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으로 찍는 사람 = 필사족이라 볼 수 있다.
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의 관심사, 즉 신체의
오감은 모두 스맛폰 액정 속의 촬영되고 있는
영상에 쏠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 눈과 귀와 손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뿐더러
그 오감에서 비롯된, 가슴에서 발현되는 제 6감 또한
생각하고 곱씹고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저 스맛폰 사각형 액정 안에 가두어버리고 있는 모습
이라 하겠다
단순히 나중에 다시 보겠단 일념하에,
주변인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겠단 욕망하에,
모두들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저 사각형 액정을
과감히 포기하는 결단력과 지혜를 가운데에 보이는
저 할매 혼자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는 것은 사람도 할 수 있고
집에서 키우는 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는 바로
그 순간, 느끼거나 떠올리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그 순간을 전체로 뭉뚱거려서 하나의
총체적인 기억으로 간직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적어도 저렇게 스맛폰 사각형 액정
안에 코를 박고 있는 한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본인의 하루를 24시간 스맛폰으로 찍으면서 살아본다고
상상해보라.
그 영상을 나중에 본다해도 무엇이 남겠는가.
내가 보기엔 이런게 필사다.
도구에 의해서 기억을 남기는 일은
언제니 주의해야한다.
언제나 기록을 남겨서 기억을 보존해야한다는
그 강박이 정작 중요한 것들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위에서 말한 인간으로서의 특권 같은 것들
말이다.
- dc official App
동물은 기억 못함?
ㄴ 너같은 멍청한 종자들 때문에 이 시간에 백수마냥 댓글 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자, 이 백치같은 놈아, 대갈빡을 굴려보자. 니가 장례식장에 와있다 치자. 니 눈에 많은 것들이 보이겠지. 영정사진도 보이겠지. 니 귀엔 사람들의 통곡소리도 들릴거야. 향냄새도 맡을 것이고 향 촉감도 느끼겠지. - dc App
ㄴ 근데 그걸로 끝이라면 우리는 개와 다를바 없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지 않느냐. 영정사진과 통곡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만감이 교차한다. 죽은게 너와 가까운 사이라면 당연히 슬픈것이고 그렇지 않고 어중간하다면 슬픈것 같기도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겠지 - dc App
오감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합적으로 그 오감이 니 몸에 와닿는 그 순간의 총체적인 기억들, 그 속엔 너의 모든 것들이 관여하고 첨가되는 것이다. 가치관, 경제력, 심지어 그 날의 너의 컨디션까지도. 이렇게 총체적으로 장례식이란 기억을 종합적으로 기억하고 니 몸에 새겨둔다는 것, - dc App
이게 바로 집에서 키운 개새끼는 못가진 인간만의 특권이란 것이다. 알겠니? - dc App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사진사인 숀이 눈표범 사진을 찍지 않고 감상하면서 한 대사가 생각나네요
"그냥 이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
니가 하는 말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외부 대상의 지각에 내적 정보를 더해 기억한다는거 아니야?
그정도는 동물도 다 하는데. 수준의 차이가 있을뿐이지.
ㄴ 외부 대상의 지각에 내부정보를 더해 기억한다... 파블로프의 개실험을 통해 물론 증명된 바 있긴 하다. 그러나 개새끼가 주인 장례식을 "아, 그날은 점심에 먹은 사료맛으로 기억된다. 사료가 정말이지 기가막히게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한다고 보긴 어렵다 - dc App
ㄴ 있을 순 있겠지. 개는 말을 안하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도 있겠고 없다고 봐도 무방하군. <----어찌보면 이런게 인간 수준의 "외부 대상에 내부정보를 더하는"것이라 볼 수있겠다. 아까 멍청이라 한건 사과하마. - dc App
언어적 사고만이 유일하게 올바르고 완전한 사고는 아니지. 사람보다 뛰어난 컴퓨터가 언어적으로 사고할까? 예를들어 선천적 청각장애인은 영유아기때 언어에 노출되지 않기때문에 언어 발달이 떨어져. 보통사람이라면 5 6살무렵이면 이해하는 시제개념도 성인이 되어서도 잘 사용하지 못함. 이런사람의 사고는 언어적일까? 비언어적일까.
이런 사람의 기억은 동물수준의 기억인걸까? 지능의 형태는 다양하고 사고하는 방식은 더 다양함.
ㄴ 미안하지만 내 글의 요지는 니가 말했듯이 모든 것을 언어적으로 전환하고 언어적으로 전환되어야만 사고하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이다. - dc App
사람들이 100% 체감을 포기하면서 기계를 통한 기억을 남기는건 아닐거야. 60분짜리 공연을 30분 쳐다본다고 해서 그 기억이 크게 퇴색되거나 하는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지각한 정보를 모두 기억하는게 아니고, 의미있게 재구성 한 맥락만을 기억하는거니까. 다시말하자면, 생생한 체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해.
문제는 체감을 통한 기억이 영원히 변치않고 남느냐는거지. 바램과는 달리 기억은 매우 쉽게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간단한 술수에 의해 조작되기까지 하지. 그렇기때문에 기억 외의 수단을 동원하는거겠지. 영원히 추억하고 싶으니까. 사람들은 핸드폰 '만' 을 들여다보지 않아. 그들은 대상을 체감하면서 동시에 촬영해.
경험으로 만든 기억과 기계로 저장한 순간..두개의 기억을 남기는거지. 사람들은 결코 사진이나 영상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 사진을 찍고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아. 그들은 사라져가는 기억을 되살릴 촉발제를 남겨두고싶은거지. 꺼져가는 불에 장작을 더하듯. 기록물은 트리거가 되어, 사람들이 다시한번 그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도록 돕는거지.
어린날의 언젠가 맡았던 어떤 냄새가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듯이.
ㄴ 얘는 걍 ㅂㅁㄱ
불현듯 가깝지만 먼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왔다 서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못처럼 혓바닥을 바짝 세우고 엄마의 가슴에다가 망치질을 두드려 박은 것은 잘도 기억난다 남들이 유년의 행복이라 부르는 것들이 왜 내겐 기억나지 않는가? 이제와 귀중한 것이였음을, 희미해져가는 것들을 소중히 하고 되새겨야 했음을, 그러나
어린 꼬마가 무얼 알았겠는가 사진을 꺼내어 본다 이때 나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하고 있었구나 미루어 보니 그때는 즐거웠구나 귀찮았구나 울었구나 엄마의 모습 눈눈눈 그때도 먼 곳을 바라보시네 표류하시네... 아!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깨달았다