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적1, 적2, 절망, 잔인의 초,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17일 까지 이 한국문학사, H, 이혼 취소, 눈, 식모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독회마다 한 두 편 써지질 않아 달고있지 않은데요 최대한 빨리 밀린것들 정리해서 올리겠읍니다.
춥다
적1, 적2, 절망, 잔인의 초,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17일 까지 이 한국문학사, H, 이혼 취소, 눈, 식모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독회마다 한 두 편 써지질 않아 달고있지 않은데요 최대한 빨리 밀린것들 정리해서 올리겠읍니다.
적1 / '시간을 달리해도 적도 그러하다'와 그 변화에 나와 적 둘 다 혹은, 하나 를 따져보기엔 지루하다-실은 시를 보면 다른 부분에 집중해서 구분짓는 것 자체가 쓸데없다.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이 적을 비열하게만 생각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처음에 니1체 에게서, 근래에는 헤갤을 보고 그것의 중요함을 생각하고 있는 내게 지당하고 공감가는 내용들이었다. 싸움도 정말로 소중하지만 그 자체를 다루는 것도 중대한 문제다. 아무래도 요즘은 후자쪽을 좀 많이 신경쓰는 나다.
적2 / 전투에 앞서 피로는 그에게 소중한 무기들 중 하나다. 피곤하기에 휴식을, 또 그 상태를 다시한번 상기할 수 있는 관성을 준다-역설적으로 이 개념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일종의 발딛음을 한 것이다. 그리고 반가운 처가 나와 그 배역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더욱 넓혀줬다. 처와 우산이 같이 나와 그의 시 '죄와 벌'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신과 같은 적들 사이에서 우연한 싸움에 괜히 처절한 감정이 느껴져 내 자신에게 유난스러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절망 / 내가 정말로 생각하는 객관-사실 이 개념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의 방식을 보고있는 것 같았다. 유아독존이 나설 공간은 없고 풍화와 퇴적에 그 자리를 내주면서 약간 낙천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당장 집중해야 할 것은 시 제목이기도 한 절망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여태 본 그는 절망을 통해 반성한 시인이다. 쌓였다가 깎였다가...... 이미 내가 결단을 내렸구나.
잔인한 초 / 그는 집안에 있는 맹랑한 고놈, 육학년 아이에 있어 점심엔 시금치 처럼 부드러웠-구태여 집 반찬이 오르는 풀떼기를 말하진 않았을 거다-지만 해가 저물어 초를 킨다. 관심을 끌려 했을지는 몰라도 콧노래도 그치고 완연하게 잔인한 시간이 왔다. 내겐 겨울 처럼 느껴지는 그 철야의 순간에 집안에 아이마저 죽여버리는 그다. 정말로 살아있는 아이를 죽였을리는 없다(이것이 주는 감상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여태 시들 속에 빈번히 나오는 집이란 공간은 더욱 뜻 깊고 거기서 자란 아이 역시 인물 뿐만 아닌 어떤 표상의 의미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6학년이고, 에미가 없고, 그가 죽여버렸을 뿐이다. 잔인한 초가 켜져있을 때 말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왕궁외에는 없어서 자연스레 고궁과 연관지어봤다. 그렇다면 왕궁을 옛 것으로 만든 뒤에 이 곳을 나온다 라고도 생각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이 장소를 벗어난 그에게 어떠한 폭로와 자책도 지나간 일이지만 옹졸하고 유구한 전통이다. 살면서 겪은 패배들, 다 고궁에 남겨두는 셈이다. 하지만 도피나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버리기엔 생활이 내는 소리가 현재에도 울리고 있다. 아마 이것이 조금 옆에 비켜 서 있는 일 일지도 모르겠다. 내겐 바람과 모래 앞에선 그 누구도 작아 보인다. 그러나 고궁에서 나오는 그의 비열한 모습은 결코 비난하지는 못할 것 같다.
오늘은 파울첼란 읽었음. 정말 졸라 아름답네. 개추! 적_ 그냥 나의 적들을 생각했다. 내 곁에, 뒤에, 안에. 있다가 사라지고 있다 친근해지고 있다가 있지도 않았다가 있은 적도 없었고 그럼에도 적은 피처럼 지속적으로 새로이 생성된다. 마지막 행을 어떤 뉘앙스로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된다. 그렇기도 하고 반어적 조롱일까도싶다. 이 적으로 저 적을 쫓는 게 어떨 땐 좀 우습게 생각되니까.
적2_ 김수영의 적에 대해 생각한다. 그 적은 실체가 있냐없냐를 따질 수 없을 것이다. 물러질 때, 구획이 희미해질 때, 이거나 저거나 같게 느껴지는, 부질없는-그런 때 불러오는 게 적인지도 모르겠다. 제일 피곤한 때 만나는 건 그런 까닭이고 왠지 모르지만 큰 아량으로 대한다. 처와 처들이 적이라는 구에서 ‘가족은 혁명의 적’이란 농이 자연스레 연상되어 웃었다. 김수영의 적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련을 해체시킨다. 그런 일도 하니 적이겠지. 그럼에도 적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적이다. 뭔가뭔가.. 생각해볼 뿐이다.
절망_ 나도 알고 있는 유명한 시다. 다시 봐도 좋네. 여기서 제시된 이름들은 객관으로서의 자연이자 인간 인식 내의 사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뭐든 간에, 그것들은 스스로 반성하지 못한다. 졸렬과 수치 는 인간, 인간의 감정, 반성적 의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자신을 반성하는 건 아니다. 오직 밖에서 오는 바람, 뜻밖의 존재가 일깨우는 것이다. 이 도약은 간결하나 의미적으로 나는 충분히 가닿는다. 헌데 반성은 반성할 수 있나? ㅎ
오늘은 이만~
잔인한 초_ 같은 소감이 중언부언되어 지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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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치다'였... 서로를 보이게 안 보이게 의식하면서 팽팽한 게 아진짜 재밌다. 한국시에서 이처럼 재밌는 시가 다시 있을까. 김수영수퍼울트라짱.짱.짱. 영감의 보물상자.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죽어라앗' 하는 악담은, 일견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시는 역동적으로 도약하고 있다 고 생각한다. 비상에 관한 어휘는 하나도 없음에도, 수직비상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_ 수용소에서 포로경찰이 되는 대신 거즈를 접는 광경은 여성스럽고 김수영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아마 시를 쓰는 작업이라고 확장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도 그와 다름없다고 한다. 여러 패배와 고난이 펼쳐지고.... '나'는 아무래도 절정에서 '비켜서 있'는 존재고 큰 일에는 못 나서고 '옹졸하게 반항한다' 음.. 마지막 연이 진부하면서도 좋다. 김수영은 대지의 시인이라 바람과 친하고 바람을 맞거나 부르는 일을 많이 한다. 이 시에서도 김수영은 바람을 부르며 아주아주 작아진다. 자연물 중 작고 연한 것들을 호명하며 자신은 얼마나 작으냐 물을 때, 같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넘 좋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생각한다. 무겁고 오랜 곳을 벗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