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어떤 것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숨겨져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中 '심장의 심장' 편에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만 어디가 팩트이고, 어디부터가 문학적인 상상력인지 구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부분을 구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생각해보니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 같습니다. 



"특이점은 어떤 경고도 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돌아올 수 없는 지점, 한 번 넘으면 무지막지하게 끌려 들어 갈 수 밖에 없는 한계에는 어떤 표시도 경계도 없고. 그 선을 넘는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모든 가능한 궤적이 돌이킬 수 없이 특이점으로 이어지기에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슈바르츠 실트가 눈에 핏발이 선 채 물었다. 그 문턱의 성질이 이렇다면 우리가 이미 특이점에 들어갔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그러게요. 우리는 우리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발 밑에 땅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달리는 만화 속의 고양이처럼,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요즘은 생각보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비단 나의 육체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맺는 방식도 변하고, 주위의 사람들도 변합니다. 

  

  어렸을 땐 이대로 색이 바래져가거나, 모양이 추례해지는 식으로 바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보다는 상당히 입체적으로 바뀌는 거 같습니다. 여전히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그저 흘러갑니다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하려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기쁨의 순간을 최대한 많이 찾으려는 노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잘 살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내 바로 앞에 있는 기쁨이 생각보다 그리 아름답지 않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행복은 역시 어려운 거 같고, 스러져 누우면서 특이점을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모든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정확히는 '점'이죠)만 수 없이 늘어나게 되고, 남을 것이라면. 결국 우주의 끝이 그렇게 차갑게 정해져 있다면, 지금의 우리는 대체 어떤 식으로 스러져나가야 할까요. 


 그렇게, 우주의 애도할 자 없을 최후를 생각하니 어차피 죽을 때 까지 볼 수 없을, 갈 수 없을, 만질 수 없을 먼 곳의 결과론적인 점 몇 개만 남아 지금의 나를 서운하게 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안의 슈뢰딩거의 에피소드에서 처럼 모든 것은 사멸해가고, 남는 것은 숫자와 방정식 같은 추상의 세계처럼 파괴할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법칙을 무시하는 잔혹한 특이점들 외에 보이지 않는 우주가 남을 것입니다. 


그 밖의 것들은 책 안의 하이젠베르크가 환상 속에서 보았던 '섬광에 의해 일순간 탄화되어버린 수천개의 형체들'처럼 순간 순간 흩날릴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어떤 것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숨겨져야 하는 것일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책들입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신아연 

삼체 / 류츠신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