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Qing dynasty in Inner Asia - Wikipedia


‘청나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전부 딱히 좋은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오랑캐, 호란, 삼전도, 치욕... 우리가 조선의 ‘후예’를 자처하는 한국인이니만큼 일정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감상이다. 하지만 그런 천편일률적 시각을 이제는 어느 정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대단히 훌륭한 교재다.

이 책은 ‘중화제국’으로서의 청을 넘어서, ‘역사상의 동아시아 세계와 중앙유라시아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세계제국’으로서 청을 바라보고 있다. 청은 그동안 ‘한(漢)’의 맥락에서만 관찰되었고, 청의 성공적인 제국 운영 비결은 만주족의 적극적인 한화(漢化, 한족이 되어가는 현상)라는 이론이 종래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관점은 다르다. 청의 지배강역에서 전통적인 한족의 땅, 즉 ‘중국’이 차지하는 면적은 절반에 불과했다. 

청은 그 이상이었다. 지역을 달리해서 관찰할 때마다 그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청은 한인(漢人)에게는 명을 뒤이은 중화의 천자로, 만주인에게는 만주의 대칸(大汗)으로, 몽골인에게는 달라이 라마의 보호자로, 타림 분지의 무슬림에게는 무슬림의 보호자로 행세했다. 책에서는 청나라의 이러한 성격을 ‘키메라의 제국’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키메라는 괴물이 아니라 ‘복수의 수정란이 융합되어 형성된 생명’을 말한다. 청나라는 만주, 몽골, 한인, 조선 등 수많은 수정란이 융합되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키메라의 머리는 그 유명한 팔기였고, 자양분을 공급하는 몸통은 한족의 ‘중국’이었으며, 사지는 몽골, 티베트, 만주, 위구르 등이었다. 키메라의 전략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팔기가 한족에 동화되지 않도록 했다. 이들의 거주 구역은 한족 구역과 철저히 격리되었다. 둘째, 각 지역은 각 지역의 풍습대로 다스리도록 했다. 한족은 명나라의 법률대로, 팔기는 팔기의 법률대로, 몽골은 몽골의 법률대로... 이를 ‘본속주의’라고 한다. 그렇기에 청의 행정에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과거 명의 영토를 통치하는 행정 기구에는 만주족, 한족이 모두 참여한 반면, 몽골, 티베트 등을 통치하는 행정 기구에는 한인의 입각이 일관적으로 배제되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도 이러한 행정적 특징이 조공국 외교에까지 확장되어 나타나는 부분이었다. 조선에 간 칙사의 인선에는 한인이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그런데 류큐나 베트남에 보내는 칙사의 인선에는 한인들이 나타난다. 대체 왜 그랬을까?

책에서는 조선은 ‘대청 질서’에 속해 있고, 류큐나 베트남은 ‘대명 질서’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명의 멸망 이전 정복된 조선은 몽골과 함께 ‘대청 질서’에 속해 있었던 반면, 명나라를 정복함으로서 얻어진 베트남이나 류큐는 ‘대명 질서’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베트남과 류큐는 한인 관료의 관할권 속이었고, 조선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비유였다. ‘키메라’라는 비유적 개념을 가져와 청을 쉽게 설명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 덕분에 머릿속으로 개념들을 짜맞추어 보면서 내용을 쉽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는 신선함이었다. 학계에서 이 이론이 나온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을 ‘중화’의 마지막 왕조로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이런 청나라의 모습은 새로운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셋째는 내용의 충실성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지면을 가지고도 청의 일생을 명료하게 설명한 것은 거의 경이로운 수준이다. 넷째는 통일성이었다. 청의 탄생, 발달, 쇠퇴, 죽음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키메라의 제국’이라는 테제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 덕에 이 책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만한 퀄리티의 역사서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한때 인류의 1/3을 지배했던 대청제국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