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에서 카뮈의 문체는 냉소적이고 화려하다.
현란한 드리블에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가 않다.
이방인에서 그토록 담백하게 글을 썼던 그가 왜이렇게 드리블을 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사실... 시지프신화는 진리탐구라는 측면에서 진솔하기보다는 실용적이다.
그는 인간이 부조리를 자각했을 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나가야한다는 (정)답을 이끌어내기위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부조리를 자각하였으므로 자살한다는 선택지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선택해서는 안되고 살아야하는 답을 이끌어내야만 한다는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다.
"삶의 의미를 거부했던 사상가들 중에서 삶을 거부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논리를 밀어붙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가끔씩 농담 삼아서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가 푸짐하게 차려놓은 식탁 앞에 앉아 자살을 찬미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갈릴레이와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자신의 사상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않은 이들을 냉소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거부하는 철학자들 중에서 문학에 속하는 키릴로프, 전설에 가까운 페레그리노스, 가설에서 비롯한 쥘르키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목수을 버릴 정도로 자기 논리를 인정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한다."
그러나 그는 키릴로프, 페레그리노스, 쥘르키에는 냉소하지 못한다. 그들은 목숨을 버림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뮈의 선택지는 하나만 남게된다.
그는 자살하고 싶지않기 때문에 그 자신의 믿음에 따라 반드시 (부조리를 깨닫고 있음에도) 살아야만하는 이유를 찾아내고 입증해야만 한다.
만약 그가 부조리를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다면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그토록 현란한 드리블을 치지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자살로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는 것으로 그의 관점에서 충분히 멋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내 생각했다.
부조리를 깨닳았으므로 자살한다는 선택지는 왜 배제하는 것인가?
그것은 (내가, 또한 대부분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배제하고 시작한다는게 그의 답으로 보인다.
참으로 목적적으로 쓰여진 이 책이 성경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 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어찌됐건 카뮈는 멋을 아는 사람이고 부조리를 깨달았음에도 살아가야만 하고 그것이 멋있으려면 혀가 길어져야하고 드리블은 화려해져야한다.
그럼 자유죽음을 읽으셈
지단의 아트싸커를 보면 프랑스인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듯 ㅇㅇ
자살한다는 선택지를 배제해야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설득력있게 느껴지지 않으셨던거군요.
"그는 갈릴레이와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자신의 사상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않은 이들을 냉소하며 시작한다." 카뮈는 바이닝거에 대해서도 냉소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