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ㅇ
시, 거위 소리, 강가에서, X에서 Y로, 이사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7일 까지 말, 현대식 교량, 65년의 새 해, 제임스 띵, 미역국 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요새 다른 책 읽느라고 요거에 잠시 소홀했네영 요번에 한꺼번에 다 업로드 하겠읍니다. 곧 30차를 맞이하는 독회에 어서 합류해라!!
ㅎㅇ
시, 거위 소리, 강가에서, X에서 Y로, 이사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7일 까지 말, 현대식 교량, 65년의 새 해, 제임스 띵, 미역국 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요새 다른 책 읽느라고 요거에 잠시 소홀했네영 요번에 한꺼번에 다 업로드 하겠읍니다. 곧 30차를 맞이하는 독회에 어서 합류해라!!
1. 시_ 나비야 우리 방으로 가자 /김수영의 나비에 대해 짐작되긴 하지만, 맞는 지는 모를 일.. 2. 거위 소리_ 밤에 듣는 거위 소리가 마법을 부린다. 3. 강가에서_ 평범한 건강하고 살고 있는 생활인과 '나'를 견주어 성찰해 본다. 성찰의 내용이 대수롭지 않고 자기연민처럼 느껴진다. 노잼 시 중 하나였다 4. X에서 Y로_ 어느 정도 전형적으로 운동감에서 정지감으로 이행하는 감각이나, 마지막 2행이 무척 빛난다. 시골에서 '나의 마을'로, 지구에서 지구로, '억지로 왔다' 는 진술에서 무거운 마음이 감지된다. 자신을 붙들고 밀면서 억지로, 겨우 이동한 것 같다.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사는 나의 마을'이란 현실이 아닐까 싶다 5. 말_ 이 시에 대해서 나는 한행 한행 이야기 하고 또 남의 의견도
다섯 번째는 이사 인데 ㅡㅡ
내 책엔 말이 있는걸 --;
아니 다시 보니 이사네 ; 이사_ 이 시 좋음. 이사를 한 듯, 김수영 방은 막다른 방이다. '막다른 방'의 의미는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겠다. 김수영이 방의 공간 감각으로 펼치는 사유를 난 되게 좋아하는 것 같음. 이즈음 시인은 자연이 꼴보기 싫어진 것 같다. '차단할 부엌문이 있'어 다행스러워 하는 게 재밌긴 하지만, 자연마저 거슬리는 심정으로 지내는 시인의 심정이 어떤 것일지... 안스럽다. 표현,정서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가진 재미 시였다. 못마땅해서 뒤틀린 감정을 순화해서 엉뚱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듣고 싶지만 그건 어렵겠지. '나무뿌리가 좀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는다'고 시작하는 시 분위기는 무겁다. 누구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속에서 '나'는 말이 없어진다. 있는 건 죽음의 질서이고 생명도 맡겨진 것이라 인식된다 말과 세계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있었을 것인데 표현된 상징을 다 알긴 어려웠다. 어둡지만, 의미들이 꼭 부정적으로 읽히는 건 아니다. '무언의 말'은 하늘의 빛, 물의 빛, 우연의 빛 같은 신성한 것이고 동시에 죽음을 꿰뚫는, 죽음을 위한, 죽음을 섬기는 죽음의 말이기도 하다. 침작하는 겨울에 기대어 쓰였지만, 마지막 행에서 '말'은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이다. 어둠. 겨울이 다는 아니다. 이제 시인은 '말'의 주인으로 '말'을 소유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른 듯하다.
시/ 1연은 내 스스로 생각하는 유무신론 고민과 닮았다. 어느 한 쪽에 서있어야 만 할 것 같은 이 담론에 다른 방을 찾아나서는 것도 재밌겠지만 서도 미로를 헤매는 기분에 조금 답답하긴 하다. 그래서 나도 그냥 2연 같이 살아야겠다 싶기도 하다. 돌파구 같은 걸 원하는 거 자체가 그릇된 시작일까.
거위소리 / 짧은 이 시에 얼마나 할 말이 더 있겠냐만은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그도 가끔 이런 정취 속에 휴식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점일 것 같다. 죽은 사람이란 개념은 비단 1차원적이진 같않을 것 같다. 나는 풀이 빗방물을 맞아 내는 바람 소리 같은 것을 좋아하는데, 거위소리라......
강가에서 / 나는 어떤 영상들의 댓글들을 자주 들여다 보곤 하는 악취미가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궁금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 지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기에 눈쌀 찌푸리는 걸 감안 해서라도 스크롤을 내려가며 애써 읽어 나간다. 그럴 때 마다 나도 정말로 무서워진다. 아마 이 시에서 말하는 공포도 같은 맥락일 거라 생각한다. 4연 1행 과 같이 나 또한 느낄때면 불안하기 까지 한다. 이런 쓸데없는 걱정들은 아마 살만해서 생기나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나의 의식이 이 무서움에 이미 발디딘 순간 부터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서러움에 사로잡혀 살아가야만 할 것 같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X에서 Y로 / 생활의 권태-유난떨어 말하자면 실존의 지루함-을 가장 잘 말하는 작가는 카프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서 느낀 그 매력을 이 시에서도 찾은 것 같다. 비단 거기에 국한 된 얘기는 아니다-철스퍼거적 피력을 조심스레 담자면 니체의 영원회귀 속 그의 지론은 이 굴레를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했다고 본다. 어쨌든... 이 시의 맥락을 따른다면 지구에서 지구 만큼 이방인의 공간을 잘 변호해주는 말은 잘 없을 것 같다. '우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라는 이제는 지루해진 이 뻔한 질문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나저나 X에서 Y로 라니, 진정 그가 달고 싶어했던 제목일까. 좀 더 짖궂었으면 좋았을려만.
이사 / 찬찬히 읽어나가고 있을 때 '아 이 사람을 차단을 하고 싶어하구나' 싶었는데 9행에 그런 대목이 나와 조금 놀라기도 하고 친밀감 들었지만 이런 공간을 상정을 하는 것도 조금 서글픈 것 같다. 그치만 뭐, 아내와 자연이 있으니 그것을 다행으로 삼아도 아니될 건 없지만 서도 푸석한 느낌은 감출 수 없다. 그의 방들의 끝엔 산기슭이 있고 구름이 걸쳐있지만, 난 뜻 모를 위기에 무서움을 느낀다. 그런데 웬 갯벌이라니! 게다가 게으르다는 이 공격성에 반갑기도 하고 자뭇 당황스럽기도 하다. 아내는 팥죽 까지 쑤고 그 곳은 거리의 부엌이다. 완전히 배척의 대상이 돼버린 이 녀석은 무엇일까. 나의 장소를 요구받자니 너무 나약하기에 조금은 부담스럽다. 벌레란 놈은 나의 최고이자 최저라고 생각하는 나는 기로를 정해야
는 걸까. 이 고민은 이내 쓸데없다. 집들이는 열리고 팥죽은 내놔야 한다. 오래간만의 손가락 두 마디 사이에 낑겨있는 담배의 불씨가 뜨겁고 겸연쩍 스럽다.
오래 고민하고 써서 그런가, 더, 더 잘 읽히네. 김수영 시 전반에 흐르는 남성적 어법, 어조와 달리, 자기여성을 섬세하게 찾아내고 돌아가는 모습을 몇 번 본 듯하다. 시 쓰는 자아와 관련되는 공간이나 작업들이 그렇고. 쓴이 글 중 시와 이사를 읽고 시 한번 더 펼쳐봐서 좋았음. 이사는 나도 접때 생각해본 게, 자연에 좀 더 가까워진 집으로이사하면서 위안받고 편해지는 마음을 경계하는 것 아니겠나 싶다. 좋아서, 거기 맡기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자연탓. 아내탓. 팥죽탓 같은 거랄까. 집들이와 팥죽이라는 속신이 매력적이다. 아마 막 이사를 마친듯 하니, 집들이를 하고 의례를 마치면 이 집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참. 담배홀더 개추할게. 안 뜨검.
ㅋㅋ담배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