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관찰기 (쇼와 41년 7월 18일호 「여성 자신」)
전략 (대충 겪어보고 올바르고 타당하게 비평해야 한다는 내용)
그래서 나는 비틀즈의 공연 첫 날인 6월 30일에 길을 나서며 「비틀즈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탐구심에 사로잡혔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차에서 내려 무도관까지 걸어가고, 걸어갔다.
그 길 옆에는 순경들이 밀집하여 교통 정리가 잘 된 터라 유도정연한 모습이었다.
마치 경시총감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듯 정갈한 기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안내는 훌륭하여 자연스레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앉을 수 있었다.
앉아보고 깜짝 놀랐다. 표에는 1층의 3열이라고 쓰여있는데, 1층이라고 해도 실은 2층이고, 1층은 완전히 철거되어 있는 것이다.
1층의 전평면은 벽 가장자리를 따라 경관들이 둘러싸고, 중앙 근처까지 화환이 둘러쳐져 있었으며, 그 위를 TV 카메라가 점령하고, 더 안쪽에 높은 무대가 두 개, 또 그 뒤로 크게 THE BEATLES라는 글자를 쓴 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견고한 성 같은 느낌.
이 자리에서 무대까지는 약 백 미터 쯤 되려나.
다가가려고 해도 스미다 강 건너 기슭의 빌딩 옥상으로 돌진하는 것과 같고, 007풍의 배낭식 로켓도 없으니 매우 무리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장내의 모습을 설명한 것은 다름 아닌 비틀즈가 얼마나 최저의 무대 조건에서 노래를 불렀는지를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경비를 위해 장내의 불은 켜둔 채 스포트라이트를 사용할 여지조차 없고, 더구나 무대 연출이고 뭐고 있는 것도 아니여서, 순전한 삼십여 분의 연주로는 바보 취급을 당할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즉, 나는 비틀즈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아무것도 모른다.
게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소녀들의 꺄악거리는 소란으로 노래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들리는 건 예스터데이는 어쨌다는 둥 이런 둥 하는 곡 뿐.
아무런 감명도 없고 흥분도 없고, 바로 얼마 전 같은 무도관에서 열린 하라다·죠프레戰의 그 모든 관중 속 열광의 100분의 1 정도의 흥분도 없었다.
그 시합의 살기, 열기, 군중의 시커먼 박력은 오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경계태세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결과론에 불과할지 모르겠으나 바보같이 느껴졌다.
조그마한 링을 중심으로 만원 관중이 세계선수권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본다면 냉정한 어른이라도 흥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늘처럼 아득히 먼 곳에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네 인간이 짙은 녹색 더블 브레스트에 붉은 셔츠를 입고 아무리 열연을 펼쳐도 흥분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하나도 없다.
그 정도로 유명한 인기인이라면 뭔가 사람을 흥분시키는 마력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무엇 하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던 연유는, 앞서 말했듯이 대략 생각할 수 있는 최저의 무대 조건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역시 흥분하는 사람들은 있다. 비틀즈가 회장에 도착하자 이미 감격부터 하여 그들의 열정을 뛰어넘는 감동 속에서 당장이라도 실금할 것처럼 울고 있는 두 명의 소녀가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틀즈라고만 들어도 경련을 일으키며 머리도, 몸도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 소녀들은 우리와 달리 충분히 비틀즈병 잠복기, 전구증상을 거쳐 마지막 대형 발작을 일으키기 위해 이곳에 왔을테니까 마음가짐이 다를테다.
베트남의 경건한 불교도를 이 글에 끌어들이는 게 면목 없지만, 이른바 이 소녀들은 분신자살 파티를 하는 것처럼 전신에 기름을 온몸에 미리 발라둔 뒤 여기에 와 때가 오면 자신의 손으로 불을 붙여 자살을 완수하는 것 같다.
나도 흥분을 하게 된다면 로큰롤이건 뭐건 편견은 없다.
이래봬도 「몽키 어 고고」라는 가게가 생겼을 때 흥분한 나머지 일주일 동안 집착하며 방문했던 기억이 있는 나이다.
그러나 오늘 앞에 보고 있는 광경은 원인불명으로 자못 섬뜩하다.
나의 몇 줄 뒤의 자리는 비틀마니아 여자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가끔 머리를 쥐어뜯고 앞으로 늘어진 머리카락 끝을 깨물고 있는데, 아이라인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무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마치 시바이의 카사네가 따로 없다.
그 눈이 황홀감에 젖었다기보다는 고요하고 뭔가 사람을 저주하는 듯한 낯빛이라, 나는 그만 「이별 얘기를 꺼냈을 때 여자가 이런 표정을 짓지 않았으면」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입가에 점점 경련이 일어나 쭈뼛쭈뼛하더니, 으악! 하고 소리치고 손수건으로 입을 벌리고 몸을 꼬아 기함하기 시작하니, 참으로 대단하다.
어느 뚱뚱한 아이가 몸도 마음도 망가진 듯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입을 빠끔빠끔 거리다 갑자기 또 울면서
「조지!」
「링고!」
라고 소리치는 걸 보면, 걱정이 되어 버린다.
열광이란 무엇인가 어두운 요소가 있다.
밝은 오후 야구장의 열광에서도 본질적으로 뭔가 어두운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지만 이들 소녀들의 열광 속 어두움에는 산실의 신음소리로 이어지는, 무언가 참을 수 없는 여성적 본능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비틀즈가 좋니, 나쁘니,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틀즈에 열광하는 걸 별로 도덕적 타락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30분의 연주가 끝나고 앙코르도 없이 퇴장할 때 두 소녀가 객석에서 남아 오열하며 허리가 빠진 것처럼 차마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통절한 섬뜩함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울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상이라는 것은 무섭다. 환상이라는 것은 무섭다.
저 울고있는 소녀들에게 가서 「자네들은 환상에 빠져있는 걸세」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깨달음과 진실을 준 것인가? 아니면 번뇌와 고통을 준 것인가?
때로는 진실이라는 것도 무섭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틴 에이저가 들으라는 듯이 "흥, 어른인 주제에 흠잡기나 하고 말이야. 존나 역겨워."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소녀여. 어른에게 흠잡는 것이란, 직업이다.
어린이가 울림에 열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스미다 강 건너편의 울림 소리에 그렇게 흥분하는 것은 좀 보기 흉하고 괴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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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이 기고문은 여성 잡지에 수록됐다.
수록되지마자 여성 독자들의 항의로 미시마 유키오는 비틀마니아 독자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남겼다.
덧붙여서 10월에 발매되는 비틀즈의 새 앨범 「Revolver」를 들어보겠다고 말하며 여성들의 아우성을 잠재우는데 성공한다.
미시마햄 역시 글빨이 좋아
리볼버 듣고 무슨 생각했을지 궁금하네
갤주 글은 뭐든지 맛있네
읽으면서 포하는 중인지 독하는 중인지 헷갈렸다 자야겠노
고닉 미시마유키오님 소신발언하신다
ㅋㅋㅋㅋ
이게 미시마를 사랑하는 이유지
'음알못' 미시마 ㅋㅋㅋㅋㅋㅋㅋㅋ
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