는 책이다.
2.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그녀를 가까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권태로운 전원, 우매한 소시민들, 평범한 생활 따위는 이 세계 속에서의 예외, 어쩌다가 그녀가 걸려든 특수한 우연에 불과한 반면, 저 너머에는 행복과 정열의 광대한 나라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욕망에 어두워진 나머지 물질적 사치의 쾌락과 마음의 기쁨을 혼동하고, 습관에서 오는 우아함과 감정의 섬세함을 혼동하고 있었다."
- 마담 보바리 中 -
1821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 태생의 작가로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이자 현대 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대문호로 평가받는 대문호 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를 읽어봤다. 이 책을 찾아서 읽어보게 된 계기는 플로베르가 불문학은 물론 세계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될 대작가로 추앙받은 덕도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학문적으로도 연구했던 작가가 다름아닌 플로베르였던 것도 좋은 동기부여가 되줬다. 더불어 최근 사실주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있어서 사실주의 문학의 전범으로 취급받는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샤를 보바리라는 한 남자의 학창시절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는 퇴역군인과 정숙하고 보수적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 특출나게 명석하진 않았지만 성실한 태도로 학업에 임해 중간 이상의 성적은 내던 학생이었다. 잠깐 도박과 음주의 유혹에 빠지기도 했지만 부단히 노력해 공의시험에 합격하여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일반적인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가 되었다. 이후 샤를은 토트라는 마을에 정착하고 부모의 강권으로 자산을 깨나 가진 늙은 과부와 결혼을 하게 됐지만 틈만나면 샤를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서 그닥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르토라는 마을에서 루오 영감이라는 부농이 다리를 다치면서 다급히 의사를 부르자 샤를은 야음을 헤치고 그의 집으로 향한다. 루오 영감의 부상은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니라 쉬이 고칠 수 있었는데 샤를은 곧 루오 영감의 하나뿐인 딸이었던 에마와 마주친다. 그녀는 농부의 딸이지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책을 즐겨 읽어 교양을 갖추었고 무엇 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녀 샤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얼마 안 가 본래 자산가로 알려졌던 아내의 재산도 사실 과장된 것으로 드러나 부모와 아내가 크게 다투게 되고, 이 영향으로 샤를의 아내는 화병에 걸려 세상을 뜨게 된다. 그후 자신도 아내를 잃은 아픔이 있었던 루오 영감이 샤를을 찾아가 그를 위로하는데 그 과정에서 에마를 향한 그의 연심을 확인하고 자신의 딸과 결혼식을 추진한다. 에마도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신혼생활을 꾸려나가지만 그녀는 항상 망상에 빠져살았던 성정 탓인지 얼마 가지 않아 단조롭기 짝이 없던 샤를과의 결혼생활의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남편과 연이 닿은 한 귀족으로부터 파티에 초대를 받으며 호화로운 상류층의 생활상을 직접 목도하면서 더욱 현재의 상황에 권태감이 배가되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을 졸라서 토트를 떠나 용빌이라는 대도시 근교의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 에마는 용빌에서 처음으로 머물게 된 금사자 여관에서 마주치게 된 레옹이라는 한 청년을 보고서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휩싸인다.
본 책은 플로베르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문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실제 불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한 장편소설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바로 작품의 첫 장면을 장식한 샤를 보바리의 둘째 부인 에마 보바리인데, 서사상의 중심 사건들이 그녀의 즉흥정인 감정에 의해서 벌어진다. 그런만큼 본작의 내용도 에마의 심상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 작품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을 꼽자면 다름 아닌 묘사이다. 작품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묘사들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드러난 것이나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하는 걸 넘어서 이 둘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사실적이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해 낼 수준에 이르렀었다. 그덕에 일견 망상에 빠져 사는 한심한 유부녀 정도로만 비칠 수 있는 주인공 에마도 플로베르의 가호를 받아 현실에서 해리되어 예술혼과 정열에 모든 것을 불태우는 여인으로 윤색되어 한층 더 입체적인 면모를 갖춘 캐릭터로 등극하였다. 이처럼 거의 신기 수준의 심리 묘사를 보고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이자 플로베르와 동갑내기 작가인 도스토옙스키가 연상이 되었다. 다만 두 사람을 비교해 보았을 때 명확한 차이점도 있었는데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는 심리 묘사를 즉흥적으로 떠오른 단어들을 휘몰아치듯이 거칠게 써나가는 경향이 돋보인다면 반대로 플로베르는 문장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하나를 숙고한 다음 형식에 맞춰 깔끔하게 문장을 직조해 나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품 내 사실적인 묘사들은 배경과 심리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중 등장하는 사건들과 사회상에도 적용되었다. 그냥 단편적인 묘사로 떼울 법도 한 농사공진회 장면이나 안짱다리 교정 수술도 작가는 편의주의에 찌들지 않고 철저한 취재를 기반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왕정복고 시기의 사회상 전달에도 충실한 편인데, 프랑스를 흔들어 놓았던 대혁명의 유산은 시간이 휩쓸고 간 폐허 정도로만 엿볼 수 있고, 왕정복고 시기에 심심하면 불거졌던 이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와 복벽주의적인 가톨릭 및 왕당파 세력의 분규가 작품 내에서는 용빌의 약사인 오메와 동네의 주임 신부 부르니지앵 간의 설전으로도 드러나 있다. 이는 마담 보바리가 픽션을 넘어 한 시대를 대변하는 역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한다. 너무 자세한 묘사 때문에 템포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마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이를 충분히 상쇄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3.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La literatura nazi en América)
“나는 그가 냉혹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오직 마흔이 넘은 일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만 그럴 수 있다.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의 그것과는 판이한 냉혹함, 치유 불가능한 슬픈 냉혹함이다.”
-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中 -
1953년에 출생한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 (Roberto Bolaño)의 소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읽어봤다. 그는 칠레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10대 중반 부터는 부모를 따라 멕시코로 이민했고, 성년이 되어서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정착해서 산 사람으로 방랑자 기질이 있었다. 원래 볼라뇨는 시집을 낸 적이 있던 시인으로, 본인도 시를 쓰는 데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만으로는 밥벌이가 힘든 관계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썩 내키는 이유로 소설 집필을 시작한 건 아니였지만, 그는 거의 매해마다 소설 한 편을 출간했을 정도로 열심히 창작에 몰두했고, 2003년 간부전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물론 세계 문학에도 영향을 남길 정도의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에 읽어본 책 또한 볼라뇨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나로서도 볼라뇨는 꼭 한 번 접해보고 싶었던 작가여서 이전부터 입문작으로 무엇을 읽어볼지 고민 중이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야만스러운 탐정 (Los detectives salvajes)이나 2666은 분량이 좀 부담스러워서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부터 사서 읽어보았다.
본작은 30명에 이르는 가상의 작가들을 실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 속에 집어넣고는 이들의 행적을 설명하는 백과사전의 형태를 띄고 있다. 작가들의 국적은 칠레, 아르헨티나, 미국, 멕시코, 페루, 아이티 등 여러 아메리카 국가에 분포되어 있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도 20세기 초 전간기 부터 본작의 출간년도인 1996년도 기준으로 미래에 해당하는 2010년대까지 제각각이고 이들의 직업 및사회적 배경 또한 부잣집 마나님, 시골 부임에 전전긍긍하는 초등학교 교사, 사이비 교주, 흉악범, 축구팀 훌리건 등 굉장히 다양하고 각자가 추구하는 작품관도 판이하다. 이렇게 각자 따로 노는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이 하나가 바로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책에 등재된 작가들 모두 나치와 접점이 있거나 나치의 사상에 동조 내지는 추종할 정도로 다분히 극우적인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 나치즘으로 수렴되는 다양한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리뷰하면서 그들의 극우적인 행태를 비꼬는 내용이 이 책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 사이에 놓인 가상의 작가들과 작품을 리뷰한다는 내용에서 여러모로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의 작품이 연상되었다. 실제로도 볼라뇨가 가장 좋아하던 작가 중 하나로 보르헤스를 꼽기도 했다. 이렇게 까지만 얘기하면 본작이 보르헤스의 아류작 내지는 단순 오마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볼라뇨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선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작풍을 지니고 있다. 보르헤스의 단편집을 보면 각 작품을 끌고 나가는 사건은 등장인물간의 감정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기 보다는 공상적인 세계관이나 기현상 또는 현학적이기 짝이 없는 이론 논쟁과 학문적 탐구로 인해 발생한다. 이때문에 보르헤스의 작품은 다분히 고답적이고 자폐적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볼라뇨가 집필한 본 작품은 오히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분명 작품 내 화자는 지극히 반동적이고 혐오스러운 작가들의 행적을 빈정거리는 듯이 서술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악의 화신인 것 마냥 호도하지 않고 이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겪은 상실, 좌절, 고난 또한 조명하면서 이들을 향한 인간적인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는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면모를 두각시키는 효과적인 연출방식이기도 하고 본작의 개성을 구축하는 아이덴티티라고도 볼 수 있다.
본 작품의 여러 에피소드에서는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칠레의 민주적 절차를 거쳐 수립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아우구스ㅌ 피노체트의 9.11 군사 쿠데타, 군부 독재 시기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졌던 정치탄압인 더러운 전쟁 (Guerra sucia) 등등 실제 역사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접할 수 있다. 작품 내 등장인물들도 여기에 연루되거나 가담하는데 이를 통해 극단적인 장치투쟁과 정치적 폭력이 만연한 라틴아메리카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단연 과거뿐만 아니라 작품 출간시기로부터 현재나 근미래에 해당하는 2010년대와 2020년대에도 파시스트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도 작가가 작고한 뒤인 현재에도 파시즘이 수그러 들기는 커녕 유럽, 아메리카 등지에서 기세등등한 걸 보고서는 개인적으로 볼라뇨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감정도 느꼈다. 마지막으로 현재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두고서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리뷰하는 내용의 책인만큼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 없이 읽는다면 생소한 내용에 고개가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안다면 제법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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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완독ㄷㄷ
생각보다 양이 좀 많더라... 그래도 왕정 복고 시절 프랑스를 VR로 보고온 것 같이 묘사가 생생하고 감각적이라 시간들여 읽은 보람은 확실히 있었음. - dc App
너무 인사가 늦었지만 재밌는 책 보내줘서 고마워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