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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순수이성비판』 정리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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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이성비판』 「초월 논리학의 이념」 정리
· 『순수이성비판』제1부 초월적 분석학 ~ 제1부 제1권 제1장 제2절 정리
· 『순수이성비판』개념의 분석학 제2장 제1절 정리
· 『순수이성비판』 A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1
· 『순수이성비판』 A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2
· 『순수이성비판』 A판 순수 지성개념들의 연역 정리 - 3
· 『순수이성비판』 B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1
· 『순수이성비판』 B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2
· 『순수이성비판』 도식론 정리
칸트는 이제 범주가 경험과 관계맺는 것에 대한 원칙들을 설명함으로서 종합판단을 해명하고자 한다. 분석판단은 그것의 최고 원리로 모순율을 지적하고는 넘어간다.
칸트는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것을 초월논리학의 제1과제로 삼는다. 종합판단에서는 주어진 개념 밖으로 나가 다른 개념으로 향하여 둘을 연결해야 한다. 즉 이 둘을 종합할 "제3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시간이다. 칸트는 순수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내감, 상상력, 통각에서 찾고자 한다.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므로 "경험의 가능성은 우리의 모든 선험적 인식에 객관적 실재성을 주는 것이다."(A156; B195) 그런데 경험은 종합에 의거한다. 따라서 "모든 대상은 가능한 경험에서의 직관의 잡다의 종합적 통일의 필연적 조건들이 종속한다"는 것이 모든 종합판단의 최상의 원리이다.
이어서 칸트는 순수 지성의 모든 원칙들을 논한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직관의 공리들
2. 지각의 예취들
3. 경험의 유추들
4.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들
직관의 공리들은 "모든 직관들은 연장적 크기들이다"를 원리로 갖는다.
모든 현상은 시공간을 직관으로 함유한다. 그러한 현상들은 경험될 수 있다. 그런데 현상이 경험되기 위해서는 종합을, 직관에서 동종적인 것의 통일을 의식함으로서 가능하다. 직관 일반에서 동종적인 것은 크기이다. 즉 크기의 통일을 의식함으로서 가능하다. 현상들은 모두 연장적 크기이다. "연장적 크기란 그 위에서 부분들의 표상이 전체 표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러므로 부분들의 표상이 전체 표상에 반드시 선행하는) 그런 크기를 일컫는다."(A162; B203) 현상은 부분과 부분의 순차적인 종합을 통해 인식될 수 있기에 연장적이다. 이러한 순차적인 종합은 생산적 상상력에 의해 일어나고, 이 생산적 상상력에 수학의 공리들이 근거한다. 같은 근거를 가지기에, 수학과 기하학은 경험에 적용될 수 있다.
지각의 예취들은 "모든 현상들에서 실제적인 것, 즉 감각의 대상인 것은 밀도적 크기, 다시 말해 도(度)를 갖는다"를 원리로 갖는다.
지각은 감각을 포함하는 의식이며, 현상들은 순수 직관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현상들은 직관 너머의 어떤 질료의 표상을, 실재적인 감각을 가진다. 그 감각이 밀도적 크기인데, 연장적 크기와 달리 나눌 수 없는 크기이다. 연장적 크기는 10도 있고 5도 있고 0도 있지만, 밀도적 크기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고 양적인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색깔, 예컨데 빨강은 도를[밀도적 크기를]가지며, 이 도는 제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결코 최소의 것이지는 않다."(A169; B211)
연장적 크기와 비교하여 비유를 하자면, 연장적 크기의 경우에는 5cm의 자를 옆으로 맞대면 10cm가 되고, 반으로 자르면 2.5cm의 자가 되지만, 밀도적 크기의 경우에는 100도의 물을 반으로 나눈다고 50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이 100도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양과 질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이것이 밀도적 크기다.
예취란 개별 감각을 통해 그 감각에 입혀지는 선험적인 규정 혹은 형상을 말한다. 모든 현상들은 연속적인 크기를 가지기에, 변화도 연속적이다.
경험의 유추들은 "경험은 지각의 필연적 연결 표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원리를 갖는다.
경험은 지각들의 연결인데, 지각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지각들을 감지하는 포착은 말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지각들은 관계 범주들에 의해서만 연결된다. 경험은 시간에 따라 통일되므로, 이 통일은 "보편적 시간 규정의 규칙들 아래 종속해야만 한다".(A178; B220) 이것들이 경험의 유추의 원칙들이다.
이 원칙들은 앞의 다른 원칙들과 달리 규제적인데, 앞의 두 원칙은 현존을, 그러니까 현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성적이지만, 이 원칙들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에 규제적이다. "그것은 현상들의 대상들에 대한 원칙으로 구성적인 것이 아니라 규제적인 것으로 타당할 것이다."(A180; B222~223)
제1유추는 "현상들의 모든 바뀜에서도 실체는 고정적이며, 실체의 양은 자연에서 증가되지도 감소되지도 않는다"이다.
현상들이 바뀐다면 그것은 시간상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은 그 자체로 직관될 수 없기에 그것을 표상시켜줄 실체가 필요하고, 그것 역시 변하지 않아야 한다. 변하지 않기에 양적인 변화도 없다.
제2유추는 "모든 변화들은 원인과 결과의 결합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이다. 분석학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이 부분은 흄에 대한 반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혼자서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한 현상과 뒤따르는 다른 현상은 상상력에 의해 결합된다. 이때 객관적으로 무엇이 선행하는지는 미확정이다. 이것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선후관계의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 개념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현상에 대한 포착은 순차적이지만, 그 순서는 주관적인 잇따름이다. 따라서 이러한 범주가 객관적인 잇따름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시간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흄의 주장대로 인과관계의 객관성이 없다면, 우리는 애초에 인과관계를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칸트는 이렇게 객관을 새로이 규정한 후에 흄을 반박하는 전법을 즐겨 구사한다. 또한 칸트는 나아가 모든 것은 시간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발생한다고 말한다.
제3유추는 "모든 실체들은 공간상에서 동시에 지각될 수 있는 한에서 일관된 상호작용 속에 있다"이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교호적으로 잇따라 지각될 수 있다면 그 두 사물은 동시에 있다. 그런데 동시에 있기 위해서는 동일 시간상에서 잡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추정하기 위해 시간 자체를 지각할 수는 없기에 동시에 있음은 포착에서의 상상력의 종합으로는 불가하다. 따라서 그것은 지성개념으로만 가능한데, 교호적인 뒤따름의 지성개념은 영향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실체들이 공간상에 동시에 있음은 다름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함을 전제하고서만 경험에서 인식될 수 있다."(A211; B258)
실체들이 같이 있음은 같은 시간상에 있다는 것이므로 시간상의 위치를 지정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실체 간에 시간위치를 지정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은 인과관계의 성립 말고는 없다.
이 세 유추들은 "곧 양으로서의 시간 자체(즉 현존의 양, 다시 말해 지속)에 대한 관계, 계열로서의 시간(즉 서로 잇따라)상에서의 관계, 끝으로 모든 현존재의 총괄로서 시간(즉 동시에)상에서의 관계에 따라 현상들의 현존을 시간상에서 규정하는 원칙들이다."(A215; B262)
자연은 규칙에 따라 현존하는 현상의 연관을 말한다. 즉 자연이 가능하기 위한 선험적 법칙이 있다. 모든 현상은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자연에 속한다는 것이 세 유추의 함의이다.
마지막으로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공준]들은 이러하다:
1. 경험의 형식적 조건들과 (직관과 개념들의 면에서) 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2. 경험의 질료적 조건(즉 감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실제로 있다.
3. 현실적인 것과의 관련이 경험의 보편적 조건들에 따라 규정되는 것은 반드시 있다.
이렇게 원칙의 분석 자체는 끝을 맺고 칸트는 잠시 방향을 돌려 관념론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게감상?
아저씨 형이상학 갤러리로 가세욧~
철스퍼거들은 평등을 원하는게 아니라, 독갤에서 핏받받고 차별당한다고 느껴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잔다르크적 변태들이라 이런 대책은 오히려 그들의 영웅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