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영문 번역가 시바타 모토유키의 대담을 묶은 “소설을 읽는 법, 쓰는 법, 번역하는 법“

이전 글에 이어서 일문학에 대한 이야기.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다카하시 아저씨의 평가가 재미있음. 

이전 글은 아래 링크 참조. 


번역은 내가 대강 한 거라 정확성은 담보 못하니 사용시엔 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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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예를 들어 전쟁이 막 끝난 후에는 전쟁은 무엇이었는가, 라는 커다란 테마가 있었어요. 1900년대 초반에는 청춘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암묵적인 테마가 있었고요. 방향성이 있으니 잘 정리된 문장으로 쓸 수밖에 없었지요.

시바타: 그렇군요.

다카하시: 방향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아마 1980년대이후엔 정확한 방향성이 없어졌어요.

시바타: 그건 아버지가 없다는 것과 같은 거네요.

다카하시: 네, 아버지가 없어졌다는 건 역사가 없다, 정치가 없다 같은 것과 동일합니다. 아버지는 반항의 대상이거든요. 한편으로 정치는 문학과 대립하는 것이라 문학가에겐 부정해야하는 것이었고, 역사도 우리는 역사 속의 한 파편이 되고싶지는 않다는 의미에서 인간과 대립하는 것이라고 보면, 아버지도 정치도 역사도 부정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1980년대 문필가에겐 별로 반항하고 싶지 않다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했어요. 투쟁하는게 싫어졌다고나 할까, 김이 빠졌다고나 할까.

커다란 테마는 무엇이든 “이것에 저항하겠어”라고 부정형으로 다루어져요.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면 작가는 결국 개별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어요. 그 때까지는 전투가 집단전이었거든요. 그래서 무슨무슨파, 무슨무슨 군단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게릴라에요. 그러니 각자가 각자의 재량, 재능으로 각자의 장소에서 마음대로 싸우세요라고(웃음). 그러면 무기는 문장 밖에 없어요.

시바타: 그러면 무엇에 대하여 싸우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가 중요해지겠네요, 문장 자체가 중요하게 되면요. 그러면 번역은 점점 하기 어려워집니다. 미국 편집자가 “무라카미 다음엔 누구를 번역하면 좋을까?” 라고 물어서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번역이 안 되겠는데, 아 이 사람도 어려운데, 라는 것 뿐이에요 (웃음). 예를 들면 비교적 번역하기 쉬울 것 같은 가와카미 히로미씨도 그 의태어를 번역하기가 고민되죠.

다카하시: 그렇네요, 의태어 (웃음).

시바타: 나카하라 마사야는 실제로 번역해보니, 의외로 번역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일정한 틀이라는 게 어디든지 있으니 그것이 왜곡되는 재미를 전달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마치다 코우, 후루카와 히데오 같은 작가의 일본어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소설은 원래 사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으로 읽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학교에선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까?” 라는 식입니다만.

 아마 오에 겐자부로까지는 학생들이 “오에의 사상은…”이란 생각을 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나오면서 “무라카미의 사상은… “이란 건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 “내가 생각하는 무라카미 베스트3는…” 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이걸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카하시: 지금도 각 세대에 작가가 많이 있고 읽어보면 재미있는 작품도 있지만, 순문학을 제대로 읽어주는 팬이 없어지면, 세계와 직접 연결될 수 밖에 없어요. 후루이씨나 오에씨는 그렇게 변해버린 세계에서 소설가로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지금도 고민하고, 그런 의미에서 젊다고 느낍니다.

시바타: 권위에 맞서 싸우는 것과는 다르지요.

다카하시: 달라요. 그래도 어려움에 봉착해 있으니까 위기인가 하면 저는 모델 체인지의 시기랄까 OS를 교환할 시기가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야구에서도 위기는 찬스라고 하잖아요 (웃음).

일본 근대문학이 탄생해서 100년이상 지났는데 이렇게 사회, 즉 언어의 기반이 변화한 시기는 없었기에 위기라기보다 너무 변해서 위기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소설이 약해져서 읽히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움직임이 빨라서 차분하게 앉아서 소설이라는 걸 읽어보자, 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소설과 접하는 방식이 달라진거에요.

 예전엔 교양주의적 소설을 읽는 게 좋다고 그랬잖아요. 인격이랄까 인간성을 풍부하게 해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소세키 정도는 읽어라, 라든지. 그럼 도스토예프스키를 3권 읽으면 깊이 있는 인간이 되나요, 그것도 이상한 이야기지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시바타: 지금은 그런 믿음이 없어졌지요. 역사 책을 읽으면 역사를 알게 되고 법률 책을 읽으면 법률을 알게 되는데, 문학을 읽으면 문학을 알게 되는게 아니라 인생을 알게된다고 하던 시기가 있었죠. 인격형성을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던 예전의 방식은 불순한 읽기였고, 지금은 올바른 독자만 남아있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카하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읽기 방식은 불순했어요. 메이지 문학은 후지무라, 오가이,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며 “그렇군, 사람은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라고 배우는, 사회적 교육 시스템의 일환으로 소설의 역할이 명확히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소설가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역할의식이 있었고요.

시바타: 그래서 소설가는 “선생님”이라고 불렸죠.

다카하시: 네, 이제 소설가는 선생님이 아니게 되었죠. 그건 좋은 현상이에요. 예전엔 학생이기도 한 독자는 선생님이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걸 기다리면 되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없어졌어요. 선생님의 “아버지”의 한 종류거든요. 선생님이 없어졌다는 건,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선생님도 없어졌다는 것이고, 모두 멋대로 읽고 싶은대로 읽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럼 읽는 방식도 달라지겠죠. 원래 모두가 납득하는 손쉬운 읽기, 사상, 테마로 언급할 수 있는 읽기가 통용되지 않게 되었을 때, 쓰는 사람도 더 이상 그런 것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읽는 쪽이 당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연배가 있는 기자의 석간지 서평을 보면, 요즘 소설은 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를 모르겠어, 라는게 많아요. 아마 그들은 “이 작가는 대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거야” 라는 식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라며. 메이지의 소설이나 전후문학은 무엇을 말 하고 있는지가 확실했어요. 전쟁반대나 아버지를 죽여라, 라든가. 그러니 그것이 구체적으로 쓰인 부분을 찾았던 거에요. 선을 그으며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본래 문학의 자세 아닐까요.

시바타: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목소리로 쓸 것인가, 군요.

(중략)

다카하시: 오에 씨는 계속해서 심각한 내용의 소설을 쓰고 있잖아요. 그래서 다들 오에는 깊다, 큰 테마를 다루는 작가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다루는 테마는 시코쿠의 산 속 공동체라든지, 테러 이야기, 정치 이야기, 섹스 이야기지만, 역시 문장이 이상해요(웃음). 그 문장이 저에겐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거든요. 그 부자연스러움은 문장을 쓰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라는, 부자연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 주체가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에요. 그의 작품을 읽으며 독자는 사상같은 것을 예를 들면, 아직도 악이 만연하고 있는 세계 안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읽어낸다든지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그게 이 소설의 근간이라는 생각은 또 들지 않는거에요. 즉, 왜 오에씨가 아직도 문제인가 하면, 그는 거대한 테마를 다루는 현대, 근대 문학의 대표적 작가라고 오해받고 있다, 어쩌면 자신 스스로도 오해하고 있을 지도 몰라요.

시바타: 그렇군요.

다카하시: 그는 언어 센스가 예전부터 매우 특이했어요. 그의 소설은, 젊은 시절에 언어에 매혹되어서 문학이라는 표현에 사로잡힌 인간이 세계와 어떤 식으로 타협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거든요. 세계의 정치적 정세가 이렇고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젊은 시기에 언어라는 병에 걸려서 특수한 메시지를 발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그 무서움이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니까 오에씨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재미가 있어요.

시바타: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카하시, 무라카미, 오츠지 카츠히코가 등장했을 때 문장의 전달이 매우 좋아졌다고 느꼈어요. 그때까지의 순문학은 무언가 미묘하게 심오한 문장을 써야한다고 여겨지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서 다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의 문장은 그때까지의 순문학의 하나의 전형이라고 다들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카하시씨는 그게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다카하시: 뭐랄까 커다란 광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에씨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이미지보다 그가 실제로 끌어안고 있는 광기의 양이 훨씬 커요. 비교해보면 광기의 승리(웃음).

시바타: 그러면 오에 겐자부로는 인공적인 목소리를 사용하는 중견, 신진 작가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네요. 하지만 그들과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오에씨가 인공적이라고 해도 역시 지금의 신진, 중견 작가들이 인공적인 목소리를 사용하면 항상 매스미디어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다카하시: 서브컬처의 냄새라든지.

시바타: 네 그래요. 후루카와 히데오씨가 무라카미 문학을 샘플링했다는 예가 있는 것처럼, 윗 세대와 접하는 방식이 새로워요. 윗 세대를 권위로 보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자신이 리믹스 할 것인가라는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오에씨는 어떤가요?

다카하시: 80년대 이후 문화 전체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만, 모든 문화가 샘플링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복제 예술이라고 벤자민이 말 한 것처럼. 소설은 그런 문화의 변용에 민감한 장르이기 때문에, 샘플링에 가까운 행위를 소설을 쓰는 것과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니 그 이전의 작가에게는 샘플링이라는 발상이 없습니다만, 오에씨는 고전적인 것을 자신의 작품에 많이 인용하고 있잖아요. 그 인용 방식이 굉장히 샘플링스러워요 (웃음).

시바타: 예를 들면 블레이크를 인용한 것처럼?

다카하시: 네, 블레이크를 인용한다든지, 프랑스 문학을 인용한다든지. 아마 오에씨는 샘플링을 좋아하지 않을거에요. 샘플링이라고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소설에 가지고 오는, 평행이동 같은 건데, 샘플링을 사용하는 작가와 매우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저도 그런데요, 많이 인용하거든요. 그때 사용하는 오리지널의 언어에 대해서는 경의를 가지고 접하면서도, 그 문학세계, 혹은 그 소설 공간안에는 쉽게 들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예를 들면 고바야시 히데오가 랭보를 인용할 때는 티를 내면서 장황하게 인용하거든요 (웃음). “짜잔, 랭보입니다” 라고. 그건 “인용은 까다로운 겁니다. 문학은 오리지널성이 중요하니까 가볍게 인용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꼭 해야 할 때는 짜잔, 하고 다들 알 수 있게 야단스럽게 해주세요.” 라는 의미에요. 그러니까 고바야시 히데오의 도스토예프스키 인용도 진지해요. 그런데 오에씨에겐 그런 감각이 없거든요. 그러니 그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도 근대 문학의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바타: 인용하는게 하이 컬처라는 건, 그렇게 본질적인 건 아니다?

타카하시: 네. 오에씨는 일본에선 드문 무의식이 거대한 작가에요. 의식적으로 하이 컬처의 언어를 가지고 오긴 하지만.

시바타: 배우기 위해서 자신을 수행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거군요.

다카하시: 네, 그런데 그게 하나같이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해요(웃음).

시바타: 아, 그렇게 보면 되는군요.

다카하시: 저에게 예전부터 오에 씨는 신기한 작가입니다. 모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읽히지가 않았고 오에씨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도 읽히지가 않았어요. 저는 오에 겐자부로는 이지적인 작가가 아니라 무의식의 부분이 큰 천재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이미지와는 달리 나카가미 켄지는 이지적인 작가에요. 나카가미씨가 고뇌한 것도 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나카가미 켄지도 굉장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대외적으론 나카가미 켄지 씨가 야만적인 천재, 오에 겐자부로 씨는 이지적인 수재였지만 실은 반대였던 거죠. 그걸 나카가미 씨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오에 씨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에 씨는 빙산처럼 수면 위에 나온 부분보다 안에 가라앉아 있는 부분이 훨씬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바타: 그럼 그 문장은 첨삭이 불가능한가요?

다카하시: 못해요. 천재가 쓴 문장이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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