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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수 지성개념은 그것이 경험의 기초에 놓여있는 선험적인 조건으로서만 가능하다.
1.1. "이제 이 범주들에 의해서만 하나의 대상이 사고될 수 있음을 우리가 증명할 수 있으면, 그것은 이미 범주들의 충분한 연역이고, 범주들의 객관적 타당성의 정당화이다." (A96~A97)
1.2. 경험에는 감성과 지성이 필수적이다.
1.3. 인식에는 세 종합이 필수적이다.
1.3.1. 직관에서의 포착의 종합, 상상에서의 재생의 종합, 개념에서의 인지의 종합이 그것이다.

2. 표상들은 내감에 속하기에, 시간이라는 형식을 가진다.
2.1. 직관이 가지는 잡다는 시간의 구별로서만 그러하게 표상된다.
2.2. 표상들의 구별은 순간들의 구분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2.3. 표상들을 시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포착의 종합이다.
2.4. "그럼에도 그것들은[표상들은] 모두... ...내감의 형식적 조건, 곧 시간에 종속한다."(A99)

3. "자주 잇따르고 수반하는 표상들"(A100)은 재생의 법칙에 의하여 연합된다.
3.0.1. 이 부분은 흄이 떠오른다.
3.1. 그런데 이러한 법칙에 의하여 연합되는 표상들은 자의적으로 연합되는 것이 아니다.
3.1.1. 즉 "현상들의 필연적인 종합적 통일의 선험적 근거가 됨으로써 현상들의 이런 재생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무엇'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A101)
3.2. 우리는 자의적으로 연합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러하다.
3.2.1.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의 근거는 무엇인가? 칸트에게서는 이와 같이 그 어떤 모범적인 인식 모델이 미리 전제된 채 그것을 밝히는 테마가 반복하여 나타난다.
3.2.1.1. 그러나 동시에 변증학의 존재가 보이듯이 그러한 모델을 이성이 벗어날 수 있음도 인정하는데, 이 상반된 모티브들을 어떻게 (아도르노 왈) "힘의 장"(Kraftfeld)으로 이해하여야 하는가?
3.2.2. 선험적 종합판단의 존재 자체는 전제된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3.3. 그런데 현상들은 물자체가 아니기에 결국 연합의 계기가 되는 그 무엇의 원인이 될 내적인 것이 필요하다.
3.3.1. 그것은 상상력의 순수한 초월적 종합이다.
3.3.2. 표상들의 통일성(자기동일성)은 이전의 것을 재생함으로서만 가능하고, 그렇게 전체표상이 생각될 수 있다.
3.4. 재생의 법칙을 자의적인 것이 아니게 하는 그 무엇은 결국 초월적인 재생의 종합의 산물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왜 자의적인 것이 아닌가?
3.5. "그러므로 포착의 종합은 재생의 종합과 불가분 결합되어 있다."(A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