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영문 번역가 시바타 모토유키의 대담을 묶은 “소설을 읽는 법, 쓰는 법, 번역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중간에 아메리카 문학 관련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올려 봄. 나는 여기 언급 된 작가들 안 읽어 봐서 대담 내용의 진위는 잘 모르겠지만 드릴로와 부코스키는 읽어보고 싶어짐. 

이게 거의 15년 전 책인데 아직도 이 작가들을 넘어서 언급 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작가가 등장하지 않은 걸 보면 문학계가 참 변동이 없는 세계 인 것 같다. 

나중에 일본 문학(특히 오에 겐자부로) 관련 재미있는 부분도 올리겠음. 

번역은 내가 대강 한 거라 정확성은 담보 못하니 사용시엔 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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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아메리카 문학자로서 자살이나 다를 바 없는 말씀을 드리자면 (웃음), 이 대담이 정해졌을 때, “중력 무지개”를 안 읽었는데 어떻게 하지… 라고.

다카하시: 예전에 함께했던 리처드 파워스에 대한 좌담회에서 생각했어요, 시바타씨는 핀천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시바타: 아니요,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좋아하는데 너무나 알 수가 없어서 (웃음).

다카하시: 저도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시바타씨는 핀천의 무뚝뚝한 문체가 싫어서 일부러 읽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시바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핀천은. 파워스와 겉보기엔 비슷하긴 한데 더 우당탕거리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 부분은 매우 재미있긴 한데… 아무튼 핀천 뿐 아니라, 저는 대작을 읽으면 금방 머릿속이 포화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파워스와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소설은 “보텀 업 스타일과 톱 다운 스타일이 있다. 톱 다운 스타일은 전체의 구도, 이념에서 시작하여 세부를 만들어간다. 보텀 업은 세부가 먼저 있고, 거기에서부터 점점 전체상이 보인다.” 고 하더군요.

 저는 소설의 세부를 읽으면서 전체 구도를 보는 것이 매우 어려워요. 그런데 핀천을 읽을 때는 꼭 그걸 해야하거든요.

다카하시: 핀천의 소설은 조감적인 소설이니까요. 시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재미가 없어요. 세세한 부분은 그거대로 재미있긴 하지만요.

시바타: 네, 전체상을 조감해야하는데, 저는 그 능력이 떨어져요. 그래서 호불호라기보다는 능력 문제입니다.

다카하시: 음.. 아닌거 같은데요? 시바타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겠는데요.

저는 핀천의 미완의 대작, “메이슨과 딕슨”은 읽지 않았지만, 요전에 “언더월드”가 번역된 돈 드릴로에게도 핀천에게도 60년대에서 80년대 미국의 후기 모더니즘 작가의 대작주의의 영향이랄까,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읽다, 라기보다 긴 시간 구속되며 그 세계에 억지로 끌려들어가는 것, 게다가 별로 재미없을 때도 있고 (웃음). 짧은 소설은 그 세계에 들어가서 2시간 정도 읽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한데, 가타부타 다른 세상에 끌려들어가는, 상당히 무거운 체험을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끌려들어가는 그곳이 “아메리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 각자에 있어서의 “아메리카”를 작품 안에 만든 후에, 거기에 다른 나라 사람을 끌어들여서 “아메리카”를 체험하게 하는 겁니다.

 드릴로의 작품 중에선 “화이트 노이즈”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아메리카”의 가짜 역사를 만들어서는 반복해서 그걸 체험하게 하잖아요. 현실의 미국과 비슷한 유사 아메리카. 이건 미국 작가의 타입 중의 하나인데, 저는 굉장히 좋아했지만, 90년대에 들어선 좀 질렸다고 할까, “아메리카”는 이제 됐어, 랄까.

  스티브 에릭슨은 좀 더 세련되게 쓰긴하지만, 역시나 이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흐름을 계승하고 있어요.

시바타: 지금은 스티브 에릭슨, 리차드 파워스, 돈 드릴로가 그걸 하고 있어요.

반대로, 레이먼드 카버가 신선했던 건, 자신의 문제를 곧 미국 전체의 문제로 과대망상적으로 확대하는 그런 미국 문학의 기본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그린다는 것, 그리고 작가 자신도 그런 상상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 문학에선 매우 소수파였어요.

 핀천과 드릴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저도 드릴로가 대단한 작가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좋은 점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어요. 문제가 저한테 있다는건 알고 있습니다. 폴 오스터와 처음 만났을 때. 70년대 당시 중요했던 존 호크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오스터가 “나는 호크가 대단한 작가라고는 생각하는데, 한 권도 끝까지 읽지를 못했어.”라고 한 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 잘 알겠는거에요. 저도 드릴로에 대해서 같은 걸 느낍니다. 몇 권은 읽었고, “리브라”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릴로 탓이 아니라 제 탓입니다만, 드릴로의 “목소리”가 아무 곳에도 없는거에요. 에릭슨은 에릭슨의 목소리, 밀하우저는 밀하우저의 목소리, 처럼 이 사람의 목소리는 이런 톤이라는 식으로 목소리가 명확한 작가의 작품만을 저는 번역했거든요. Off for the Sweet Hereafter의 토마스 리드 피어슨은 스토리는 거의 없지만 목소리만으로 승부하는 작가고요. 드릴로처럼 거리의 여기저기의 소음이나 대화의 부분을 가져와서 문장을 만드는 작가는 목소리를 씌우는 타입이 아닌거에요.

다카하시: 저도 시바타씨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드릴로의 소설에는 드릴로의 목소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지루해요…

시바타: 무언가 분위기를 올려주는게 없어요.

다카하시: 없어요.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핀천도 그런 것 같아요.

시바타: “언더월드”의 번역자 타카키치 이치로씨나, 쯔고 고치씨는 제 학생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들인데요, 한 방에 드릴로에 푹 빠지더라구요. 요즘 세대에게는 그 목소리의 부재가 좋은 걸수도요. 핀천에게는 좀 더 풍겨나오는게 있어요.

다카하시: 그게 드릴로와의 큰 차이점이죠. “슬로우 러너”를 읽고 실은 핀천은 정이 많고, 감성적이고, 섬세한 정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자신의 그런 부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장대한 잡동사니를 쌓아놓은 듯한 문장을 쓰는 거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핀천 그대로가 드러나는 후기나 다른 사람 작품에 쓴 해설을 보면, 매우 다정한 문장이에요. 소설과는 전혀 달라요. 그래서 저는 핀천이 언젠가 그런 부분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소설을 써주었으면 좋겠어요.

시바타: “메이슨과 딕슨”은 어떤 면에선 그런 것 같아요. 열정적이지가 않아요. 시대에 맞추느라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매우 다정하고 전형적인 보텀 업 스타일의, 세부를 쌓아올려가는 이야기에요. 즉, 야지기타상의 여행 중의 이야기 같은. 메이슨군과 딕슨군이 미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을 계속 그리는 이야기.

다카하시: 시리아가리 고토부키네요. 한밤 중의 야지상과 기타상.

시바타: 그렇네요 (웃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작은 대작이지만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며 확인해가며 읽어야하는 그런 소설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담담하고 조용하고 다정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됩니다. “중력 무지개”는 로켓이 발사되는 곳에서 시작되지만, “메이슨과 딕슨”은 눈송이가 커브를 그리며 떨어지는 장면에서 시작해요. 나는 이제 그렇게 에너지가 있지 않아, 라고 선언하는 듯한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거 실은 1-2년 만에 빨리 번역해야하는 거지만, 제가 번역하고 있거든요…

다카하시: 그럼 빨리 부탁드립니다 (웃음).

시바타: 노력할께요 (웃음). 스피드에 관해선, 저는 시작하면 빠르긴 합니다만.  

(중략)

다카하시: 조이스, 프루스트, 부코스키, 시몬을 읽으면 20세기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세기의 소설은 여러가지를 정밀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 보이거든요.

 저는 90년대 일본의 최고 번역은 시바타씨의 펄프 라고 생각하는데요, 클로드 시몬의 아카시아는 완전 반대입니다. 아카시아와 펄프를 꼭 비교하며 읽어보세요. 펄프는 뭉텅뭉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지만 잘 읽어보면 어떤 의미에선 일본어 산문의 최고의 예시라는 걸 알 수 있을겁니다.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의 방법은 2가지, 단순하게 쓸 것인가 복잡하게 쓸 것인가, 밖에 없어요. 시몬에게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복잡하게 쓰는 것이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쓰기 시작하면 무한정으로 복잡해져요.

 프루스트도 복잡하게 쓰지만 조금 방식이 달라요. 그는 시간에 대해서 쓰고 있으니까 무한정으로 길어져요. 시간축을 따라서 얼마든지 길어지거든요. 조이스는 말 자체가 복잡해요. 시몬은 세계가 복잡하니까 내용이 복잡해져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복잡한 걸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20세기의 어떤 시점에서 작가의 방향성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계가 복잡해졌으니, 소설도 그에 맞추어 복잡해지는거죠. 그걸 각자의 방식으로 추구했던 겁니다.

 그런데 도중에 복잡해지는 것에 더 이상 맞출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 전형이 부코스키로, “세계가 어떻게 되어있는거야?” 라는 물음에 “밥 먹고 섹스하고 자고. 그거 말고 또 뭐 있나?” 라고 답을 해요. 이게 조이스, 프루스트, 시몬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거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에게 세계는 그렇게 복잡하게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부코스키는 너무나 심플하긴 합니다. 실제로 생활을 하면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되어있잖아요. 펄프처럼 단순한 언어로 세계가 만들어져 있지는 않아요. 그러니 그건 완전히 픽션의 세계에요. 구어체로 쓰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외형과는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의 세계라는 의미에서 문어적 세계 아닐까요.

 이건 소설을 쓸 때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에요. 보통 단순하게 쓴다는 건 현실에 가까워지는 거에요. 그런데 부코스키는 반대방향으로 갔으니까 현실과 동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읽으면 현실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나 그건 착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번역하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 같아요.

시바타: 아니요,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굉장히 금방 했습니다. 별로 생각을 안 하고 할 때가 좋은 번역이 될 때가 많아요.

 부코스키를 번역한 것에 대해서, “더러운 세상에 대해 쓰고 있으니까 슬랭을 많이 쓰고 있지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잘 살펴보면 부코스키는 거의 슬랭을 쓰지 않아요.

다카하시: 그렇네요, 없어요. 굉장히 읽기 쉬워요.

시바타: 읽기 쉽죠. 슬랭은 친구들 사이에서 통하는 언어로, 특정의 폐쇄적인 공동체에서만 사용됩니다. 부코스키는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슬랭을 쓰지 않아요. 친구가 없으면 슬랭도 필요없거든요(웃음).

그런 의미로 보면,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슬랭이 많이 나와서 대조적이죠. 홀든은 외로운 소년 같지만, 보이지 않는 친구는 있는거에요. 비슷한 식으로 말하는 아이들과 함께 언어를 공유하고 있어요. 부코스키에겐 그런 언어의 공동체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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