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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로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닌데, 책이 얇길레 그냥 읽어 봤음
저자는 불가지론의 입장에서 자유의지 회의론의 논증을 비판한다. 자유의지 회의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유의지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논증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경험적 증거를 내세우는 과학적 논증이다. 저자는 이 두 논증을 검토하면서 두 가지 모두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데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철학적 반자유의지 논증을 살펴보자. 이 논증은 무작위-또는-선결정 논증이라고 불리는데, 이 논증에 따르면 인간의 결정은 다음 두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
1. 인간의 결정은 이전 사건들에 의해 전적으로 야기된다. (선결정)
2. 인간의 결정은 다른 사건들에 의해 야기되지 않는다.(무작위)
논증의 핵심은 두 가지 유형 모두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1)의 경우에는 우리의 결정이 과거의 사건에 의해 이미 '선결정'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선결정 되지 않는) 자유의지와 양립불가능하다. 이건 정의상 맞는 말이다. (2)의 경우 우리의 결정이 일어나도록 야기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결정이 '그냥'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이 '그냥' 일어났다는 말은 결정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났다는 뜻이고,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과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2)의 경우에도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무작위-또는-선결정 논증은 자유의지의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강력한 논증이다. 만약 이 논증이 옳다면 사실 심리학, 뇌과학적 증거를 찾아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2)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유의지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결정을 내린 사람이 '행위자' 본인인지의 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짜장과 짬뽕 중에 짬뽐을 선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2)의 말마따나 나의 선택은 '그냥'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자유의지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짬뽕을 선택한 사람이 '나'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의지 논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딱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 선택을 한 사람은 분명 '나'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2)는 어떤 결정을 내리도록 야기한 다른 사건들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논리적 비약을 저지른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무작위-또는-선결정 논증을 반박하며 논의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킨다. 위처럼 만약 인간의 결정이 다른 사건들에 의해 야기되지 않는다면, 그 결정은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 된다. 왜냐하면 그 결정은 '행위자' 본인이 내린 결정이고 다른 사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선결정되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의지의 정의에 완벽히 부합한다. 따라서 반자유의지 논증은 (1)처럼 인간의 결정이 이전 사건들에 의해 야기된다는 경험적-과학적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여기서부터 과학적 자유의지 회의론이 시작된다. 과학적 반자유의지 논증은 의식적 결정들이 우리의 선택 '이전'에 발생하고, 우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실제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다른 사건들에 의해 전적으로 야기된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두 가지 신경과학 실험을 검토하며 이러한 논증을 반박해 나간다.
먼저 리벳 연구를 살펴보자. 리벳은 피실험자들에게 손목을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충동을 느낀 정확한 시간을 기록해 달라고 설명한 뒤 피실험자의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한다. 실험 결과 리벳은 준비전위라는 뇌활동이 손목을 움직이려는 충동보다 0.5초가량 먼저 나타났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실험 결과는 굉장히 충격적인데, 우리가 의식적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우리의 행위를 야기하는 두뇌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자유의지 논증은 이 실험을 근거로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해석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로 반자유의지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준비전위라는 뇌활동이 선택의 원인(혹은 원인의 일부)이어야 하지만, 준비전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반자유의지 논증은 준비전위에 어떤 인과적 역할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근거 없는 믿음인 것이다.
둘째로 결정의 발생을 과정과 선택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중국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고민한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나는 (a)볶음밥과 울면, 우동, 냉면 등을 제치고 '짜장vs짬뽕'이라는 갈등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b)짜장, 짬뽕이라는 공동의 최상위 옵션 중에 결국 짬뽕을 선택한다. 여기서 (a)는 결정의 발생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b)는 선택,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정이다. 우리는 보통 '결정'이라고 하면 (b)의 상황만 생각하지만, 사실 결정은 (a), (b) 모두를 걸쳐 진행되는 행위이다. 저자는 준비전위라는 것이 (a)단계에 작용하고 (b)단계에서 공동의 최상위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는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며, 자유의지 논쟁의 핵심은 (b)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공동의 최상위 옵션 중에 선택하는 행위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준비전위가 (b)에 적용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한 반자유의지 논증을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시나리오를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저자의 시나리오를 부정할 근거 역시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반자유의지 논증을 선호할 만한 타당한 과학적 이유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헤인즈의 연구를 살펴보자. 헤인즈는 피실험자에게 왼손과 오른손 각각 버튼을 쥐어주면서 어느 한쪽을 누르고 싶을 때 즉시 누르라고 설명한다. 헤인즈는 피실험자의 뇌의 두 영역에서 신경활동이 있음을 발견하고 어느쪽 버튼을 누를지를 예측한다. 게다가 이러한 뇌활동은 버튼을 누르기 7~10초 이전에 일어났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헤인즈의 연구는 마치 위의 둘 번쨰 문제점을 저격하고 설계한 실험처럼 보인다. 이 연구는 공동의 최상위 옵션 중에 선택하는 상황을 조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7~10초나 빠르게 피실험자의 결정을 예측할 수 있다면 사실상 자유의지는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반자유의지 논증은 이 실험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실험을 자세히 관찰하면 몇몇 세부사항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첫째로 예측성공률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최대 60% 성공율을 보인다고 하는데, 완전 랜덤하게 골랐을 때 성공율이 50%인 걸 생각해 보면 조금 모자라 보이는 감이 있다. 사실 10%도 통계상 유의미한 수치인 것은 맞지만, 자유의지가 "아예 없다"라고 주장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문제는 헤인즈 논증의 완전 무너뜨리지는 못하더라도 '약화'시키기에는 차고 넘친다.
둘째로 뇌활동이 일어는 영역에 문제가 있다. 헤인즈가 관찰한 뇌활동은 두정엽(partieal cortex, PC)과 대뇌전두극부(Brodmann area 10, BA10)라는 영역에서 일어나는데, 이 영역들은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과 연관이 적은 곳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PC는 어떤 계획을 세울 때 활성화되고, BA10은 수립한 계획을 기억할 때 활성화 된다. 반자유의지 논증은 왜 이 두 영역이 활성화되며, 이 두 영역의 활성화가 왜 60%라는 애매한 예측 성공률과 연관되는지 적절하게 해석해 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주어진 데이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실험 결과에 대해 더 설명력이 높은 대안적 해석을 제시한다. 먼저 일상적인 예시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절대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게 정말 가능할까? 저자는 이것이 겁나게 어렵다고 주장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헤인즈 실험에서 피실험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헤인즈가 "왼쪽 오른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누르세요. 아니 '지금' 말고 '실험 시작'하면 선택해서 누르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피실험자는 뇌활동 측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좌/우를 미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때의 결정이 실험 시작 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측정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좌/우를 랜덤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피실험자들 중 일부는 실험이 시작하기 전까지 좌/우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랜덤하게 남겨두는 데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부 피실험자는 뇌활동 측정 전에 좌/우를 미리 결정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험 시작 후에 그 계획을 기억해내어 선택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을 가정한다면 PC와 BA10이라는 활성화영역과 60%라는 애매한 성공률을 설명할 수 있다. 피실험자중 20%가 실험시작 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왼쪽과 오른쪽 중 하나를 누를 계획을 세워버린것이다. 이런 실패사례가 있기 때문에 랜덤한 예측보다 10%더 정확할 수 있다는 점까지 설명해낼 수 있다. 저자는 반자유의지 논증보다 자신의 해석이 데이터를 더 그럴 듯하게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저자의 해석이 옳다면 헤인즈의 연구는 반자유의지 논증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저자는 이렇게 반자유의지 논증들에 적절한 근거가 없음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자유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ㅁ?ㄹ"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상이 내가 이해한 것만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이 책은 MIT Press Essential Knowledge라는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한다.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어려운 개념을 쉽고 간결하게 풀이해 주는 시리즈라고 소개하던데, 시리즈 소개에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아주 그냥 간단명료한 것이 몹시 유익한 책이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자유의지'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완전히 탈형이상학화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저자는 자유의지를 논리의 문제 혹은 경험과학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검토하고 기존의 논증들을 평가한다. 이러한 탈형이상학화는 '비물질적 실체'라든지, '신'의 존재를 가정한다든지 하는 일이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자유의지'라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사이비 신비주의적인 느낌이 있을까봐 조금 걱정한 감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쪽 전문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유의지를 완전히 비형이상학의 영역으로 환원하는 것에 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비형이상학의 영역에서 구성된 논증(뇌과학 실험에 근거한 논증)을 비판하는 데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
아주 유익한 책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도 두 가지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첫째로 저자는 불가지론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자유의지 옹호론을 소개하거나 비판하지는 않는다. 자유의지 회의론이 있다면 자유의지 옹호론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어떤 과학적 실험을 근거로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도 한데 이런 옹호론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옹호론이 진짜로 없는 건지, 아니면 책의 취지와 분량 상 생략된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아쉬웠던 부분. 이런 내용을 찾아 보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둘째는 자유의지 논쟁이 벌어진 배경과 자유의지의 유무가 다른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내가 알기로는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의 양립가능성 논쟁처럼, 자유의지는 윤리학과 사회철학에 미치는 영향이 꽤나 있는 편이다. 이 책에서도 이 부분을 아주 짧게 언급하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거야말로 분량문제로 생략된 부분 같은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이쪽으로 알고 싶으면 다른 책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실험결과로 자유의지없음을 이끌어내는 입장들에 반박하는 자유의지와 과학 읽으실?(기억상 저자는 옹호론자였던거같음 물론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다를 순 있지만)
그리고 두번째 아쉬움엔 철학논쟁 읽으면 ㄱㅊ을듯(대신 머리아픈거 감수 필요)
대니얼 데닛? 추천 굳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