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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액」



  1961년의 5월 16일에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이틀만엔가, 사흘만엔가, 나는 전혀 그 이유를 짐작도 못하는 채 ××경찰서에 연행되어 잘칵 그 구치소에 집어넣어져 버렸습니다. 영문을 모르니 더구나 조마조마키만 하여 밤늦도록 뜬눈으로 말뚱거리고 누웠으면, 간수순경들이 밖에서 소곤거리는 말엔 "저것들 곧 뒈질 것도 아직은 모르나봐." 어쩌고 하는 소리도 가끔은 들려와서, "이것 참 되게는 운사납게 걸려들었구나." 겨우 이런 느낌이나 끼리고 지낼밖에는 아무런 딴 도리도 없었습니다. 신문(訊問)을 받으러 드나드는 한 방 사람들 입에서 "자유당때 깡패두목 이정재도 이 구치소에 있고, 혁신파 우두머리인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도 여기 있다는데……"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나는 여기 갇히기 전 언젠가 무슨 교수단의 단장이라는 조×제 박사로부터 "귀하를 본 교수단의 위원으로 위촉합니다" 하는 엽서를 한장 받고도 무심결에 거절 통지도 못 낸 채 있었던 것인데, 이게 걸려들어야만 할 그 혁신파 아닌가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사 이 교수단 사무소가 어딘줄도 모르며, 입회원서같은 것도 낸 일도 없으며, 그 회의에도 단 한번도 참석한 일도 없으며, 또 그것이 때갈 만한 단체인지 아닌지 그런 것조차 깡그리 모르고만 있긴 했지만, 일이 이런 때에 이쯤 걸려들었으니 불의의 함정도 이거야 참 휑덩그르키만 한 거였죠.

  중위던가 대위 계급장을 단 임시서장이 나를 불러내가지곤, 김일성이의 조선인민공화국의 깃발이라는 것을 내 눈앞에 바짝 펴 보이면서 "이게 무엇인지 잘 아시겠지? 당신 제자들이 이걸 들고 휘날리며 데모를 했단 말이요!" 하는 데는 그저 그저 어안이 벙벙할밖엔 없었습니다. 내가 제아무리 해방직후부터의 내 반공활동의 경력을 대며 변명을 해대도 아무 소용도 없을 뿐이었습니다. "혁신파 교수단장 조×제 박사라는 자와 그 사무국 사람들이 잡히기까지는……"이란 조건부로 나는 다시 구치감방에 집어넣어진 채,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닷새가 가고, 열흘이 가고, 보름이 가고…… 내 그 묘한 체념이란 것의 부피도 세월이 감에 따라 점점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이렇게 해 죽는 수도 있긴 있는 것이군……" 가만히 속으로 그쯤까지 생각하며, 피식 바보웃음을 웃어보는 언저리까지요.

  그러신데, 이것, 조×제 박사와 그 진짜 일행들에겐 좀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갇힌 지 보름인가가 되어 임시서장한테 또 불리어 나갔더니, 이번엔 제법 설렁탕까지 한 그릇 딱 내 턱밑에 바쳐놓고서, 씨익 웃어 보이며, "이거나 자시고 나가시지요. 조×제의 사무국장이 붙잡혀와서 두루 다 잘 알게 됐습니다. 하하하하. 인제사 말씀입니다만, 서울대학의 최×환 교수를 잘 아시지요? 그분이 바로 제 외숙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최×환이라면 나두 잘 알구말구. 그는 서울대의 교수고 나는 동국대지만, 우리는 둘이 다 충분히 가난하여서 국학대(國學大) 같은 데에 시간강사 품팔이도 함께 하면서, 한 합승차에 같이 탈 때는 그 운임만큼은 "내가 내겠다"고 서로서로 앞장서기도 했던 사이니까……

  어허허허!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자면 이것 참 주의해서 살 일이라고!



- 『안 잊히는 일들』(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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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도서관에 갔다가, 최근에 출간된 정과리의 『한국 근대시의 묘상 연구』를 3부를 중심으로 서서 읽어보았다. 정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할 소리는 아니겠지만 서정주의 시사적(詩史的) 위치를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른바 '헬코리아' 식의 단어를 자꾸 구사하는 게 눈에 거슬렸던 것만 빼면 좋은 책이라고 느껴졌다. (부득불 몇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지식인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분들까지 '헬코리아' 류의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불과 반 세기 전에도 '헬코리아'와 정확히 같은 값어치를 지니는 비속어가 있었다. '엽전'이 그것이다. 혐오 이상의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말들에 그리도 집착하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 털끝만큼의 도움도 주지 못한다.) 정과리가 주목하는 서정주 시의 의의는 삶의 부정성을 '능청'을 통해 긍정성의 동력으로 삼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능청은 자신을 위압하는 현실을 별것 아닌 것으로 축소화시키고, 현실에 휘둘리던 자신을 시 속에서만큼은 축소시킨 현실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존재로 승격(하는 체)하는 행위이다. 서정주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 주고도 있는 이 사실을 설명하면서, 90년대 이후 거의 일관되게 서정주 비판의 수단으로만 사용해 오던 기존 연구자들의 버릇에서 벗어났다는 데에 정과리 연구의 또 다른 의의가 있다고 평하고 싶다.


5.16이라는 소재를 다룬 「횡액」은 정과리가 지적한 능청이라는 측면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부정적 현실이라는 테마가 시 속에서의 능청과 부딪치는 지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웃음은 두 번 나온다.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에서 '피식' 나오는 '바보웃음'이 그 하나이고, 그 처지에서 가까스로 살아 나오고 나서 터지는 마지막 행의 웃음이 다른 하나이다. 그가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건 그의 능청 때문이 아니라, 시의 말놀이 바깥에서 '혁신파'가 아닌 다른 파에 가까웠기 때문임을 자연히 깨닫게 된다. 우리는 소재가 실제 현실과 가까워지면서 그 극복의 수단이 더욱 세속적이게 된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서정주 시에 대한 비윤리성 비판의 핵심적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서정주가 그 점도 눈치 못 챘겠느냐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서정주는 능청을 구사하면서 동시에 그 능청이 지닌 비윤리성을 고발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감정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서 가령 이 시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어투의 변화이다. 시에서 계속해서 쓰이던 '-니다' 투가 풀려나오는 순간 '-다'로 바뀌고 있지 않은가. 일종의 거들먹거림의 표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