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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순수이성비판』 정리 연재
· 『순수이성비판』 초월론적 감성학 ~ 공간에 대하여 - 정리 · 『순수이성비판』 「시간에 대하여」 정리
· 『순수이성비판』 「초월 논리학의 이념」 정리
· 『순수이성비판』제1부 초월적 분석학 ~ 제1부 제1권 제1장 제2절 정리
· 『순수이성비판』개념의 분석학 제2장 제1절 정리
· 『순수이성비판』 A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1
· 『순수이성비판』 A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2
· 『순수이성비판』 A판 순수 지성개념들의 연역 정리 - 3
· 『순수이성비판』 B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1
· 『순수이성비판』 B판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정리 - 2
· 『순수이성비판』 도식론 정리
· 『순수이성비판』 원칙의 분석학 제2장 정리 - 1
칸트는 이제 관념론 반박에 들어간다. 데카르트와 버클리의 관념론이 표적이 된다.
칸트는 "나 자신의 현존에 대한 순전한, 그러나 경험적으로 규정된, 의식은 나의 밖 공간상의 대상들의 현존을 증명한다."고 말한다.(B275)
나는 나의 현존을 시간상에서 파악하는 동시에 모든 시간규정은 고정불변적인 것을 전제한다. 이 고정불변적인 것은 내 바깥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나의 현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고로 나 자신의 시간상에서의 현존재는 외적 사물이 있어야 가능하다. 고로 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은 외적 사물에 대한 의식과 연결되어 있고, 외적 사물에 대한 직접적 의식이다. 묘하게 사르트르가 지향성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방식이 떠오른다. 순이비에 나오는 주장들 중 꽤나 강한(적극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감은 외감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칸트가 데카르트적 회의주의와 버클리적 유아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부분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는 데카르트를 저격하는 부분. 그런데 이 외적 사물은 물자체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경험적 주체로부터 독립된 표상인가? 전자라면 고정불변성이 물자체에 속할 수 없으므로 모순일 것이다. 후자라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 후자이지 싶다. 별개로 논변 자체는 현상학의 지향성 테제가 연상되기도 한다.
여하튼 칸트는 다시 범주로 돌아가 범주들의 객관적 실재성의 입증은 외적 직관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절 전체로부터 나오는 최종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곧, 순수 지성의 모든 원칙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원리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선험적 종합명제들도 이와만 관계하고, 아니 이것들의 가능성 자체가 전적으로 이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B294)
다시금 여하튼 칸트는 이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자체를 다루기 시작한다.
범주들은 초험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범주들은 감성에 기초하지 않기에 감관을 넘어서 적용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칸트는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예지체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예지체를 구분한다. 전자는 우리 감성적 직관의 객관이 아닌 사물, 후자는 비감성적 직관의 객관을 의미한다. 예지체는 감성적 인식들의 권역을 제한하기 위해서 타당하다.
아쉽게도 여기서 감성을 촉발하는 대상은, 그러니까 물자체가 문제가 되는 지점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후 부록에서 칸트는 반성개념을 다루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라이프니츠 비판이다.
라이프니츠의 무구별자 동일성의 원리는 현상을 순수 지성의 대상들로만 받아들임으로서 가능한데, 이는 시공간상의 차이, 감성적 차이를 간과했다. 물자체에서 표상되는 여러 실재는 일치할지 몰라도 현상에서 표상되는 여러 실재는 상충될 수 있다. 현상은 내적인 것이 없는데도 현상에서 내적인 것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모나드라 하였다. 현상에는 형식이 우선함에도 질료적 변화를 가지고 시간을 규정하려 했다.
이후 초월적 위치론이 이어지는데, 개념의 그리고 그 적용의 위치를 다룬다는 의미에서의 위치론이다. 이 위치론에 따르면 라이프니츠는 감성을 간과하여 현상과 물자체를 혼동했고, 그 밖에도 이러저러한 반박이 이어지는데, 딱히 중요해보이지는 않기에 생략한다. 로크에 대해서는 라이프니츠와 반대로 지성을 감성화했다는 비판이 가해진다.
그러고는 무를 4가지로 나누는데, 대상 없는 개념, 한 개념의 공허한 대상, 대상 없는 직관, 개념 없는 대상이다.
이렇게 초월적 분석학이 끝나고, 초월적 논리학의 나머지 반인 초월적 변증학이 시작된다. 아카넷 기준으로 1권 끝이다.
누가 주작기 자꾸 돌리노
계속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